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5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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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海 金氏 |
영어공식명칭 | Gimhae Gimssi|Gimhae Gim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광철 |
본관 | 김해 김씨 본관 - 경상남도 김해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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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거|집성지 | 김해 김씨 집성지 - 경상남도 김해시 지내동 못안마을 |
세거|집성지 | 김해 김씨 집성지 - 경상남도 김해시 응달동 태정마을 |
세거|집성지 | 김해 김씨 집성지 - 경상남도 김해시 한림면 병동리 |
세거|집성지 | 김해 김씨 집성지 - 경상남도 김해시 용덕리 수조마을 |
세거|집성지 | 김해 김씨 집성지 - 경상남도 김해시 퇴래리 퇴은마을 |
성씨 시조 | 김수로왕 |
[정의]
김수로왕을 시조로 하고 김유신을 중시조로 하는 경상남도 김해시의 세거 성씨.
[개설]
김해 김씨(金海 金氏)는 김해 지역 최고의 토성(土姓)으로, 고려와 조선 시대에 걸쳐 지속적으로 가계가 분화하는 한편, 김해 이외 지역으로 이주를 하게 되면서 148개의 지파를 형성하며 전국적으로 분포하게 되었다.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1425]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김해도호부(金海都護府) 성씨조에서 지역의 토성으로 김(金)·허(許)·배(裵)·손(孫)·송(宋)·유(庾) 등 6개의 성씨를 소개하였는데, 이 가운데 김해 김씨, 김해 허씨(金海 許氏), 분성 배씨(盆城 裵氏)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김해 지역의 세거 성씨로 자리 잡고 있다.
고려 시대 토성층은 주로 읍사(邑司)가 있는 치소(治所) 지역을 중심으로 거주하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치소 바깥으로 이주하여 조선 시대에는 치소에서 멀리 떨어진 외곽 지대에도 거주지가 형성되었다. 1904년(고종 41)에 간행된 『경상남도 김해군 가호안(慶尙南道 金海郡 家戶案)』 하책(下冊)에 실린 13개 면 173개 동리 4,789호의 83개 성씨 가운데 김씨는 1,332호로, 전체 성씨의 28%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김씨에는 경주 김씨(慶州 金氏), 김녕 김씨(金寧 金氏) 등이 포함되지만 김해 김씨가 다수를 차지하였으며, 이들 김씨는 13개 면 44개 동리에 거주하고 있어 치소로부터 떨어진 곳에 분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858년(철종 9)에 간행된 『김해김씨연계파보(金海金氏聯系派譜)』의 말미에 있는 「각파중조서열목록(各派中祖叙列目錄)」에는 김녕군파에서부터 시작하여 김해 김씨 97개 지파와 그 거주지를 차례로 싣고 있다. 김녕군파는 전국 8도에 거주하는 것으로 나와 있고, 삼현파는 청도와 산청, 남원 등 지역에 분포한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이 자료에 따르면 당시 김해 지역에 거주하는 김해 김씨는 김녕군파와 도총관공파, 진사공파, 한성좌윤공파, 택현파 등 5개 지파의 후손들이었다. 김해 향안(金海 鄕案)에 올라 있는 김해 김씨 인물 37명 가운데 26명이 김계금(金係錦)[1405~1493]의 후손으로, 김계금은 김해 김씨 도총관공파 중시조 김경신의 5세손이다.
[연원]
김해 김씨는 김수로왕(金首露王)을 시조로 하고 김유신(金庾信)을 중시조로 하여 148개 지파를 형성할 정도로 수많은 지파를 형성하였다.
김유신의 장자 김삼광(金三光)의 가계가 김윤문(金允文)·김윤중(金允中)-김장청(金長淸)-김웅원(金雄元)-김경주(金擎柱)로 이어지다가 21세손 김수윤(金琇胤) 대에 김천수(金天授)와 김천여(金天與) 두 아들로 나누어지는데, 김천수의 가계는 김상좌(金商佐)[23세]-김호(金浩)-김화제(金華齊)로 이어지다가 26세손 김진유(金振酉) 대에 김승의(金承意)·김계의(金繼意)·김진의(金進意) 세 아들을 두어 가계가 분화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김진유의 큰아들 김승의의 가계는 그의 증손자 김수성(金洙聖)[30세] 대에 김상흠(金商欽)·김상현(金商賢)·김상인(金商寅) 세 아들의 가계로 분화하면서 번성하게 되었다. 김상흠의 가계는 41세 김진국(金鎭國)·김정국(金定國)의 가계로 이어지면서 ‘김녕군파’, ‘삼현파’, ‘판서공파’, ‘승사랑공파’ 등을 형성하였고, 김상현의 가계는 41세 김중유(金重有)·김덕유(金德有)로 이어지면서 ‘좌정승공파’, ‘승정공파’ 등을, 김상인의 가계는 ‘유수공파’ 등을 이루었다. 3남 김진의의 가계는 단계(單系)로 이어지다가 42세손 김시원(金時元)이 김삼거(金三擧)와 김중거(金重擧) 두 아들을 두는데, 이후 김삼거의 가계는 단계로 이어지면서 ‘운은공파’가 되었고, 김중거의 가계는 48세 김대빈(金大彬)의 두 아들 김이렴(金以濂)과 김이학(金以學)의 가계로 분화하면서 번성하여 ‘도총관공파’ 등 많은 지파를 형성하였다.
