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하우스로 농민의 삶에 혁신을 도모하다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011
한자 - 農民- - 革新- 圖謀-
영어공식명칭 To Revolutionize Farmers’ Lives with Greenhouses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성인

[정의]

대한민국 최초로 비닐하우스 농법을 도입한 김해 출신 박해수의 삶과 현대 한국 농업의 나아갈 길.

[개설]

경상남도 김해 지역은 예로부터 낙동강 주변으로 넓은 평야 지대가 발달하였다. 때때로 강이 범람하면서 주변 농토가 주기적으로 각종 영양소를 공급받아 농업이 흥할 수 있었다. 여기에 낙동강에서 나는 각종 어패류와 청둥오리도 유역 주민들의 튼튼한 체력과 건강을 지켜 주었다. 이런 김해평야를 중심으로 한 농업과 수렵 생산성은 일찍이 가야 왕국이 건국되는 물적 토대가 되었다. 여기에 한국 농업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킨 신농업 기술이 도입되었으니, 김해 출신 박해수(朴海秀)[1926~1985]가 각고의 노력으로 성공시킨 비닐하우스 농법이다.

[김해에 비닐하우스가 도입되다]

박해수는 1926년 김해군 가락면 식만리[1989년 부산시로 편입]에서 소작농 김정윤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일제 강점기이던 당시 소작농의 가계 사정이야 가혹한 수탈 정책으로 말미암아 좋을 수가 없었다. 그나마 ‘식만’이라는 마을 이름의 뜻인 ‘만 명을 먹여 살린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다른 지역에 비해 비교적 물산이 풍족한 곳이었다.

소학교를 마쳤지만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농사일을 거들던 박해수는 열여덟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소년 가장이 되었다. 여덟 식구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였던 박해수는 인근 양계 농장에서 일한 경험을 살려 양계업을 시작하였지만 이내 망하고 말았다. 가산을 정리하고 어방동으로 이주해서 감나무 과수원을 사들여 해원농장을 열고 양계와 양돈업에 도전하였지만, 또다시 실패하고 말았다. 그런데도 굴하지 않고 과수·채소 재배 등으로 농업에 열중하면서 일본의 영농 서적을 구해 탐독하며 그야말로 주경야독에 힘썼다. 그런 박해수 눈에 띈 것은 비닐하우스였다. 비닐하우스는 유리 온실의 저렴한 버전이다. 유리 온실보다 햇빛 투과율은 떨어지지만 탁월한 보온성으로 인해 채소류의 재배에 적합한 신기술이었다. 당시 일본에서 도입된 비닐하우스를 이용한다면 한겨울에도 배추나 상추 같은 채소를 적기에 공급할 수 있어 많은 농가 소득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박해수는 당장 비닐하우스를 도입하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당시 한국에서는 폴리에틸렌 필름[비닐]이 생산되지 않았다. 이런저런 연구를 거듭한 끝에 1958년 대나무로 고깔 모양의 틀을 만들고, 기름 먹인 한지를 씌워 배추를 재배하였고, 이듬해 2월에 드디어 성공하였다. 이어 그해 11월에 오이, 가지, 고추 재배에도 성공하였다. 이른바 ‘제철 채소’가 아니라 사계절 원하는 채소를 재배할 수 있는 토대를 확보한 것이다. 여기에 1960년 국내에서도 비로소 농업용 비닐 생산이 시작되었다. 박해수에게는 날개를 달아 준 사건이었다.

박해수는 헌 문짝을 이용해 기름 먹인 한지로 겨울철 채소 생산에 성공하면서도 거듭되는 연구를 그치지 않았다. 말뚝을 땅에 박고 대나무를 휘어 연결한 후 그 위에 비닐을 씌우는 방법을 찾아냈다. 일이 풀리려니 모든 것이 좋았다. 당시 김해에는 ‘솜대’라고 불리는 대나무가 많았다. 적절한 강도가 있으면서도 원하는 대로 휠 수 있어 비닐하우스를 만들기에 맞춤이었다. 농업용 비닐이 국내에서도 생산된 상황에서, 대나무로 터널을 만드는 방법을 찾아낸 박해수는 드디어 현대 비닐 온실의 원형을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사실 난방 온실을 이용한 농업 재배는 조선이 세계 최초였다. 1450년경 바닥은 온돌, 창은 기름종이를 이용한 난방 온실이 등장하였다. 서양 최초의 가온 온실[독일]보다 170년이나 빠른 것이다. 2002년에는 경기도 남양주시가 세계 최초의 난방 온실을 복원하는 성과를 보이기도 하였다.

1960년대 박해수의 현대식 비닐하우스 농법이 보급되면서 본격적인 시설 농업이 시작되었다. 1970년대에는 도시 근교 농업으로 발전하였다. 김해시는 부산시라는 거대한 배후 도시를 두고 있었기에 일대 농업 중흥기를 맞았다. 신선 채소 등의 수요 증가에 따라 비닐하우스 단지가 확장되었다. 1980년대에는 건강에 관한 관심 증가와 식생활 패턴 변화로 신선 채소 수요가 크게 늘었고, 시설 원예 기술도 급속하게 발전하였다. 아울러 솜대를 이용하던 방식에서 아연 도금 파이프가 보급되고, 비닐도 연질 필름으로 바뀌면서 재배 기술이 크게 발전하는 백색 혁명을 이루어 냈다. 1990년대에는 개방화에 대응해 현대적 시설 및 자동화, 생력화 기기도 보급이 확대되면서 온실 환경 조절 방식이 자동화되고, 양액 재배 기술도 보급되었다. 아울러 온풍 난방기도 개발되어 보급되면서 무가온 재배에서 난방 재배로 전환되는 계기를 맞았다.

