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697
한자 金廷泰
영어공식명칭 Kim Jungtae
이칭/별칭 설창(雪倉)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인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0년 8월 15일연표보기 - 김정태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31일 - 김정태 진영리장터 만세 시위 주도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26일 - 김정태 부산지방법원 징역 1년 6개월 선고
몰년 시기/일시 1950년연표보기 - 김정태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82년연표보기 - 김정태 대통령표창 추서
추모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김정태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출생지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진영리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김해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김정태(金廷泰)[1900~1950]는 1900년 지금의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진영리에서 태어났다. 호는 설창(雪倉)이다. 아버지는 김종일(金鐘一), 어머니는 안동 장씨이며, 2남 1녀 중 둘째 아들이다. 아버지 김종일은 영릉참봉(英陵參奉)과 통훈대부비서감승 등을 지냈다. 김정태의 집은 3·1운동 당시 진영에서 가장 큰 포목상을 하고 있었다.

[활동 사항]

김정태는 1919년 김우현·김성도(金成濤)·김용환(金容煥) 등과 진영리장터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서울에서 시작된 3·1운동의 영향으로 김해 지역에서도 만세 시위의 조짐이 일어났고, 김정태 등은 3월 31일[음력 2월 30일] 진영 장날을 거사일로 결정하였다. 김정태는 거사 전날인 3월 30일에 김성도·김용환·김우현 등과 진영읍 여래리의 대나무 숲에서 밤을 새워 포목과 창호지로 태극기를 만들고, 붉은 글씨로 쓴 독립 만세 전단지를 만들었다.

장날인 31일 오후 1시경에 약 3m 길이의 대나무에 태극기를 내걸어 앞세워 만세를 외쳤고, 종이 태극기와 전단지를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며 군중 2,000여 명과 함께 독립 만세를 외쳤다. 김정태는 출동한 일본 헌병에게 체포되어 부산으로 연행되었다. 4월 26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6월 형을 선고받았지만 불복하여 공소하였다. 그러나 5월 1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공소가 기각되고 원심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후 1950년 6·25전쟁 때 좌익으로 몰려 억울하게 학살당하였다. 유해는 1960년 발굴되어 민간인 희생자들과 함께 진영읍 설창리에 안장되었다가, 1961년 5·16군사쿠데타 때 군에 의해 파헤쳐졌다.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유공자 공적조서에는 1958년 9월 8일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김정태의 사망을 목격한 아들 김영욱의 증언에 따라 1950년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상훈과 추모]

김정태는 1982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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