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차성재허선생함허정강회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1310
한자 敬次性齋許先生涵虛亭講會韻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이영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855년 - 노상직 출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931년 - 노상직 사망
성격 한시
작가 노상직

[정의]

경상남도 김해 출신의 근대 지식인 노상직허전을 찾아가 배웠다는 내용을 읊은 한시.

[개설]

소눌(小訥) 노상직(盧相稷)[1855~1931]은 경상남도 김해시 한림면 금곡리에서 태어난 근대 전환기 지식인으로서 나라가 강제 병합된 1911년 맏형 대눌(大訥) 노상익(盧相益)과 함께 중국으로 망명하여 우국지사들과 국권 회복의 길을 모색하였다. 이후 귀국하여 자암서당(紫岩書堂)을 개설하고 학문을 연구하며 후학을 양성하고, 자신의 저술뿐만 아니라 각종 교육서와 문중이나 지역 유현들의 문헌 등 각종 서적을 출간하거나 교정에 직접 참여하였다. 그리고 김해 유림 대표로 제자들 13명과 함께 파리장서(巴里長書)에 서명하여 김해와 밀양, 창녕 등지의 유림 규합에 주동적인 역할을 하였다.

성재(性齋) 허전(許傳)[1797~1886]은 성호(星湖) 이익(李瀷)[1681~1763]-순암(順菴) 안정복(安鼎福)[1712~1791]-하려(下廬) 황덕길(黃德吉)[1750~1827]로 이어지는 근기(近畿) 남인계(南人系)의 학맥을 이은 인물로 김해도호부사로 재임한 1864년 3월부터 1867년 7월까지 3년여 동안 지역 인재를 양성하여 강우(江右) 지역의 학풍을 크게 진작시킨 인물이다.

「경차성재허선생함허정강회운(敬次性齋許先生涵虛亭講會韻)」『소눌선생문집(小訥先生文集)』 권1에 수록된 7언 절구로, 유학사에서 영남의 중심인물로 꼽히는 두 인물의 관계를 보여 주는 시이다.

[내용]

「경차성재허선생함허정강회운(敬次性齋許先生涵虛亭講會韻)」[삼가 성재 선생의 함허정 강회에 차운하다]

포급구구서차심(抱笈劬劬誓此心)[책보 안고 부지런히 임할 이 마음 맹세하니]

정지오도극정심(定知吾道極精深)[우리 도 지극히 정밀하고 깊음을 제대로 알겠네]

도훈기독함정회(陶薰豈獨涵亭會)[훈도가 어디 함허정에서만 이루어지겠나]

불권당고사사림(不倦堂高士似林)[불권당엔 선비들이 숲을 이룬 듯하네]

결구(結句)의 ‘불권당(不倦堂)’은 허전의 별호로, 허전은 불권당에서 세상을 떠났다. 12살의 나이에 허전을 찾아 면학(勉學)할 것을 맹세하고, 도학의 깊이에 대해 깨달아 가는 소눌 노상직의 자세를 보여 주는 시이다. 지금은 현존하지 않는 함허정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강회와 허전의 불권당에서 이루어진 강학 등 일제 강점기 경상우도 지역에서 이루어진 ‘강회(講會)’를 유추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근대 전환기와 일제 강점기 김해를 중심으로 하는 경상우도 지역의 유학을 대표하는 두 인물의 조우를 읊었다는 점에서 역사적 현장의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소눌 노상직성재 허전, 두 인물의 관계를 설명하는 중요한 자료가 되는 시이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