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흥 안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615
한자 順興 安氏
영어공식명칭 Sunheung Anssi|Sunheung An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장경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1592년연표보기 - 안공진 사망
본관 순흥 안씨 본관 -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입향지 순흥 안씨 입향지 - 경상남도 김해시 진례면 시례리
세거|집성지 순흥 안씨 집성지 - 경상남도 김해시 진례면 시례리 지도보기
세거|집성지 순흥 안씨 집성지 - 경상남도 김해시 대동면 초정리 지도보기
세거|집성지 순흥 안씨 집성지 -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하계리 지도보기
성씨 시조 안자미
입향 시조 안공진

[정의]

안자미를 시조로 하고 안공진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김해시의 세거 성씨.

[개설]

순흥 안씨(順興 安氏)는 고려 신종(神宗) 때 흥위위보승별장(興威衛保勝別將)을 역임하고 신호위상호군(神虎衛上護軍)에 추봉된 안자미(安子美)를 시조로 한다. 안자미는 안영유(安永儒), 안영린(安永麟), 안영화(安永和) 세 아들을 두었는데, 이를 각각 1파, 2파, 3파라 부른다. 안영유의 후손에서 14개 파, 안영린의 후손에서 4개 파, 안영화의 후손에서 4개 파가 나왔다. 조선조에 들어와 생활 근거지를 지금의 경기도 파주시 금촌으로 옮겼다가 여러 사화를 겪으면서 전국으로 흩어져 살고 있다. 김해 지역에는 순흥 안씨 1파의 10세 안수(安琇)를 파조로 하는 직장공파(直長公派)의 후손들이 이주하여 살기 시작하였다.

[연원]

순흥 안씨는 안자미의 4세손인 안향(安珦) 이후 번성하였다. 안향은 고려 원종(元宗) 때 문과에 급제하고 교서랑(校書郞), 감찰어사(監察御史), 상주판관(尙州判官) 등 주요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충렬왕(忠烈王) 복위 후 후진 양성에 힘써 유학풍을 일으켰다. 문하에서 백이정(白頥正)과 우탁(禹倬) 등 훌륭한 유학자가 배출되었으며, 이 계보는 이제현(李齊賢)과 이색(李穡)으로 이어졌다. 또 이색의 문하에서 권근(權近)이 나와 조선 왕조로 이어졌다. 우리나라 성리학의 태두로 추앙되고 있으며, 장단의 임강서원(臨江書院), 순흥의 소수서원(紹修書院), 곡성의 회헌영당(晦軒影堂)에 제향되었다.

조선조에 들어서는 안침(安琛), 안당(安瑭)과 안위·안현·안상 3형제가 유명하며, 김해에서는 안민(安愍)[1539~1592], 안희(安熹)[1551~1613] 형제가 유명하다. 안민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승려 100여 명을 이끌고 김해성으로 싸우러 가던 중 입석강 변[현 서낙동강 변인 김해시 불암동 선암]에서 왜적에 맞서 싸우다 전사하였다. 이후 판결사로 추증되었고 1832년(순조 32) 순흥 용연서원(龍淵書院)에 배향되었다. 동생 안희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김해에서 봉기하였다. 함안에 안민안희, 안민의 아들 안신갑을 향사하기 위하여 두릉서원(杜陵書院)이 세워졌다.

[입향 경위]

안수의 아들 진사 안창공(安昌恭) 때 경기도에서 경상남도 함안으로 이거하였고, 안창공의 손자인 안공진(安公軫)[?~1592]이 함안을 떠나 김해도호부 시례로 이주하여 순흥 안씨 김해 입향조가 되었다.

[현황]

2015년 통계청의 ‘인구 주택 총조사’ 자료에 따르면 김해시에 거주하는 순흥 안씨는 4,921명으로 전체 안씨(安氏) 7,466명의 절반을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2024년 기준 순흥 안씨 1파의 직장공파 후손들이 김해시의 진례면 시례리, 대동면 초정리, 진영읍 하계리 등에서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다.

[관련 유적]

임진왜란 중 입석강에서 순절한 안민을 기리는 안민순절유적비(安愍殉節遺蹟碑)가 김해시 불암동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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