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암산 석불」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1288
한자 子庵山 石佛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한양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83년 - 「자암산 석불」 『내고장 전통』에 수록
관련 지명 자암산 석불 -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지도보기
성격 전설
주요 등장 인물 황제|황후|청년|신승
모티프 유형 야래자담|석불 유래담

[정의]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봉화산에 있는 자암산 석불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채록/수집 상황]

「자암산 석불」은 1983년 김해군에서 발간한 『내고장 전통』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신라 때의 일이다. 당나라 황제에게 어여쁜 황후가 있었다. 너무도 현숙하고 어진 까닭에 황제의 사랑을 독차지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황후의 몸이 쇠약해지기 시작했다. 평소 사랑스럽고 건강하던 모습은 점점 사라지고 날로 야위어갔다. 이를 걱정스럽게 여긴 황제는 전의(典醫)를 부르고 갖은 약을 다 써 보았으나 황후의 몸은 수척해질 뿐 아무런 효험이 없었다.

어느 날 황후가 침소에서 곤히 잠을 자다가 헛소리를 하며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황제가 황후를 흔들어 깨워 물었다. 그러자 황후가 말하길 “소비는 밤마다 꿈을 꾸었는데 그때마다 알 수 없는 청년이 찾아와 소비의 침실을 범하고...” 황후는 밤마다 찾아왔던 알 수 없는 청년의 이야기를 사실대로 고백하며 흐느껴 울었다. 황제는 황후를 위해 유명한 절을 찾아가서 불공을 드렸다.

그런데 어느 날 밤 황제도 이상한 꿈을 꾸었다. 스님 두 명이 남쪽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데 황제는 “저 스님들이 신승(信僧)일 거야. 가는 곳으로 따라가 보자.” 이런 생각으로 뒤를 따라갔다. 얼마 지나 남쪽에 험준한 산 하나가 눈에 띄었다. 산속에서 신승들은 청년 한 명을 잡아 무릎을 꿇렸다. 보니 황후의 꿈속에 나타난 청년이었다. 한 스님이 “네 이놈! 너는 불법을 어기고 당나라 황후를 밤마다 괴롭힌 놈이로다.” 하고 호통을 쳤다. 청년이 용서를 구했지만 두 스님이 발버둥 치는 청년을 바위틈에 넣어 가두어 버렸다. “백 년이고 천 년이고 네가 죄를 뉘우치는 날 다시 구해 주리라.”하고 두 스님은 가던 길을 계속 갔다.

꿈에서 깨어난 황제는 신하들을 불러 놓고 꿈 이야기를 하면서, 그러한 산과 바위를 찾도록 명을 내렸다. 신하들은 나라 안 곳곳을 살폈으나 당나라 안에는 그러한 산이 없었기에 남쪽 땅 남의 나라까지 찾아다녔다. 마침내 당도한 곳은 신라 땅 김해의 자암산(紫岩山, 子庵山)이었다. 신하들은 황제의 꿈에 나타났던 바위와 그 바위틈에 갇힌 이름 모를 청년과 꼭 같은 석불(石佛)을 발견하였다. 이렇게 먼 나라 신라 땅까지 와서 찾아보고 돌아간 사신들의 보고를 들은 황제는 경탄할 뿐이었다. 그 뒤 황후는 예전의 화색과 생기를 되찾았고, 자암산 바위에 갇힌 청년은 황후에 대한 연정 때문에 영영 신승의 구원을 받지 못하고 오늘날까지 바위틈에서 고뇌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모티프 분석]

자암산 석불김해시 진영읍 봉화산에 있는 석불이다. 봉화산은 원래 ‘자암산(子庵山)’이라고 했는데 1963년에 ‘봉화산’으로 개칭하였다. 자암산수로왕의 다섯째 아들이 부모님의 만수무강을 기원하기 위해 세운 자은암(子恩庵)이라는 암자가 있는 산이다.

「자암산 석불」은 신라 시대를 배경으로 하여 중국 황실과 연계한 전설이다. 일반적으로 중국에서 난제를 해결할 지혜를 가진 인물 혹은 신비의 명약을 찾아 남쪽으로 내려온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자암산 석불」은 신라에서 황후를 사랑한 청년을 징치한다는 이야기이다. 또 황후의 꿈에 밤마다 찾아오는 청년은 ‘야래자 설화(夜來者 說話)’로 볼 수 있는데 백제를 세운 견훤의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밤마다 침실로 찾아와 여인이 임신을 하게 되자 도포 자락에 실을 묶어 낮에 실을 따라가 보니 지렁이가 있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야래자 설화는 신이한 능력을 가진 인물의 탄생과 관련이 있으나 「자암산 석불」은 청년의 연정을 담은 이야기에 그치고 있다. 중국에 없는 비범한 인물도 아니고, 신이한 탄생을 예고하는 전설도 아닌 황후를 사랑한 청년에 대한 징치라는 점에서 신라 청년의 영웅성이 약화되어 나타난 이야기로 볼 수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