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540
한자 金海 山海亭
이칭/별칭 신산서원(新山書院),산해정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대동면 산해정길 123-26[주동리 737]
시대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권순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530년연표보기 - 김해 산해정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588년연표보기 - 신산서원 건립
훼철|철거 시기/일시 1592년연표보기 - 김해 산해정 훼철[1592]
관련 사항 시기/일시 1818년연표보기 - 김해 산해정 복원
훼철|철거 시기/일시 1871년연표보기 - 김해 산해정 훼철[1871]
개축|증축 시기/일시 1890년연표보기 - 김해 산해정 중건
개축|증축 시기/일시 1924년 - 김해 산해정 중수[1924]
개축|증축 시기/일시 1949년 - 김해 산해정 중수[1949]
개축|증축 시기/일시 1971년 - 김해 산해정 중수[1971]
문화재 지정 일시 1985년 1월 14일연표보기 - 김해 산해정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25호 지정
개축|증축 시기/일시 1991년 - 김해 산해정 해체 보수
개축|증축 시기/일시 1999년 - 김해 산해정 내 사당 중건
개축|증축 시기/일시 1999년 - 김해 산해정 신문 중건
개축|증축 시기/일시 1999년 - 김해 산해정 동재 중건
개축|증축 시기/일시 1999년 - 김해 산해정 서재 중건
개축|증축 시기/일시 1999년 - 김해 산해정 외삼문 중건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1년 11월 19일 - 김해 산해정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에 따라 문화재 지정 번호 삭제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4년 5월 17일 - 김해 산해정 경상남도 문화재자료에서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로 변경 지정
현 소재지 김해 산해정 - 경상남도 김해시 대동면 산해정길 123-26[주동리 737]지도보기
성격 서원|정자
양식 목조 와가|겹처마 맞배지붕[사당]|홑처마 팔작지붕[강당]|홑처마 맞배지붕[동재]
정면 칸수 3칸[사당]|3칸[강당]|3칸[동재]
측면 칸수 2칸[사당]|2칸[강당]|1.5칸[동재]
소유자 창녕 조씨 문중
관리자 김해향교|김해시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

[정의]

경상남도 김해시 대동면 주동리에 있는 조선 시대 서원.

[개설]

남명(南冥) 조식(曺植)[1501~1572]은 삼가에서 아버지의 장례와 시묘를 마치고 처 남평 조씨의 본가가 있는 김해 탄동(炭洞)으로 이거(移居)하였는데, 이때 후학 양성과 유학자들과의 교류를 위해 김해 산해정(金海 山海亭)을 건립하였다. ‘산해(山海)’는 높은 산에 올라 바다를 굽어본다는 뜻으로, 학문을 닦아 경지가 높아지면 경륜과 도량이 바다와 같이 넓어짐을 의미한다. 현재 신산서원(新山書院)으로 복원되어 조식과 신계성을 배향하고 있다.

[위치]

김해 산해정김해시 대동면 주동리 737번지에 있다. 대중초등학교와 성안마을 정류소 사이에 있는 삼거리에서 북쪽으로 진입하여 약 263m 가면 김해 산해정에 도착한다. 신어산(神魚山)의 남쪽 비탈 말단부에 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는데, 동쪽에서 까치산이, 서쪽에서는 돗대산이, 남쪽에서는 작은 안산이 김해 산해정을 둘러싸고 있다. 좌우로는 두동천 본류와 지류가 흘러 남쪽에서 합류한 후 서낙동강(西洛東江)으로 흘러든다.

[변천]

김해 산해정은 1530년(중종 25)에 건립되었다. 이후 1588년(선조 21) 경상감사 김수(金晬)와 김해부사 양사준(梁士俊), 그리고 김해 지역 유림들이 조식을 배향하고자 현 산해정의 서쪽에 별도로 신산서원을 창건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산해정신산서원이 모두 소실(燒失)되었으며, 1609년(광해군 1)에 김해부사 김진선(金振先)과 김해 유림들이 신산서원을 중건하였다. 같은 해 조식을 배향한 산청의 덕천서원(德川書院), 삼가의 용암서원과 함께 조정으로부터 사액(賜額)을 받아 사액 서원이 되었다. 1616년(광해군 8) 조식의 문인인 신계성을 추가로 봉안하였고, 1707년(숙종 33)·1738년(영조 14)·1772년(영조 48)에 사당과 사당의 출입문인 신문(神門) 등을 중수하였다.

1818년(순조 18) 김해부사 이석하(李錫河)가 주축이 되어 신산서원 옆에 산해정을 복원하였고, 1830년(순조 30) 신산서원도 중수하였으나, 1871년(고종 8) 서원 철폐령으로 신산서원산해정은 훼철되었다. 이후 1890년(고종 27) 김해부사와 지역 유림들이 신산서원 터에 산해정을 중건하고 조식을 제향하였다. 1924년과 1949년, 그리고 1971년에도 산해정을 중수하였다. 1991년 산해정 서까래에 문제가 생겨 해체 보수하였고, 1999년에는 산해정을 중심으로 사당·신문·동재·서재·외삼문을 새로 중건하면서 신계승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이 중수 공사로 인해 제향 공간이 추가되어 서원의 형식을 갖추게 되었다.

[형태]

김해 산해정은 크게 사당을 중심으로 한 제향 영역과 강당을 중심으로 한 동재와 서재, 그리고 대문채로 이루어진 강학 영역으로 구분된다. 남쪽이 낮고 북쪽이 높은 대지를 계단상으로 정지하여 낮은 곳에는 강학 영역을 배치하고, 높은 곳에는 제향 영역을 배치하였다. 이는 두 영역이 남북 축선상에 배치되는 전학후묘 배치(前學後廟 配置)로 영남 지역에서 흔히 보인다.

