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5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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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海 首露王陵 |
영어공식명칭 | Tomb of King Suro, Gimhae |
이칭/별칭 | 전 수로왕릉,납릉(納陵),수로왕묘,가락국 수로왕릉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고분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가락로93번길 26[서상동 312] |
시대 | 고대/삼국 시대/가야 |
집필자 | 조성원 |
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 199년 - 수로왕 사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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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 시기/일시 | 199년 - 김해 수로왕릉 조성 |
보수|복원 시기/일시 | 1580년 - 김해 수로왕릉 수리 |
보수|복원 시기/일시 | 1746년 - 김해 수로왕릉 표석 설치 |
훼손 시기/일시 | 1748년 - 김해 수로왕릉 봉분 함몰 |
보수|복원 시기/일시 | 1792년 - 김해 수로왕릉 제전·제각 수리 |
보수|복원 시기/일시 | 1792년 - 김해 수로왕릉 비석 설치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878년 - 김해 수로왕릉 전각 편액[숭선] 하사 |
문화재 지정 일시 | 1963년 1월 21일 - 수로왕릉 사적 제73호 지정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11년 7월 28일 - 수로왕릉에서 김해 수로왕릉으로 명칭 변경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김해 수로왕릉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에 따라 문화재 지정 번호 삭제 |
소재지 | 김해 수로왕릉 - 경상남도 김해시 가락로93번길 26[서상동 312] |
성격 | 고분|왕릉|능묘 |
양식 | 봉토분 |
관련 인물 | 수로왕 |
크기(높이,지름) | 약 5m[높이]|21m~22m[지름] |
소유자 | 김해시 |
관리자 | 김해시 |
문화재 지정 번호 | 사적 |
[정의]
경상남도 김해시 서상동에 있는 삼국 시대 가락국 시조 수로왕의 능묘.
[개설]
김해 수로왕릉(金海 首露王陵)은 가락국 시조인 수로왕(首露王)[?~199]의 무덤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가락국기(駕洛國記)」에 따르면, 수로왕은 기원후 42년에 즉위하여 199년 사망하였다. 이에 백성들이 장사를 지내기 위해 대궐의 동북쪽 평지에 빈궁(殯宮)을 세웠는데, 이를 ‘수릉왕묘(首陵王廟)’라고 불렀다. ‘납릉(納陵)’이라고도 부르며, 높이는 한 발, 둘레는 300보라 전한다. 1439년(세종 21)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따르면, 김해 수로왕릉으로부터 사방 30보씩에 한정하여 경작과 식목을 금지하였다. 여러 차례 보수가 이루어졌는데, 1580년(선조 13)에 관찰사 허엽이 수리하였다는 기록이 『동국여지지(東國輿地誌)』에 있다. 이후 1746년(영조 22) 사방 100보에 표석을 설치하였고, 1748년(영조 24)에 봉분 함몰로 수리를 청하였다는 기록이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있다. 또한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1792년(정조 16)에 제전과 제각을 수리하고 비석을 설치하였으며, 1878년(고종 15)에는 전각 편액[숭선]을 하사하였다.
[위치]
김해 수로왕릉은 김해시 서상동 312번지, 시내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다. 북쪽으로 약 850m 지점에 김해 구지봉(金海 龜旨峯)과 김해 수로왕비릉(金海 首露王妃陵)이 있고, 서북쪽으로 약 500m 지점에 김해 대성동 고분군(金海 大成洞 古墳群)이, 남서쪽으로 약 600m 지점에 봉황대 유적이 위치하고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정식 발굴 조사는 진행된 바 없으나, 『지봉유설(芝峯類說)』 권19 궁실부 능묘조에 의하면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당시 왜군에 의해 도굴되었다고 한다.
[형태]
높이 약 5m, 지름 21m~22m의 봉토분으로, 반구형을 띠고 있다. 무덤 내부 구조에 대해서는, 수로왕 생존 당시 유행하였던 널무덤[목관묘]으로 보는 설, 외형이 5세기 중반 이후에 유행하는 봉토분이라는 점에서 후대의 돌방무덤[석실묘]으로 보는 설, 그리고 원래 널무덤이었던 것을 봉토분으로 개축하였다는 설 등이 있다.
[출토 유물]
도굴 당시 출토 유물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수로왕으로 추정되는 인골 1구와 여성으로 추정되는 순장 인골 2구가 확인된 것으로 전한다.
[현황]
김해 수로왕릉은 ‘수로왕릉’이라는 명칭으로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73호로 지정되었다. 이후 2011년 7월 28일에 명칭을 ‘김해 수로왕릉’으로 변경하였다. 소유자 및 관리자는 김해시이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 「문화재 지정[등록]번호 삭제 및 문화재명 표기 방식 변경 고시」에 따라 문화재 지정 번호는 삭제되었다. 현재 왕릉을 중심으로 주변 5만 9504.13㎡[1만 8,000여 평]가 왕릉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김해 수로왕릉은 공원의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쪽으로 각종 건물이 자리 잡고 있다. 능역은 담장으로 둘러져 있으며, 내부는 다시 낮은 돌 난간으로 구획되어 있다. 능 앞쪽 정면에는 ‘가락국수로왕릉’이라고 새겨진 능비를 세웠고, 석단을 마련하였다. 그 앞으로는 혼유석과 장명등을 세워 놓았다. 동쪽과 서쪽에 문인상과 무인상을 한 쌍씩 세웠으며, 돌 난간 밖에는 석호(石虎)와 석양(石羊), 석마(石馬) 등의 석물을 배치하였다. 왕릉을 제외한 석물과 부속 건물은 모두 후대에 조성된 것으로 왕릉이 축조된 시기와는 무관하다. 조선 시대 이후 매년 음력 3월 15일과 9월 15일에 숭선전제례(崇善殿祭禮)[경상남도 무형유산]를 지낸다.
[의의와 평가]
김해 수로왕릉은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 성격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견이 있다. 그러나 진위 여부를 떠나 삼국 시대의 일반적인 고분과 달리 평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변 일대가 가락국의 중심지인 점, 그리고 가락국 성립에 관한 전승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 유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