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4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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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幹會運動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전성현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서 전개된 민족 및 사회 운동.
[개설]
신간회 김해지회는 일제 강점기 김해 지역에서 활동한 민족 및 사회 운동 조직이다. 1928년 3월부터 1930년 8월까지 합법적인 청년 운동, 노동 운동, 여성 운동, 학생 운동, 소년 운동, 형평 운동 등을 전개 또는 지원하다가 일제의 탄압 및 신간회 해소와 맞물려 사라졌다.
[역사적 배경]
3·1운동 이후 일제에 저항하는 민족 및 사회 운동이 대대적인 탄압에 직면하였다. 일제의 민족 분열 정책에 의해 민족주의자들 중 일부가 일제에 타협하거나 아예 친일적인 방향으로 변절하였고, 사회주의자들에 대한 사상 탄압도 극도로 심화하였다. 그러자 비타협 민족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이 통일 전선의 형태로 신간회를 1927년 2월 15일 창립하였다. 신간회는 정치적 경제적 각성을 촉진하고 단결을 공고히 하며 기회주의를 일제 부인한다는 강령하에 지회를 조직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 결과 1927년 12월 무렵 전국에 100여 개의 신간회 지회가 설립되기에 이르렀다. 신간회 김해지회도 이와 같은 흐름 속에 설립되었다.
[경과]
김해청년동맹, 김해농민연맹 등 김해 지역 여러 사회 단체의 지원을 받아 1927년 11월 15일 신간회 김해지회 설립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이어 1928년 1월에는 신간회 본부로부터 지회 설립 승인을 받았다. 창립대회는 당초 2월 9일에 개최하려고 하였으나, 김해경찰서의 집회 금지 통보에 따라 한 차례 무산되었다. 이후 1928년 3월 21일 김해노동야학교 강당에서 회원 7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대회를 열고 신간회 김해지회의 설립을 공식화하였다.
신간회 김해지회는 창립대회에서 운동 방침을 결의하였는데, 언론·집회·결사의 자유, 의무 교육 제도 실시, 일본 도항 노동자의 규제 해금, 재만 동포 권익 옹호, 조선청년동맹·조선노동총동맹·조선농민총동맹 해금, 김천 금륭학원 폐지 철회, 김해 지역 현안과 관련된 각종 통계표 작성 및 지방 특수 문제 조사 등에 관한 것이었다.
신간회 김해지회의 임원진 구성은 1928년부터 1929년까지 확인할 수 있는데, 구성원을 통해 지회의 성격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다. 먼저, 김해청년회에서 활동하였던 대표적인 활동가들이 포함되었다. 더불어 진영 지역 활동가들과 김해기독청년회 인물들도 참여하였다. 그리고 김해청년동맹에서 활동하던 소장 인물들도 대거 포함되었다. 신간회 김해지회가 김해군 전체를 포괄하는 민족 및 사회 운동 조직으로 활동하였음을 알 수 있다.
신간회 김해지회는 김해 지역을 비롯한 조선 전 지역의 여성 노인, 기근 동포, 화전민, 수재 동포 등 약자에 대한 조직을 구성하고 지원과 구제에 힘썼다. 또한 여성을 위한 야학을 운영하고자 하였으며, 한글 및 역사학자를 초청하여 상식 대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한편, 1929년 발생한 광주학생운동의 여파 속에 김해 지역에서도 1930년 초순에 학생 만세 시위가 전개되었는데, 여러 단체와 더불어 신간회 김해지회가 배후에 있었다.
[의의와 평가]
신간회 김해지회는 김해 지역의 민족 및 사회 운동 계열 조직들이 연합하여 합법적인 방법으로 다양한 민족 운동과 사회 운동을 전개하던 통일 기관이었다. 비록 오랜 기간 활동하지는 못하였지만, 일제에 저항한 단일 조직의 경험은 해방 이후 사상과 이념을 초월한 민주주의 국가 건설을 위한 활동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