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174
한자 內德洞
영어공식명칭 Naedeok-dong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내덕동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송경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4월 1일 - 경상남도 김해군 장유면 내덕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95년 5월 10일 - 경상남도 김해군 장유면 내덕리에서 경상남도 김해시 장유면 내덕리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2013년 7월 1일 - 경상남도 김해시 장유면 내덕리에서 경상남도 김해시 내덕동으로 개편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13년 7월 1일 - 경상남도 김해시 내덕동, 무계동, 부곡동, 신문동, 유하동을 관할하는 장유1동[행정동] 설치
성격 법정동
면적 1.82㎢
가구수 1,839가구
인구[남/여] 3,860명[남 2,060명/여 1,800명]

[정의]

경상남도 김해시에 속하는 법정동.

[개설]

내덕동장유동의 북동쪽에 자리하며, 북쪽은 김해시 주촌면, 동쪽은 김해시 명법동, 남쪽과 서쪽은 김해시의 무계동, 유하동과 접한다. 행정동은 장유1동이다.

[명칭 유래]

내덕동은 조선 시대에 용덕리(龍德里) 또는 덕촌리(德村里)로도 불렸다. 내삼천의 범람을 막기 위한 제방이 조성되어 있어 ‘덕(德)’ 지명이 비롯된 것으로 추정되고, 지명을 연구하는 일부 학자는 ‘중심이 되는 마을’이라는 뜻을 한자로 차자(借字)하여 내덕이라 이름하였다고 주장한다.

[형성 및 변천]

내덕동은 고려 시대 유하촌 지역이었다. 1789년(정조 13) 편찬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는 지금의 내덕동을 관할하는 장유1동과 함께 장유2동, 장유3동이 김해도호부(金海都護府)의 유등야면(柳等也面) 지역으로 18개 리[북포리(北浦里), 하손리(下孫里), 부곡리(釜谷里), 유등야리(柳等也里), 내덕리(內德里), 외덕리(外德里), 거물소리(巨勿所里), 신문리(新門里), 건림리(件林里), 대청리(大淸里), 제며리(濟旀里), 상점리(上店里), 사기점리(沙器店里), 덕정리(德亭里), 적항리(赤項里), 관동리(寬洞里), 장유리(長遊里), 태장리(台長里)]를 관할하였다. 유등야면은 1810년(순조 10) 유하면(柳下面)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1879년(고종 16) 다시 유등야면이 되었고, 1885년(고종 22) 장유면으로 바뀌었다. 1888년 장유면이 장유면 8개 리[부곡리, 유하리(柳下里), 내덕리, 무계리(茂溪里), 대청리, 삼문리(三文里), 신문리(新文里), 관동리]와 수남면 4개 리[율하리(栗下里), 장유리, 응달리(應達里), 수가리(水佳里)]로 나누어졌다. 장유면과 수남면이 속한 김해 지역은 1895년(고종 32) 23부제가 시행되면서 진주부 김해군이 되었고, 1896년 13도제가 시행되면서 경상남도 김해군으로 개편되었다.

1914년 4월 1일 행정 구역 개편 때 장유면과 수남면을 병합하여 김해군의 14개 법정면 중 하나인 장유면으로 하고, 옛 장유면 내덕리에 유하리의 일부를 합하여 장유면의 법정리인 내덕리로 하였다. 1981년 7월 1일 김해읍이 시로 승격하며 김해군과 분리되었을 때 장유면은 김해군의 관할로 남았다. 1995년 5월 10일 김해군과 김해시가 통합하여 김해시 장유면 내덕리가 되었다. 2013년 7월 1일 장유면이 행정동인 장유1동, 장유2동, 장유3동으로 분할, 설치되면서 내덕리는 유하리, 부곡리, 무계리, 신문리와 함께 각각 법정동으로 전환되어 장유1동의 관할이 되었다.

[자연환경]

내덕동의 남쪽에 용두산[114.6m]이 있다. 유하천(柳下川)이 내덕동에서 조만강으로 유입된다.

[현황]

2023년 12월 31일 기준 내덕동의 면적은 1.82㎢이며, 1,839가구, 3,860명[남자 2,060명, 여자 1,80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자연 마을로 내덕, 용두, 외덕이 있다. 이 중 외덕은 1990년대 장유지구 도시개발사업이 이루어지면서 인근 바위공원에 살던 주민들이 공동으로 부지를 매입하여 조성한 마을이다. 부산광역시와 경상남도의 창원시, 양산시, 밀양시를 연결하는 장유IC와 서김해IC의 길목에 자리하여 경상남도 동남권의 교통 요충지 역할을 한다. 독립운동가인 낙운(洛雲) 김승태(金升泰)의 묘소가 내덕동에 있으며, 용두산 정상부에 1919년 3월 1일 무계장터 만세 운동으로 희생된 독립 투사들을 기리는 김해 삼일운동 기념탑(金海 三一運動 紀念塔)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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