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1284
한자 內三池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주촌면 내삼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한양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83년 - 「내삼지」 『내고장 전통』에 수록
관련 지명 내삼지 - 경상남도 김해시 주촌면 내삼리 지도보기
성격 전설
주요 등장 인물 김자점
모티프 유형 장자못 유형

[정의]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서 김자점의 집터와 내삼지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채록/수집 상황]

「내삼지(內三池)」는 1983년 김해군에서 발행한 『내고장 전통』에 수록되어 있으나 채록자와 제보자는 알려져 있지 않다.

[내용]

내삼지(內三池)김해시 주촌면 내삼리 주촌초등학교 앞에 있는 저수지이다. 이 저수지는 김자점(金自點)[1588~1652]의 집터를 헐어 만든 연못이라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옛날 김자점이 득세할 때 이곳에 저택이 있었는데 하루는 도사가 찾아와서 나무로 만든 기러기를 주면서 이 기러기에 깃이 나서 하늘을 날게 되면 임금의 자리에 오르게 될 것이라고 말한 뒤 떠났다. 김자점이 이 말을 믿고 행세하던 중 과연 나무 기러기에 깃이 나기 시작하더니 공중으로 날아오르려고 했다. 김자점이 때가 왔다고 판단하고 성급하게 역적 모의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 때가 이르지 못하여 거사는 실패로 돌아가고 김자점은 주살당하고 말았다. 그 집터는 못을 파고, 못 가운데 무덤 모양을 남겨 두었다고 전한다.

[모티프 분석]

김자점은 조선 전기 성혼(成渾)[1535~1598]의 문하에서 수학한 인재로 광해군 때 병조좌랑에 이르렀으며, 광해군이 인목대비(仁穆大妃)를 폐서인하면서 혼란스러운 정국에서 인조반정에 가담, 인조를 추대하고 반정에 성공하였다. 반정 성공 후 인조의 신뢰를 얻지 못하였으나 병자호란 이후 군사 전문가로 기용되었으며, 임경업(林慶業) 장군의 죽음에 동조하였고, 자신의 손자 김세룡을 인조의 딸인 효명옹주와 혼인시켜 권세를 누렸다. 인조가 승하하고 효종이 보위에 올랐을 때 김자점은 청나라를 이용해 국가를 전복하려고 한 인물로 낙인 찍혀 파직당하고 전라도 광양으로 귀양을 갔다. 이후 김자점의 아들 김식이 역모를 주도하여 반역죄로 처형당하였다.

김자점의 업적 중 치수 사업과 관련한 성과가 있는데 경기도와 충청도의 경계를 이루는 청미천에서 치수 사업의 일환으로 보를 건립하여 자점보(自點洑)라는 인공호수를 만들어 장호원 일대를 풍요롭게 하였다. 또 황해도 재령평야의 간척과 재령강에 보를 만들어 경우궁보를 만든 치적이 있다. 이런 치수와 관련한 업적들이 역적이라는 역사적 평가에 따라 전설에서는 집터가 물에 잠긴 것으로 전승되고 있다. 김해시 주촌면 내삼리내삼지 뿐만 아니라 전라남도 보성군 옥산 못등 전설에도 집터가 잠겨 못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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