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1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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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文洞 |
영어공식명칭 | Sinmun-dong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신문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미영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4월 1일 - 경상남도 김해군 장유면 신문리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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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시기/일시 | 1995년 5월 10일 - 경상남도 김해군 장유면 신문리에서 경상남도 김해시 장유면 신문리로 개편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8년 - 경상남도 김해시 신문동 장유신도시 택지개발사업 개시 |
변천 시기/일시 | 2013년 7월 1일 - 경상남도 김해시 장유면 신문리에서 경상남도 김해시 신문동으로 개편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13년 7월 1일 - 경상남도 김해시 내덕동, 무계동, 부곡동, 신문동, 유하동을 관할하는 장유1동[행정동] 설치 |
성격 | 법정동 |
면적 | 3.85㎢ |
가구수 | 3,582가구 |
인구[남/여] | 9,201명[남 4,666명/여 4,535명] |
[정의]
경상남도 김해시에 속하는 법정동.
[개설]
신문동은 조선 시대에 상봉림, 하봉림, 범동포, 신문, 용산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중 용산에는 신문진(新門鎭)이 설치되어 있을 정도로 군사적 요충지였다. 1934년 이전까지 오일장인 신문장(新門場)이 신문 대알산 위에서 열렸다고 한다. 녹산수문이 건설되기 전까지는 경작지가 적었으나 수문이 생긴 이후 염해지(鹽害地) 등을 개간하여 농경지로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경지 정리가 이루어졌고 양수장이 설치되면서 벼농사를 짓기에 좋은 마을이 되었으며, 주민들은 비닐하우스에서 채소를 재배하고 축산 등으로 높은 소득을 올리게 되었다. 1998년부터 장유신도시가 개발되며 대규모 아파트 단지 및 문화 시설이 들어섰다. 용산은 과거 면 소재지 다음으로 큰 자연 마을이었으나 1995년부터 장유신도시 개발이 이루어졌고, 상업지로 용도 변경되어 2023년 12월 기준 김해관광유통단지로 개발되고 있다. 과거 조만강의 포구 마을이었던 범동포 주변만 옛 모습이 남아 있으며 벼농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행정동은 장유1동이다.
[명칭 유래]
조선 시대 신문진이 설치되어 있는 마을이라 ‘신문리(新門里)’라고 불렀다. 신문진이 웅천현(熊川縣)[현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웅천동]으로 이전한 후 ‘신문(新門)’에서 ‘신문(新文)’으로 한자를 바꾸었다고 한다. 한편, 반룡산[238.1m]의 동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을 가진 우리말을 한자화하여 ‘신문리’라 불렀다고도 한다.
[형성 및 변천]
신문동 지역은 고려 시대 장유촌 지역이었다. 1789년(정조 13) 편찬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는 지금의 신문동을 관할하는 장유1동과 함께 장유2동, 장유3동이 김해도호부(金海都護府)의 유등야면(柳等也面) 지역으로 18개 리[북포리(北浦里), 하손리(下孫里), 부곡리(釜谷里), 유등야리(柳等也里), 내덕리(內德里), 외덕리(外德里), 거물소리(巨勿所里), 신문리(新門里), 건림리(件林里), 대청리(大淸里), 제며리(濟旀里), 상점리(上店里), 사기점리(沙器店里), 덕정리(德亭里), 적항리(赤項里), 관동리(寬洞里), 장유리(長遊里), 태장리(台長里)]를 관할하였다. 유등야면은 1810년(순조 10) 유하면(柳下面)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1879년(고종 16) 다시 유등야면이 되었고, 1885년(고종 22) 장유면으로 바뀌었다. 1888년 장유면이 장유면 8개 리[부곡리, 유하리(柳下里), 내덕리, 무계리(茂溪里), 대청리, 삼문리(三文里), 신문리(新文里), 관동리]와 수남면 4개 리[율하리(栗下里), 장유리, 응달리(應達里), 수가리(水佳里)]로 나누어졌다. 장유면과 수남면이 속한 김해 지역은 1895년(고종 32) 23부제가 시행되면서 진주부 김해군이 되었고, 1896년 13도제가 시행되면서 경상남도 김해군으로 개편되었다.
1914년 4월 1일 행정 구역 개편 때 장유면과 수남면을 병합하여 김해군의 14개 법정면 중 하나인 장유면으로 하고, 옛 장유면 신문리에 봉림리와 용산리, 삼문리의 각 일부를 합하여 장유면의 법정리인 신문리로 하였다. 1981년 7월 1일 김해읍이 김해시로 승격되며 김해군과 분리되었을 때 장유면은 김해군의 관할로 남았다. 1995년 5월 10일 김해군과 김해시가 통합하여 김해시 장유면 신문리가 되었다. 2013년 7월 1일 장유면이 행정동인 장유1동, 장유2동, 장유3동으로 분할, 설치되면서 신문리는 유하리, 내덕리, 부곡리, 무계리와 함께 각각 법정동으로 전환되어 장유1동의 관할이 되었다.
[자연환경]
신문동의 동쪽은 조만강이 남류하며 곡류하고 있고, 서쪽에는 반룡산이 있다. 남쪽은 율하천이 동류하여 조만강으로 흘러들고, 북쪽은 대청천이 동류하며 조만강으로 흘러들어 간다. 신문동의 서쪽은 반룡산의 동쪽 사면에 해당하며 동쪽은 조만강의 범람원으로 평지를 이룬다. 반룡산 동쪽 사면을 제외하면 모두 하천으로 둘러싸여 있어 여러 하천이 복합적으로 형성한 범람원 지형이다.
[현황]
2023년 12월 31일 기준 신문동의 면적은 3.85㎢이며, 3,582가구, 9,201명[남자 4,666명, 여자 4,535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1998년부터 장유신도시 택지개발사업이 시작되었으며, 2000년대부터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인구가 증가하였다. 앞으로 신문지구 개발이 가속화되면 인구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신문동의 서쪽인 반룡산 동쪽 사면으로 남해제2고속도로지선이 남북으로 종단하는데, 고속도로 아래쪽 자연 마을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개발되었다. 하봉림과 신문 사이에 지역의 교육을 담당하였던 장유중학교[1947년 사립 장유고등공민학교로 개교]가 있다. 신문동의 남쪽은 김해관광유통단지로 개발 중이며 김해농수산물종합유통센터, 롯데프리미엄아울렛 김해점, 김해롯데워터파크 등이 있다. 신문동의 동쪽 법동포 주변 일부만 농경지로 이용되고 있을 뿐 나머지 지역은 모두 개발되었거나 개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