제향 영역의 중심 건물인 사당은 숭도사(崇道祠)이며, 사당의 정면에는 신문(神門)인 지숙문(祗肅門)이 남북 축선상에 배치되어 있다. 외부에는 담장을 둘러 공간을 구분하는 동시에 신성함을 연출하였다. 평면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이다. 동쪽 2칸 통마루방에 위패를 봉안하였는데, 서쪽에 조식의 위패가, 동쪽에 신계성의 위패가 나란히 놓였다. 서쪽의 1칸은 제기(祭器)와 제물(祭物)을 보관하는 일종의 전사청(典祀廳)이다.

숭도사의 기단은 자연석과 일부 가공한 석재를 이용하여 허튼층쌓기를 하였으며, 정면에는 계단을 동쪽과 서쪽에 각각 배치하였다. 기단 상부는 가공한 석재로 한 벌 깔고 마무리한 다음, 초석을 놓고 둥근기둥을 올렸다. 정면에는 북 모양의 장주 초석(長柱 礎石)을 올려 위계를 강조하였다. 건축 형식은 2익공 형식으로 용머리 모양을 조각하였다. 익공 사이 포벽(包壁)에는 화반(花盤)을 설치하였으며, 그 상부에 장여와 둥근 굴도리를 올렸다. 상부 가구는 도리가 5개 있는 5량가이며, 천장은 반자를 하지 않은 연등천장(椽燈天障)이다. 지붕은 부연이 있는 겹처마로 처리하였고, 형태는 맞배지붕이다. 기와는 한식 기와를 사용하였지만 암막새와 수막새는 사용하지 않았다. 사당은 단청을 시문하여 위계를 높였다. 서편에는 축문을 태우는 망료위(望燎位)가 조성되어 있다. 지숙문은 삼문으로 협문 형태이며, 부연을 설치한 겹처마로 조성하여 지붕을 넓게 하였다. 지붕은 맞배지붕이며, 긋기단청을 하여 사당보다는 위계를 낮추었다.

강당에는 ‘신산서원’ 편액을 달아 놓았고, 대청에는 ‘산해정’ 현판을 고정해 놓았다. 강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규모인데, 툇마루를 구성하기 위해 사이 기둥을 세워 2.5칸으로 보인다. 이는 의장과 실용성을 동시에 추구한 것으로 조선 후기 건축의 특징이다. 좌측부터 정면에 툇마루를 둔 온돌방 1칸과 마루 2칸, 정면에 툇마루를 둔 온돌방 2칸으로 구성하였다. 기단은 다듬은 돌로 바른 층 쌓기를 하였으며, 초석은 자연석 그대로 덤벙 주초를 사용하였다. 기둥은 둥근기둥과 네모기둥을 혼용하였는데. 대청과 모서리 부분에는 둥근기둥을, 온돌방에는 네모기둥을 사용하였다. 정면에만 말각 사각형의 장주 초석을 놓아 빗물로부터 기둥을 보호하였다.

건축 양식은 정면에만 2익공 양식을 사용하였는데, 연꽃문이 초각되어 있고 보머리에는 봉황의 머리를 장식하였다. 익공 사이에는 화반을 1개 두었지만 나머지 부분은 장여로 장식한 장여 수장집이다. 도리는 정면과 툇마루 상부에만 둥근 도리를 사용하였고, 나머지 부분에는 사각형의 납도리를 사용하였다. 익공과 도리의 형태를 보면 정면성과 위계를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조선 후기의 건축 양식이다. 상부 가구는 도리가 5개인 5량가 구조이며, 지붕은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기와는 한식 기와를 사용하였으며, 막새는 사용하지 않았다.

동재는 ‘환성재(喚醒齋)’라고 하는데, 기존의 건물을 철거하여 새로 중건한 건물이다. 정면 3칸, 측면 1.5칸 규모의 홑처마 맞배지붕집이다. 가운데에 대청마루를 두고 좌우에 툇마루가 딸린 온돌방으로 구성하였다. 서재는 ‘유위재(有爲齋)’라고 하는데, 동재와 마찬가지로 최근에 새로 지었다. 평면 양식과 구조 양식은 동재와 유사하다. 대문채에는 ‘진덕문(進德門)’이라는 편액이 달려 있는데, 정비 사업을 하면서 새로 건립하였다.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중앙에 대문을 설치하고 좌우에 고방을 둔 형태이다.

[현황]

김해 산해정은 1985년 1월 14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25호로 지정되었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 「문화재 지정[등록]번호 삭제 및 문화재명 표기 방식 변경 고시」에 따라 문화재 지정 번호는 삭제되었다.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청의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에서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로 변경되었다. 소유자는 창녕 조씨 문중이고, 관리자는 김해향교와 김해시이다.

[의의와 평가]

김해 지역에는 신산서원[산해정]과 송담서원(松潭書院)[사충단], 미양서원(微陽書院), 예암서원(禮巖書院), 김해 거연정(金海 居然亭), 예강재, 구천서원, 월봉서원, 물봉서원 등의 서원이 있는데, 김해 산해정은 김해 지역에서 유일한 사액 서원이다. 김해 산해정조식이 창건한 산해정에서 출발하여 조식이 사망한 후에는 조식을 배향하는 서원으로 발전하였는데, 도산서원과 유사한 사례이다. 임진왜란 이후에 중건되어 사액을 받았고, 조식과 신계성을 배향하여 위계 높은 서원이 되었지만,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훼철된 후에도 중건하여 명맥을 이어 오다가 최근 사당을 복원하여 서원으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김해 산해정은 사회적 변화와 연동하여 많은 변화가 있는 서원이며, 조선 말기의 지역적 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는 유적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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