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 산포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1330
한자 遺物 散布址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시대 선사/청동기,고대/삼국 시대,고려/고려 전기,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지병목

[정의]

경상남도 김해시에 있는 유물 산포지.

[개설]

사람이 머물다 떠나 버려진 시설이나 물건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땅속에 묻히거나 썩어 없어져서, 원래의 모습은 사라지고 극히 일부만이 남는다. 또한 하천의 범람이나 태풍 등 자연재해에 의해, 혹은 인간의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인 파괴 행위로 인해 그 흔적들은 변형되거나 사라진다. 다양한 이유로 사라진 유적의 흔적 일부가 우연한 기회에 밖으로 드러나서 발견되기도 한다. 화산재에 덮여 2000년 가까이 땅속에 묻혀 있던 로마 시대의 폼페이 유적처럼 아주 극단적인 매몰과 발견의 예도 있다. 어느 지역에서는 토기 조각이나 기와 조각, 혹은 쇠 찌꺼기[鐵滓, Slag] 같은 것들이 흩어져 발견된다. 그러나 주변에 명확한 성격을 알 수 있는 유구나 유적이 없어 그 성격을 바로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언젠가 사람들이 살았거나 머물렀을 가능성이 있는 지역이다. 이러한 흔적[유물 등]들이 지표상에 흩어져 있는 곳을 ‘유물 산포지(遺物 散布地)’라고 한다. 땅이 깎이거나 파헤쳐져 드러난 절단면에 유물이 박혀서 발견되는 곳을 ‘유물 포함층(遺物 包含層)’이라고 하는데, 넓은 의미에서 유물 산포지와 비슷한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

[유물 산포지의 생성 배경 및 중요성]

유물 산포지가 생성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사라져 간 흔적의 일부 결과일 수도 있고, 혹은 [왕조 교체 후의 의도적 파괴 등과 같은] 의도적 파괴 행위 후에 남겨진 흔적일 수도 있다. 아니면 도굴처럼 누군가 땅속에 있는 유물을 의도적으로 파헤쳐 원 상태가 변경된 과정에서 버려지거나 남겨진 유물들이 흩어질 수도 있다. 홍수나 태풍 등 자연적인 원인에 의한 것일 수도 있고, 사람이나 동물 등 그 밖의 수단들에 의해서 다른 곳으로부터 이동되었을 수도 있다. 혹은 땅속에 옛날 사람들이 생활하던 유적이 실제로 있으며, 그 일부가 드러난 것일 수도 있다. 따라서 유물 산포지가 꼭 옛날에 사람이 살았던 지역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곳일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고고학 연구자들은 현장에서 조사할 때 이들 유물 산포지의 존재에 가장 먼저 주목하고 주된 분석 대상으로 다룬다.

토기 조각 등이 많이 흩어진 주변에는 고분 등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무덤이 도굴이나 경작 등으로 파괴된 후 버려진 예에 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자기 조각과 갑발(匣鉢)[점토로 만든 원기둥꼴 그릇], 도짐이[도기를 구울 때 도기를 놓는 받침] 등이 발견되면 주변에 가마터[도요지]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기와나 초석 등이 있으면 건물터가 있었을 가능성이, 쇠 찌꺼기나 불에 구워진 흙덩이들이 많으면 쇠를 다루던 야철(冶鐵) 관련 시설이 있을 가능성이 그만큼 높다. 따라서 어느 지역이 고고학적 조사의 대상이 되면, 가장 먼저 하는 일 중의 하나가 현지에서 이러한 유물 산포지가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이다. 풀이 우거지거나 눈이 덮여 있으면 이런 유물들을 찾기 어렵기 때문에 주로 이른 봄이 조사하기 좋은 시기이다.

유물 산포지에 대한 해석에 주의해야 할 점도 있다. 유물 산포지라 생각된 어느 지역의 유물들이 본래 위치에서 멀리 이동해 온 예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하천의 대규모 범람이나 공사 등으로 유물들이 원래 위치에서 훨씬 벗어나는 일도 있다. 또한 중장비를 동원한 대규모 건설·토목 공사를 할 때는 어느 지역의 흙을 파서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때 파헤쳐진 흙들 속에 있던 유물 조각들이 다른 곳으로 옮겨진 후 확인되면 유물 산포지의 성격이 잘못 이해될 수도 있다.

