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113
한자 松亭里
영어공식명칭 Songjeong-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진례면 송정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미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4월 1일 - 경상남도 김해군 진례면 송정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95년 5월 10일 - 경상남도 김해군 진례면 송정리에서 경상남도 김해시 진례면 송정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면적 5.1㎢
가구수 886가구
인구[남/여] 1,636명[남 876명/여 760명]

[정의]

경상남도 김해시 진례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송정리진례면의 면 소재지가 있는 중심 리로서, 가야 시대 고분군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일찍부터 사람들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이다. 400여 년 전 청주 송씨(淸州 宋氏)가 입향한 후 집성촌을 이루었으며, 마을 입구에 주민들의 교육을 담당했던 벽송서당이 있었다고 전한다.

[명칭 유래]

송정리 지역에는 옛날부터 소나무 정자가 많아서 송정(松亭), 송정자, 송정지라 불렀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이전에는 숲이 많이 우거져서 백송정, 벽송정이라고도 하였으나 일제 강점기에 나무들을 다 베어 버렸다고 한다. 한편, ‘송정’이라는 지명은 동쪽에 형성된 마을[동쪽 마을]이라는 의미를 한자로 차자(借字)한 것이라고도 하고, 송정리가 낙남정맥(洛南正脈)의 일부인 비음산[468m]의 동쪽 사면에 형성된 것과 관련한 지명이라는 설도 전한다.

[형성 및 변천]

송정리는 조선 후기 김해도호부(金海都護府)의 진례면에 속하였다. 진례면[청천면 또는 청내면]이 1894년(고종 31) 진례면과 율리면으로 분리되었을 때 송정리시례리, 청천리, 초전리, 신안리와 함께 진례면의 관할이 되었다. 진례면이 속한 김해 지역은 1895년(고종 32) 23부제가 시행되면서 진주부 김해군이 되었고, 1896년 13도제가 시행되면서 경상남도 김해군으로 개편되었다. 1914년 4월 1일 행정 구역 개편 때 진례면과 율리면에 중북면 일부를 병합하여 김해군의 14개 법정면 중 하나인 진례면으로 하고, 송정리에 산성과 청곡, 둔덕을 합하여 진례면의 법정리인 송정리로 하였다.

1920년쯤 진례면사무소가 주재소와 함께 진례면 초전리에서 송정리로 옮겨 왔다. 송정리 자연 마을인 청곡은 조선 후기 이후 옹기 생산지로 유명해진 곳인데, 5일장이 서고 보건소와 우체국, 농협 등이 설치되면서 마을의 규모가 커지자 1996년 청곡1구, 청곡2구로 나누어졌다. 진례면은 1981년 7월 1일 김해군과 김해시가 분리될 때 김해군의 관할로 남았다. 1995년 5월 10일 김해군과 김해시가 통합하여 김해시 진례면 송정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송정리진례면을 이루는 침식 분지의 서쪽에 자리한 지역으로 서부는 높은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곳에서 발원한 하천이 동류하며 침식 분지를 형성하여 동부 지역은 낮은 평지를 이룬다. 서쪽 낙남정맥의 일부인 비음산 분수령을 경계로 경상남도 창원시와 마주한다. 비음산 산지에서 발원한 하천은 도강저수지와 청곡저수지를 형성하며 북쪽 진례면 시례리와 경계를 이루며 흐른다. 그보다 남쪽에 있는 하천은 신월저수지 및 토성소류지를 형성하고 진례면 신안리와 경계를 이루며 흘러서 화포천에 합류한다.

[현황]

2023년 12월 31일 기준 송정리의 면적은 5.1㎢이며, 886가구, 1,636명[남자 876명, 여자 76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자연 마을로 송정, 청곡1구, 청곡2구, 상둔덕, 하둔덕, 산월이 있다. 총인구에서 내국인은 감소하고 외국인은 증가하는 추세인데, 이는 송정리 일대에 제조업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외국인 근로자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또 그동안 농경지로 이용되던 지역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라 향후 인구가 대폭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송정리는 분청 도자기의 고장답게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김해분청도자박물관이 있으며, 매년 10월 말쯤 전국 규모의 김해분청도자기축제가 열린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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