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3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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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鄕·所·部曲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신은제 |
[정의]
고려 시대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 설치되었던 특수 행정 구역.
[개설]
향·소·부곡은 고려 시대에 설치되었던 특수 행정 구역을 말한다. 고려 시대 김해부에는 3곳의 부곡과 5곳의 향, 4곳의 소가 있었다. 부곡은 대산부곡(大山部曲), 천읍부곡(川邑部曲), 수다부곡(水多部曲)이 있었는데 이 가운데 천읍부곡은 웅천현 소속이었다. 향은 제을미향(齊乙彌鄕), 성화례향(省火禮鄕), 달음포향(達音浦鄕), 감물야향(甘勿也鄕), 완포향(莞浦鄕)이 있었고, 소는 염소가 2곳, 자기소가 1곳, 도기소가 1곳 있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향과 부곡은 신라 때 처음 설치되어 고려로 계승되었고, 소는 고려 시대에 처음 설치되었다. 향·소·부곡의 설치에 대해서는 연구자들 사이에 견해의 차이가 있다. 향·소·부곡민들을 천민 집단으로 간주하면서 고대 노예제의 잔재로 이해하는 견해가 있고, 향·소·부곡민들을 양인으로 간주하면서 향과 부곡이 신라 때에는 현이 될 수 없었던 소규모의 지역이었다고 이해하는 견해가 있다. 다만 신라의 향과 부곡은 신라 말 고려 초의 격동기를 거치면서 성격이 변동하였는데, 고려의 건국에 반대한 지역들이 주로 향과 부곡 지역으로 편제되었던 것이다. 이 중 향·소·부곡민을 양인으로 본 후자의 견해가 상당수 연구자들에게 수용되고 있다. 고려는 건국 후 지방을 편제할 때, 각 지방을 서열화하였는데 이를 계서적 지배라고 한다. 향·소·부곡은 일반 군현 지역 아래 위치하면서 특수한 역을 담당하였던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김해 지역의 부곡과 향이 언제 설치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신라 때 소경이었던 김해는 고려 건국 직후 압해현으로 강등되었다가 성종 때 금주 안동도호부(金州 安東都護府)로 승격되었고 현종 때 방어사가 되었는데, 성종에서 현종 대 행정 구역을 재편하면서 부곡과 향을 두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관련 기록]
『신증동국여지승람』 권32 경상도 김해부 고적에 따르면, “대산부곡(大山部曲)은 엄산(嚴山)이라 하기도 하는데 부(府)의 서북쪽 45리 지점에 있다. 수다부곡(水多部曲)은 부의 동쪽 15리 지점에 있다. 제을미향(齊乙彌鄕)은 부의 남쪽 20리 지점에 있다. 성화례향(省火禮鄕)은 부의 남쪽 40리 지점에 있다. 달음포향(達音浦鄕)은 부의 동쪽 25리 지점에 있다. 감물야향(甘勿也鄕)은 부의 동쪽 20리 지점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내용]
고려는 통일 후 호족들이 할거하고 있던 지방을 통치해야 했다. 이를 위해 전국에 호구와 토지를 조사하였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전국을 구획하여 각 지방으로 편제하였다. 이를 ‘치읍(置邑)’이라 하였는데, 고려 치읍 과정에서 각 지역을 서열화시켜 지방을 일반 군현제 지역과 향·소·부곡과 같은 부곡제 지역으로 나누었다. 김해부 아래에는 3곳의 부곡이 확인되는데 대산, 수다, 천읍부곡이다. 이 가운데 천읍부곡은 『신증동국여지승람』 웅천현조에 수록되어 있다. 웅천현이 김해부의 속현이었으므로 『고려사』 지리지, 『경상도지리지』, 『세종실록』 지리지에서는 김해의 부곡으로 천읍과 대산을 수록하였던 것이다. 천읍부곡은 지금의 창원시 진해구에 위치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대산부곡은 창원시 의창구 대산면 일대로 추정하고 있다. 제을미향은 장유, 감물야향은 김해시 상동면, 달음포향은 김해시 생림면, 성화례향은 부산시 강서구 생곡동, 완포향은 창원시 진해구에 위치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향·소·부곡 지역에도 토성들이 존재하였는데 김해 지역의 경우 대산부곡에는 전(田)씨, 태(太)씨, 천읍부곡에는 공(公)씨, 완포향에는 전(田)씨가 있었고 나머지 지역에 대한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변천]
고려 전기의 통치 체제는 12세기를 거치면서 동요하고 있었다. 지방관이 파견된 주현에 비해 속현 지역에서 민들이 유망하려는 조짐이 발생하자 예종 대[1105~1122년] 속현 지역에 감무(監務)를 집중적으로 파견하기 시작하였다. 예종 대 시작된 지방의 동요는 인종 대와 무인 집권기를 거치면서 더욱 확대되었다. 특히 과중한 조세 부담을 안고 있던 향·소·부곡민들의 유망이 심화되었고 이들 지역이 공동화되는 현상이 발생하였다. 이러한 추세는 고려 말까지 이어져 조선이 건국된 이후 향·소·부곡은 지방 제도로서 기능할 수 없게 되었고 흔적만 남았다.
김해 지역에서 향·소·부곡이 소멸되었던 정확한 시기는 특정하기 어려우나, 조선 초가 되면 점차 소멸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세종실록』 지리지에서는 김해도호부에 ‘감물야촌’이라는 이름이 확인되는데, 이 단계에 감물야향이 감물야촌으로 변천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김해부의 향·소·부곡들도 조선이 건국된 이후 행정 구역을 정비하면서 소멸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의의와 평가]
향·소·부곡은 고려의 계서적 지방 지배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김해 지역에서도 이러한 지배 방식이 관철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