항목 ID | GC094012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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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海 金氏- 金海 許氏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한양하 |
[정의]
경상남도 김해 지역과 관련된 김해 허씨에서 파본한 양촌 허씨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채록/수집 상황]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는 1980년 11월 12일 강원도 삼척군 삼척읍[현 강원도 삼척시]에 거주했던 김형진으로부터 채록했다.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2-3 강원도 삼척군 편에 수록되어 있으며, 1983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8-9 경상남도 김해시 김해군 편에 재수록되어 있다.
[내용]
허씨의 본은 경상남도 김해와 강원도 양촌 두 군데이다. 김해의 수로왕(首露王)은 경주 김씨인데 계루부의 후손이다. 삼척 김씨는 모두 경주 김씨이다. 수로왕 김씨는 하늘에서 내려왔다. 김해 앞바다에 청명한 날 인도왕의 따님이 돌배를 타고 왔다. 지금도 김해 앞바다에는 돌배가 엎어진 데가 있는데, 돌배가 물가에 닿아 사람들이 가보니 꽃봉오리 모양이었다.
사람들은 겁이 나서 함부로 손을 댈 수가 없어 수로왕에게 상소를 했다. “여기 해변에 이런 배가 왔으니, 어떻합니까?” 했더니, 수로왕이 어명을 내렸다. 어명을 받은 신하들이 당도하여 “어명이다” 하며 소리치고, 꽃봉오리를 헤쳐보니 부인 한 명이 나왔다. 수로왕에게 고하니, 데리고 오라고 해서 왕비를 삼았다. 왕비가 태자 9형제를 낳았는데, 한 번도 웃는 일도 없고 골내는 일도 없고 수심도 없고 희망도 없이 살았다. 왕이 물으니 “제가 이 나라에 와서 왕을 모시고 있는데 비관할 일이 있겠습니까?” 하고 대답하였다. 왕이 다시 “그럼 희망할 일은 없느냐?” 하고 물으니, 자신이 죽고 나면 자신의 후손이 없어지니 그것이 걱정이라고 하였다. 그 후 9형제 가운데 하나는 불도를 믿어 중이 되었고, 8형제 중 한 형제는 ‘허씨’라 짓고, 나머지는 ‘김씨’라고 지었다. 그래서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는 같은 형제로 족친이니 혼사를 못한다.
김해 허씨가 정나진에 살았는데, 허미수[허목] 선생의 조카가 태어났다. 허미수 선생이 아이의 관상을 봐주겠다고 했다. 첫째 조카를 갖다 버리라고 하여 형님 내외는 아이를 내다 버렸고, 둘째 조카가 태어났을 때도 내다 버리라고 하여 시키는 대로 하였다. 세 번째 조카가 태어났는데 또 버리라고 하자, 형수가 아주버님이 너무 하신다고 하니, 그럼 갖다 키워보라고 했다. 세 번째 아이는 8살에 말을 타고 달리고, 11살에 검술을 익혔다. 그 셋째 조카가 나중에 커서 허적(許積)이 되었다. 허적이 역적으로 몰리자 허미수 선생이 파본을 하여 양촌 허씨라고 하였다. 결국 강원도에서 김해 허씨는 전부 파멸되고 숨어 지냈다. 그 후 ‘양촌 허가’, ‘김해 허가’로 갈라졌다.
[모티프 분석]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의 전반부는 김수로와 허황옥(許黃玉)의 이야기로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가 친족이 된 사연이다. 후반부는 김해 허씨가 이후 양촌 허씨로 파본이 된 내력이다. 김해 허씨가 강원도 지역에서 양촌 허씨로 자리잡게 된 것은 숙종 때 미수(眉叟) 허목(許穆)의 조카 허적이 역적으로 몰리자 허목이 가문을 지키기 위해 김해 허씨에서 파본을 하였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김해 허씨가 번성하여 본이 나뉘게 된 내력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