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664
한자 曺九齡
영어공식명칭 Jo Guryeong
이칭/별칭 인수(仁叟),정옹(酊翁)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상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57년연표보기 - 조구령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90년 - 조구령 신산서원 강학
활동 시기/일시 1702년 - 조구령 『분성여지승람』 신증 참여
몰년 시기/일시 1719년연표보기 - 조구령 사망
추모 시기/일시 1814년 - 조구령 물봉서원 배향
출생지 경상남도 김해시 지내동 지도보기
수학|강학지 신산서원 - 경상남도 김해시 대동면 지도보기
사당|배향지 물봉서원 - 경상남도 김해시 지내동
성격 학자
성별
본관 창녕

[정의]

조선 후기 경상남도 김해 출신의 학자.

[가계]

조구령(曺九齡)[1657~1719]의 본관은 창녕이다. 자는 인수(仁叟)이고, 호는 정옹(酊翁)이다. 참봉 조원해(曺元海)의 현손으로, 아버지는 조이로(曺爾櫓)이다.

[활동 사항]

조구령은 1657년(효종 8) 지금의 경상남도 김해시 지내동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남다른 기질이 있고, 총명하고 민첩하였으며, 부모를 극진히 모셨다고 한다. 아버지의 소자(小字)가 ‘반석(磐石)’이므로 반석 위에는 앉지 않았고, 아버지가 모함을 받아 연안(延安)으로 귀양 가니 임금에게 억울함을 호소하여 모시고 돌아왔다.

18세 때 「대학삼강팔조도(大學三綱八條圖)」를 짓고, 스스로 서(序)를 썼다. 1685년(숙종 11) 이현일(李玄逸)[1627~1704]을 찾아가 문하에서 수학하였는데, 벼슬에는 뜻을 두지 않고 학문과 자기 수양에 전념하였다. 1689년(숙종 15)에 재종숙인 조이추(曺爾樞)와 『대학(大學)』을 강론하였고, 1690년부터는 신산서원(新山書院)에 들어가 강학하였다. 산해정에서 「심학도설(心學圖說)」을 강론하기도 하였다. 1700년(숙종 26) 권두경(權斗經), 권두기(權斗紀), 이재(李栽), 신몽삼(辛夢參) 등과 교유하였고, 1702년 『분성여지승람(盆城輿地勝覽)』 신증에 참여하였다.

종규(宗規)와 가법(家法)을 지어 후손에 남겼으며, 향약 모임의 조목을 나누어 제정하였다. 또 조이추의 향사와 충렬사(忠烈祠) 건립에도 앞장섰다. 1719년(숙종 45) 사망하였으며, 노필연(盧佖淵)이 쓴 「김해향사칠현열전(金海鄕士七賢列傳)」에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

[학문과 저술]

조구령의 저서로는 『정옹집』이 있다.

[상훈과 추모]

조구령은 1814년(순조 14) 경상남도 김해시 지내동에 있었던 물봉서원에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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