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307
한자 金海鄕案
영어공식명칭 Gimhae Hyangan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백지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13년 - 『김해향안』 중 여섯 번째 향안 성책
소장처 김해향교 - 경상남도 김해시 향교길 21[대성동 224]지도보기

[정의]

조선 시대 김해 유향소를 출입하였던 인사들의 명단.

[개설]

『김해향안(金海鄕案)』은 조선 시대 김해부에 설치된 유향소(留鄕所)를 출입하였던 인사들의 명단이다. 유향소를 출입하던 구성원은 향원(鄕員)이라 불렀는데, 김해 지역의 유력한 재지 양반들이었다.

[역사적 배경]

유향소는 고려 말~조선 초 향촌 사회에 건립되었다. 재지 양반들은 유향소를 통해 지역 향론을 형성하였으며, 향촌 내에서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는 매개체로 활용하였다. 그 결과 유향소를 출입하면서 활동하고 있는 인사는 향촌 사회 내에서 영향력을 지닌 집단으로서 그 권위가 높았으며, 유향소에는 일정한 자격을 갖춘 인사만이 선발되어 출입할 수 있었다. 이들은 유향소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출입 인사의 명단인 향안을 작성하는 동시에 향안 입록 규정을 만들어 배타적으로 운영하였다.

[김해향안 작성 시기와 내용]

『김해향안』은 현재 김해향교에서 소장하고 있다. 현전하는 자료는 모두 6책이다. 이 중 5책은 조선 시대 유향소가 운영되었던 당시의 자료이고, 나머지 1책은 1913년 작성한 것이다. 6책의 향안을 시대 순서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향안은 1559년부터 1645년까지 김해 유향소에서 활동하였던 향원의 명단이다. 향원의 직역과 이름을 기재하였으며, 기재 당시 사망한 인물은 ‘선(仙)’으로 표기하였다. 두 번째 향안은 1599년부터 1672년까지 김해 유향소에서 활동하였던 향원의 명단이다. 기재 양식은 첫 번째와 동일하다. 세 번째 향안은 1611년과 1613년 향안을 묶은 것이다. 직역과 성명을 기재하였다. 네 번째 향안은 1726년 김해 유향소에서 활동하였던 향원을 수록한 것이다. 모두 28명을 수록하였는데, 이 중 12명이 도할(刀割)되어 16명만 확인할 수 있다. 직역과 성명을 기재하였다. 다섯 번째 향안은 을유년 김해 유향소에서 활동하였던 향원을 수록하였는데, 을유년의 언제인지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표제는 『봉승성교허록향안(奉承聖敎許錄鄕案)』이다. 14명을 수록하였는데, 3명이 도할되고 11명만 확인된다. 여섯 번째 향안은 1913년 성책한 것으로, 표제는 ‘김해향안’이다. 당시 전해지고 있었던 향안을 모아 필사한 것이다. 1599년부터 1774년까지 약 170년간 김해 유향소에서 활동하였던 향원을 수록하였는데, 모두 477명이 수록되어 있다. 이중 가문이 확인되는 인사는 모두 400명으로, 33개의 가문이 확인되었다. 청주 송씨가 55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이어 광주 안씨 39명, 김해 김씨·김해 허씨 37명 순이었다.

[향안 관련 자료]

김해향교에는 『향록정안초(鄕錄正案草)』, 완의류(完議類), 단자(單子), 서목(書目), 향중문서(鄕中文書) 등 『김해향안』과 관련 있는 고문서 80여 점이 전해진다. 이 고문서는 당시 향안 운영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특히 『향록정안초』는 향안 입록 원칙과 절차 및 입록 대상 등을 기록하고 있어 사료로서 가치가 높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