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13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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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詩 |
영어공식명칭 | Poems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미진 |
[정의]
경상남도 김해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한 시인들이 자연이나 인생에 대한 감흥이나 사상을 함축적이고 운율적인 언어로 표현한 문학 장르.
[개설]
김해 지역 시인의 활동은 1920년대 중반부터 시작되었다. 김해 지역을 대표하는 시인에는 김대봉(金大鳳)과 정진업(鄭鎭業)이 있다.
[김해 근대시의 출발과 김대봉의 시]
1920년대 중반 김해 지역의 아동과 청년이 일간지와 문예지 등을 통해 문학 작품을 발표하면서 김해의 근대 문학은 출발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의 작품은 주로 시와 동시에 편중되어 있었는데, 김남배[시 「당신을 생각하고」], 박복순[시 「꿈의 백조」 외], 이연순[시조 「잡음」], 황석대[시조 「심송」] , 구왕삼[동시 「샘물」 외] 등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김해 지역 근대 시문학의 출발과 함께 그 시기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김대봉(金大鳳)을 꼽을 수 있다. 김대봉은 1908년 김해에서 태어나 김해공립보통학교[현 동광초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본명과 ‘김포백(金抱白)’이라는 필명으로 1927년 9월 13일 『조선일보』의 학생 문예란에 시 「농부의 노래」를 발표한 이후 의사로 활동하면서도 각종 일간지와 잡지에 시와 동시, 소설, 평론 등을 발표하는 등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쳤다. 특히 동요와 동시를 포함하여 90여 편 이상의 시를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38년 창간된 『맥』 동인으로 활동하였으며, 같은 해에는 시집 『무심』을 출간하였다.
김대봉은 다양한 시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시인으로 평가 받는데, 특히 현실주의적이거나 역사의식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시편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33년 11월 『신동아』에 발표한 시 「탁랑의 낙동강」은 “흘러가라 흘러가라 낙동강이여/ 대저들이 한 입에 들어가도/ 노전을 잃은 사만의 생민이 추운에 잠길 때도/ 핍박된 생에 쫓기는 이산군의 떠남을 볼 때에도 심장을 팔아먹은/ 매소부같은 역할에 너는 무력한 침묵과 불패한 정신에 헐덕이다// 이와 같이 네가 일절을 멸각하는 동안/ 노예의 목장인 대저들은/ 불법의 생산지 대저들은/ ××××의 탐욕처인 대저들은/ 거미줄같은 소작의 연명선을 빼앗아갔나니// 누구가 나무뿌리 풀잎 먹기를 좋아하겠느냐 노예의 낙인 아래 이사를 즐기겠느냐/ 흘러가라 흘러가라 이 땅을 등지고/ 흘러가라 낙동강 낙동강이여” [시 「탁랑의 낙동강」의 부분]와 같이 자신이 보고 자란 낙동강 변과 김해평야[대저들]를 통해 1930년대 일제에 의해 수탈당하는 궁핍하고 절망적인 식민지의 현실을 뚜렷하게 드러낸다.
[정진업의 시집 『김해평야』 속 김해]
김해에서 태어난 정진업(鄭鎭業)[1916~1983]은 5권의 시집 『풍장』[1948], 『김해평야』[1953], 『정진업 작품집』1[1971], 『불사의 변』[1976], 『아무리 세월이 어려워도』[1981]와 산문집 『정진업 작품집』2[1971], 번역서 『시와 아나키즘』[1983]을 출간하였다. 주로 경상남도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당대 현실을 정면으로 다루는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특히 시집 『김해평야』[1953]는 고향인 ‘김해’를 배경으로 전쟁기의 절망적인 삶을 시적으로 형상화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는 고향 김해에 대한 애정이 자리하고 있다.
“만장대에 올라 바라는/ 내고장 김해 들에/ 딸기빛 노을은 타고 있었다// 가람은/ 연연 칠백리를 감돌고/ 갈댓잎 함께 강바람에 나부대는/ 사래 긴 보리 이랑에/ 모래 알로 영그는/ 수전 벼 포기// 거기 흙두더지의 나고 죽는/ 먼 피의 요람은/ 오늘도/ 피 같은 노을에 젖어 있었다// 아차 한번 일어서는/ 낙동 물구비// 김해 들 만경 호답이/ 황해로 이을지라도/ 되돌아 오는것도/ 멎는 것도 아닌/ 내닫기만 하는/ 허랑한 세월이여// 딸기빛 노을이 한창인/ 김해 들을 바라며/ 만장대 송뢰송에/ 홀로 마음하는것// 흙두더지여/ 흙을 쪼아/ 옥토는 여기 만년/ 백골 묻어/ 꽃 피는/ 보금자리가 되라”[「김해평야」 전문]
「김해평야」는 화자가 만장대(萬丈臺)에서 김해평야를 내려다보는 것에서 시작된다. 만장대는 김해시 분산(盆山)에 위치에 있으며, 삼국 시대에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해 건립된 분산성(盆山城)에 조선 말 흥선대원군이 부여한 명칭이다. 내려다보이는 김해평야의 전경을 그리며 김해평야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흙두더지와 같은 김해 민중의 비참한 삶을 한탄하지만, 그 모든 것을 품어내는 김해평야와 민중의 삶에 대한 애정이 드러난다.
이 외에도 시 「갈대」에서는 낙동강 근처에 자라는 갈대를 제재로 하여 고향을 떠나는 소녀로 대표되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그려내고 있으며, 「낙동강」에서는 평야를 기름지게 만들어 좋은 쌀을 생산하게 하는 낙동강과 부지런한 민중들을 나란히 위치시킨다. 그렇지만 정작 “은혜받아 본 적 없는” 가난한 민중과 낙동강에 연민을 느끼는 한편, 그럼에도 결국 바다에 이르게 될 낙동강처럼 민중의 삶도 계속될 것이라는 희망을 노래한다. 또한 「전훈에게」, 「어머니의 노래-전선의 아들에게」, 「두견」과 같은 시편들에는 전쟁기의 고향에 대한 심사와 전쟁으로 희생된 사람들의 삶이 그려지고 있다. 정진업이 시집의 제목을 ‘김해평야’로 설정한 것은 “개인적·역사적 수난기를 고향 김해의 정기로 극복하자는 의도”[문선영, 244쪽]로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