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767
한자 鄭鎭業
영어공식명칭 Jeong Jineop
이칭/별칭 월초(月礁),월초(月艸),월석(月石),마석(馬石),노을,전노을(全魯乙),도라지(都羅芝),남국성(南國星),심야월(沈夜月),용마산인(龍馬山人)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종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16년 4월 19일연표보기 - 정진업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30년 - 정진업 김해공립보통학교 졸업
수학 시기/일시 1934년 - 정진업 마산공립상업학교 졸업
활동 시기/일시 1939년 5월 - 정진업 등단
수학 시기/일시 1940년 - 정진업 숭실전문대학 중퇴
활동 시기/일시 1948년 - 정진업 『풍장』 출간
활동 시기/일시 1953년 - 정진업 『김해평야』 출간
활동 시기/일시 1963년 - 정진업 제2회 경상남도문화상 연극 부문 수상
활동 시기/일시 1964년 - 정진업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마산지부 부지부장 취임
활동 시기/일시 1967년 - 정진업 한국문인협회 마산지부장 취임
활동 시기/일시 1967년 - 정진업 제6회 경상남도문화상 문학 부문 수상
몰년 시기/일시 1983년 3월 28일연표보기 - 정진업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0년 - 경상남도 창원시 산호공원 「갈대」 시비 건립
추모 시기/일시 2005년 - 마산문학관 정진업유품전 개최
추모 시기/일시 2013년 - 월초정진업시인서거30주년심포지엄 개최
출생지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여래리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이주지 - 경상남도 창원시
학교|수학지 김해공립보통학교 - 경상남도 김해시 호계로500번길 15-15[동상동 534]지도보기
학교|수학지 마산공립상업학교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허당로 51[산호동 438-1]
묘소 창원공원묘원 9단지 146-15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공원묘원로 223[인곡리 산74]
성격 문학가|연극인
성별
본관 동래
대표 경력 한국문인협회 마산지부장

[정의]

경상남도 김해 출신의 문학가이자 연극인.

[가계]

정진업(鄭鎭業)[1916~1983]은 1916년 4월 19일 지금의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여래리에서 태어났다. 호는 월초(月礁, 月艸)이다. 아버지는 정세룡(鄭世龍), 어머니는 김정해(金正海)이며, 3남 2녀 중 장남이다.

[활동 사항]

정진업은 1930년 김해공립보통학교[현 김해동광초등학교]를 졸업하였다. 1931년 마산으로 이사하여 마산공립상업학교[현 마산용마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음악·문학·연극·영화에 취미를 가졌다. 1934년 졸업하고 1936년부터 연극인 이광래의 문하생으로 활동하였다. 1940년에는 평양 숭실전문학교에서 수학하다가 중퇴하였다. 이후 이광래가 이끌던 연극 단체 ‘극예사’와 ‘황금좌’에서 연극인으로 활동하며, 국내를 넘어 만주까지 순회공연하였다.

해방 후에는 김수돈과 함께 가설무대에서 신파 연극물을 공연하며 영남 일대를 누볐다. 1945년 9월 마산에서 건국준비위원회 주최로 공락관에서 열린 공연 「강씨일가」의 연출과 주연을 맡았다. 1951년에는 신경균 감독의 영화 「3천만의 꽃다발」에 출연하였는데, 배우로서는 마지막 작품이었다.

정진업은 1939년 5월 단편 소설 「카츄사에게」로 등단하였다. 1947년에는 『경남교육』 편집장으로 일하였고, 1948년 2월부터는 『부산일보』 초대 문화부장으로 일하였다. 1950년 8월 좌익계 문화 단체원으로 몰려 신문사에서 해임되었다. 정진업은 부산일보사 재직 당시 부산의 문인 이주홍·김정한·안장현 등과 교유하였다. 이후 1951년 거제 하청중학교에 국어 교사로 부임하였고, 이어 하청고등학교, 부산 항도고등학교, 마산 성지여자고등학교에서 근무하였다. 1953년에는 마산에서 간행되던 동인지 『낙타』를 김수돈·김춘수·이원섭·김태홍·이석 등과 함께 발간하였다.

1964년에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마산지부 부지부장, 1967년에 한국문인협회 마산지부 지부장을 역임하였다. 1983년 3월 28일에 급성 뇌 질환으로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정진업은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광복과 전쟁, 3·15와 4·19로 이어지는 격동의 세월을 함께하며 지역 문단에서 꾸준한 활동을 한 작가이다. 정진업의 문학은 현실 비판적이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염원하였다.

1948년에 첫 시집 『풍장』[시문학사, 1948]을 출간하였고, 1953년 전쟁 중에는 『김해평야』[남광문화사]를, 1971년에는 『정진업작품집(1)』[신조문화사]을, 1976년에는 『불사의 변』[시문학사]을, 1981년에는 『아무리 세월이 어려워도』[해조문화사]라는 시집을 각각 출간하였다. 또한 1973년에는 산문집 『정진업 작품집(2)』[신조문화사]를 발간하였다.

[묘소]

정진업의 무덤은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인곡리 창원공원묘원 9단지 146-15에 있다.

[상훈과 추모]

정진업은 1963년에 제2회 경상남도문화상 연극 부문, 1967년에 제6회 경상남도문화상 문학 부문을 각각 수상하였다. 1990년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산호동에 있는 산호공원 시의거리에 「갈대」 시비가 세워졌다. 2005년에는 정진업의 유품이 마산문학관에 기증되어 특별 기획전 ‘정진업유품전’이 열렸다. 또 2013년에는 창원시립마산문학관에서 ‘월초 정진업시인 서거30주년 심포지엄’이 열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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