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봉사」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1290
한자 -寺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삼문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한양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83년 - 「중봉사」 『내고장 전통』에 수록
관련 지명 중봉산 - 경상남도 김해시 삼문동 지도보기
성격 전설
주요 등장 인물 승려|도사
모티프 유형 절맥담

[정의]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서 폐사된 중봉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채록/수집 상황]

「중봉사」는 1983년 김해군에서 발간한 『내고장 전통』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김해시 장유면 서북쪽에 중봉산이 있는데 중봉산에는 서낙동강에서 흘러나오는 조만강, 조만강의 지류인 율하천이 흐르고 있고, 중봉산 끝자락에 내운폭포가 있다. 자연마을로 능동, 삼문, 월산, 절미마을이 있는데 능동은 중봉산 아래 있다고 하여 조선 철종 때까지 ‘중리’라고 하였다. 삼문, 능동, 월산을 삼문리라고 하는데 삼문리에는 중봉사의 산문(山門)이 있어 사문리(沙門理)라고도 하였다. 중봉산에는 중봉사라는 큰 절이 있었으나 현재 폐사되고 말았으며, 이런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옛날 중봉사라는 큰 사찰이었다. 중이 수백 명이요, 절 앞에 주점이 28호나 있었다고 한다. 절 식구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쌀 씻은 뜨물이 시내를 따라 멀리 무계교에까지 허옇게 떠내려 왔다고 한다. 이 절의 뒷산에는 동삼이 났으며, 또 마시면 힘이 끝없이 솟는다는 ‘장군수(將軍水)’라는 약물이 있었다. 중봉사의 중들은 동삼을 캐어 먹고 장군수의 물을 마시니 그 힘이 굉장히 강해졌다. 중들은 마침내 동네로 내려와서 난폭한 행동을 하고 백성들을 괴롭혔다. 이에 신벌이 내려서 도사가 나타나 승방에 빈대를 놓고 갔다. 이 빈대가 일시에 번식하여 절은 폐사(廢寺)가 되어 버렸다고 한다.

그 뒤 이 절터의 바위틈에는 빈대가 있었다고 전하며, 또 그 당시 중들이 물을 마시던 은잔(銀盞)을 물에 띄워 놓고 가버렸는데 바람이 조금만 세게 불면 어디에서인지 그 은잔의 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중봉사」는 한때 융성했던 사찰이 망하게 된 이력을 담고 있다. 사찰이 융성했던 때를 상징하는 것은 스님의 숫자와 신이한 물건이다. 스님이 수백 명이었으며, 쌀 씻은 물이 멀리까지 흘러갔다는 데서 얼마나 큰 절이었는지 알 수 있다. 또 신이한 물건으로 동삼과 장군수가 있었다. 스님과 신이한 물건은 중봉사가 이름난 절이 되는 데 기여했을 것이나 결국 이 두 요인으로 인해 절이 망하게 된다. 신이한 물건이 중생을 이롭게 하는 데 쓰이는 것이 아니라 스님의 향략을 위해 사용된다. 그리하여 절 앞에 주점이 28호가 생겨났으며, 스님들이 동네 사람들에게 난폭한 행동까지 서슴지 않았으니 민심을 잃고 만다. 중생을 구제할 책무를 버린 타락한 승려들을 벌하기 위해 도사가 나타나 빈대를 놓고 가는데, 결국 한때 융성하던 절도 종교적 책무를 다하지 않으면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벌레로도 망할 수밖에 없음을 알려 주는 전설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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