22세 김천여의 가계는 단계로 계속 이어지다가 37세 김만웅(金萬雄)이 김득하(金得河)와 김성하(金成河) 두 아들을 두고, 이후 김성하의 가계가 지속되면서 ‘첨정공파’를 형성하였다.
[현황]
1929년에 간행된 『김해읍지(金海邑誌)』 성씨조에서는 김해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성씨를 면리별로 조사하여 소개하고 있다. 당시 김해 지역에는 김해면 등 13개 면과 134개 동리(洞里)가 분포하고 있는데, 김해 김씨는 13개 면의 55개 동리에 거주하고 있었다. 김해면의 남역리 등 8곳, 상동면의 봉발리 등 3곳, 하동면의 덕산리 등 6곳, 대저면의 사두리 등 3곳, 가락면의 대사리 1곳, 장유면의 유하리 등 11곳, 진례면의 신안리 등 5곳, 진영면의 본산리 등 2곳, 이북면의 안하리 등 2곳, 생림면의 생철리 등 5곳, 주촌면의 선지리 등 3곳, 명지면의 진목리 등 4곳, 녹산면의 구랑리 등 2곳이다.
1934년 조선총독부가 간행한 『조선의 성[朝鮮の姓]』에서는 전국의 지역별 성씨 종류와 가구 수, 집성촌의 분포를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당시 김해군에 2만 2983가구, 108개의 성씨가 분포한 것으로 집계되어 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30개의 성씨가 모두 72곳에 집성촌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김해읍의 남역리[16호], 음법리[30], 이동리[25], 지내리[38], 삼산리[21], 가락면 식만리[40], 대저면 사두리[53], 명지면의 진목리[52], 중리[37], 조동리[31], 신전리[30], 평성리·신호리[32], 동리[68], 진영면의 죽곡리[30], 신룡리[30], 이북면의 퇴래리[40], 용덕리[32], 하동면의 주중리[20], 초정리[50], 괴정리[20] 등이며, 이 중 김해 김씨의 집성촌은 21곳으로 가장 많았다.
2000년 통계청의 성씨 본관별 가구 및 인구 통계에 따르면, 당시 김해시 인구는 9만 8985가구에 33만 829명이었고, 여기에 225개의 성과 2,724개의 본관 성씨가 있었다. 이 가운데 100가구 이상 거주하는 성씨는 김해 김씨 등 128개였다. 김해 김씨는 1만 3287가구에 4만 3345명으로 가장 많아서 김해 전체 인구의 13%를 차지하고 있다.
2015년 통계청의 ‘인구 주택 총조사’에서는 가구 수는 없고 본관 성씨별 인구수만 조사하여 기록하고 있는데, 당시 김해시 인구는 51만 2517명, 성씨는 143개, 본관은 820여 개로 집계되었다. 이 중 100가구로 추산되는 340명 이상의 인구를 가진 성씨는 김해 김씨를 비롯하여 169개 정도가 확인되었다. 이 가운데 김해 김씨는 6만 1341명으로, 김해시 전체의 12%를 차지하여 여전히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24년 초 기준 김해 김씨 주민들은 김해시 전 지역에 분포하고 있지만 그중 지내동 못안마을과 응달동 태정마을, 한림면의 병동리 어병마을, 용덕리 수조마을, 퇴래리 퇴은마을 등 다섯 곳에 집성촌을 형성하여 거주하고 있다.
[관련 유적]
김해 김씨의 시조이자 가락국의 시조인 김수로왕의 능[김해 수로왕릉(金海 首露王陵)]과 김해 수로왕비릉(金海 首露王妃陵)이 있다. 숭선전(崇善殿)은 김해시 왕릉길 26[서상동 312]에 있는 전각으로 우리나라 팔전(八殿)의 하나로 꼽히는데, 이곳에 김수로왕과 허황옥(許黃玉)의 신위가 봉안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