유물 산포지는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되며, 주변의 여러 유적과 상호 관련이 깊을 수 있다. 유물 산포지가 특정한 성격의 유적이나 시기의 것임을 알려 주는 경우도 있지만[예: 삼국 시대 토기 산포지], 여러 시기의 다양한 흔적들이 뒤섞여 있는 예[삼국 시대~조선 시대 유물 산포지]도 많다. 유물 산포지가 제공하는 정보를 바탕으로 조사한 결과가 중요한 성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그 중요성을 고려해 보존 방안과 성격 확인을 위한 계획들을 마련하여 체계적인 조사와 관리를 해야 한다.

[김해 지역의 주요 유물 산포지와 그 특징]

김해 지역은 오랜 역사와 함께 중요한 정치체의 중심지였으므로 많은 역사 유적이 남아 있다. 거의 전 지역에서 유물 산포지가 확인되고 있다. 지금까지 확인된 유적 외에도 앞으로 진행될 조사를 통해 유물 산포지의 존재는 증가하겠지만, 사라지거나 훼손되는 유물 산포지 또한 적지 않은 현실이다.

김해 시내에서는 구산동·주촌면 천곡리·명법동 등에서 민무늬 토기[무문 토기]가 다수 포함된 유물 산포지가 확인되었다. 이는 이 지역이 청동기 시대 사람들의 주 활동 무대였음을 알려 준다. 김해시 주촌면 천곡리 연지마을에 있는 민무늬 토기 산포지 주변에서는 고인돌[연지마을·내연마을]들이 확인되고 있어 상호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구산동 유물 산포지에서는 토기 조각과 분청사기 조각, 기와 조각 등 통일 신라 시대~조선 시대의 유물들이 확인되었으며, 이들 자료를 기초로 발굴 조사한 결과 기와 가마터가 확인되었다. 김해시 전체로 볼 때, 특히 서부 지역에서 유물 산포지가 많이 확인되고 있다. 김해시 진례면청천리송현리, 상동 후포마을에서는 삼국 시대 것으로 보이는 토기 조각이 다수 포함된 유물 산포지가 확인되었다. 이 밖에도 청동기 시대[송정리·신안리]와 삼국 시대[담안리·송정리·청천리·시례리], 고려 시대[청천리·담안리] 및 조선 시대[고무리·시례리·초전리·산본리]에 걸친 다양한 유물 산포지가 김해시 진례면에서 확인되었다. 인근의 김해시 주촌면에서는 삼국 시대[선지리·원지리·천곡리]와 고려 시대[덕암리], 조선 시대[농소리·천곡리] 유물이 확인되는 유물 산포지가 보고되었다.

김해시 진영읍에서도 역시 삼국 시대[본산리·신용리·여래리·좌곤리]와 고려 시대[의전리] 및 조선 시대[본산리] 유물들이 포함된 유물 산포지가 계속 보고되고 있다. 그리고 김해시 한림면에서는 청동기 시대[안하리]부터 삼국 시대[명동리·용덕리·퇴래리·신천리], 고려 시대[안곡리], 조선 시대[용덕리·퇴래리]에 이르는 거의 모든 시기와 관련한 다양한 유물 산포지가 보고되었다. 김해시 장유면 관동리·내덕리·하손리 등지에서도 유물 산포지가 발견되었으며, 용두산 7부 능선에서도 토기 조각과 청자 조각 등이 있는 유물 산포지가 확인된 바 있다. 김해시 대동면 주동리에서는 백자 조각이 다수 확인되어 주변에 백자 가마터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김해시 대동면 덕산리 일대에서는 청동기 시대~조선 시대의 다양한 유물이 포함된 유물 산포지가 확인되었는데, 이는 주변의 각성산성 및 덕산리 고분군 축조 집단 등과 관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들 유적지는 이 지역이 오랜 기간 동안 중요한 요충지였음을 알려 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김해 지역에서는 거의 전 시기에 걸친 다양한 유물 산포지들이 도처에서 확인되고 있다. 너무 흔하기 때문에, 그리고 당장 명확한 유구나 유적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가볍게 취급되어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 지역의 유물이나 유적은, 사소하게 보이는 유물 파편 하나라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잘 관찰하고 보존하려는 지역 주민의 관심과 열정이 뒷받침될 때 빛을 발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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