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6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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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熹 |
영어공식명칭 | An Hui |
이칭/별칭 | 언우,죽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강식 |
출생 시기/일시 | 1551년 - 안희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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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85년 - 안희 별시 문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593년 - 안희 제2차 진주성전투 참가 |
몰년 시기/일시 | 1613년 - 안희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824년 - 안희 용연사 배향 |
추모 시기/일시 | 1832년 - 안희 두릉사 배향 |
출생지 | 함안 장내 - 경상남도 함안군 |
거주|이주지 | 김해부 시례 - 경상남도 김해시 진례면 시례마을 |
활동지 | 김해부 - 경상남도 김해시 |
활동지 | 대구부 - 대구광역시 중구 |
성격 | 의병|문신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대구부사 |
[정의]
임진왜란 당시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이자 문신.
[가계]
안희(安熹)[1551~1613]의 본관은 순흥이다. 자는 언우(彦優)이고, 호는 죽계(竹溪)이다. 함안 장내(墻內)에 살다가 김해로 이주하였다. 안향(安珦)[1243~1306]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형조참의로 추증된 안공진(安公軫)이다. 어머니는 광주 안씨 생원 안택(安宅)의 딸이다.
[활동 사항]
안희는 어릴 때 할아버지로부터 충효를 내세워 모든 사물에 결부시키는 실천 위주의 학문을 수학하였다. 1585년 별시(別試) 문과에 합격하였다. 사복시(司僕寺)에서 마정(馬政)의 감목관(監牧官)을 차출하여 일을 맡길 때 진주에서 근무하였다.
임진왜란 때 김해에서 창의하여 활동하였는데, 문별장(文別將)으로서 통문(通文)을 작성하여 각 고을에 돌렸다. 1593년 제2차 진주성전투 때 활동하다가 성이 함락되자, 아버지의 유명에 따라 거처를 풍기로 옮겼다. 안희는 1608년부터 다시 김해에 거주하였으며, 1609년에 조식(曺植)[1501~1572]의 학문을 따르던 허경윤(許景胤)과 함께 김해부사 김진선(金振善)의 협조를 받아 임진왜란 때 불타 버린 산해정을 대신하여 신산서원을 세우는 데 참여하였다. 이후 대구부사로 부임하여 근무하다가 1613년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안희는 저서로 『죽계집(竹溪集)』 4권 2책을 남겼다. 진주성 함락 이후 자신의 심경을 읊은 「혹문(或問)」, 신산서원의 창건과 중건을 주도한 내용 등이 주목된다.
[상훈과 추모]
안희는 1824년에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의 용연사(龍淵祠), 1832년에 경상남도 함안군 여항면의 두릉사(杜陵祠)에 각각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