[모든 농촌의 풍요로움을 꿈꾸다]

봄여름 채소를 겨울에 수확하게 되었다는 소식은 널리 알려졌고, 비닐하우스를 보고 배우려는 사람들이 전국 각지에서 해원농장으로 몰려들었다. 박해수는 사비를 들여 연수원을 설립하고, 배우고자 하는 농민들의 교육에 나섰다.

박해수가 남쪽 변방에서 이룬 ‘농업 혁명’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박정희 대통령이 두 번이나 해원농장을 방문해 박해수를 격려하기도 하였다. 또한 그간 일본에서 수입해 먹던 주한 미군 부대에 양채류를 납품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하였다. 토마토, 오이, 셀러리, 양배추 등 양채류 재배에 성공하고 나서 미군 부대에 납품을 알아봤고, 미군 관계자들이 재배 현장을 확인하고 납품을 허용하였다. 이후에도 미군은 6개월마다 토양 검사를 직접 하면서 거래를 이어 갔다.

박해수의 이런 성공은 농업에서 혁명일뿐만 아니라 관련 산업도 부흥시켰다. 우선 박해수의 해원농장에 많은 일꾼이 고용되어 농업 생산에 전념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새로운 산업도 부흥시켰다. 그전에도 김해 사람들은 솜대를 활용해 각종 생활용품을 만들어 쓰기도 하였지만, 비닐하우스가 보급되면서 대를 베어 내고 다듬는 데 많은 일손이 필요하였다. 또한 비닐하우스는 한낮 햇볕이 내리쬘 때는 보온 효과가 탁월하지만 해가 지고 나면 급히 식는 단점이 있었다. 이를 극복하고자 가마니로 비닐하우스를 덮어 주었으며, 여기에 필요한 가마니는 주로 진례면 쪽에서 조달하였다. 평야에서 벼농사에 의존하던 농촌 마을은 급증하는 가마니 수요에 집집이 가마니틀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이후에도 박해수는 비닐하우스의 생산성을 높일 다양한 연구와 시도를 그치지 않았다. 땅속에 전선을 깔아 지열을 섭씨 16~18도로 유지하고, 지하 54m에서 지하수를 퍼 올려 표층수보다 따뜻한 물을 급수하였으며, 열풍 난로를 도입해 하우스 내의 온도를 높여 주는 등으로 농업 생산성을 크게 끌어올렸다. 이렇게 해서 셀러리는 연 2회, 상추·토마토·오이는 연 4회 수확하면서 농지 순환을 높여 생산성을 극도로 끌어올렸다.

박해수는 농업 연구를 멈추지 않았고, 신어산 자락을 개간해서 고랭지 채소 재배에 도전하였으며, 이 역시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잠시도 쉬지 않고 농업 연구와 선진 기술 전수에 힘쓰던 박해수는 1980년 중풍으로 쓰러졌고, 1985년 6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대한민국은 박해수가 이룬 농업 혁명의 가치를 여러 상훈으로 치하하였다. 1962년 대한민국 농업기술상을 시작으로 1966년 동탑산업훈장, 같은 해 경상남도 자립상, 1967년 5·16민족상 산업부문 본상 등이다. 김해시는 2008년 박해수가 처음으로 비닐하우스를 재배한 삼안동주민센터 근처 경상남도 김해시 어방동 1069-18번지 입구 공원에 기념비를 세워 박해수의 공로를 숭상하였다.

[김해를 뒤덮은 은빛 물결]

김해는 낙동강 삼각주에 자리한 전형적인 곡창 지대이다. 1995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김해시와 김해군이 통합되면서 김해군의 황금 들녘이 김해시역으로 편입되었다. 2016년 기준으로 김해시의 경지 면적은 7,913㏊로 호당 0.97㏊를 경작하였다. 2016년 기준 경지 면적은 1만 1020㏊로 크게 늘었으며 그중에 논이 8,620㏊, 밭이 2,400㏊로 한국의 전형적인 농촌과는 논밭 비율이 크게 달랐다. 이는 낙동강 삼각주의 비옥한 논이 펼쳐져 있어 굳이 밭을 개간해야 할 필요성이 없었고 여력도 없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전통적인 벼농사가 중심이었지만 김해의 기후 특성이 부가된 다양한 농업이 이루어졌다. 난대성 기후대이고 지형적 영향으로 겨울철에 눈이 많이 오지 않고 맑은 날씨가 많다 보니 특히 비닐하우스 영농에 적합한 지역이었다.

박해수의 영향으로 비닐하우스 농법이 광범위하게 퍼지면서 영농에서도 다양한 경영이 가능해지기도 하였다. 2011년을 기준으로 1,650개 농가가 783㏊에 1만 6247동에 이르는 비닐하우스로 영농하였다. 주로 시설 채소 재배였지만 꽃을 재배하는 농가도 만만치 않았다. 2011년 기준 시설 채소는 1,124개 농가가 541㏊에 1만 1745동으로 영농하였으며 토마토, 딸기, 참외, 부추 등이 주산물이었다. 화훼는 526개 농가가 242㏊에 4,502동의 비닐하우스를 운영하였으며 카네이션, 국화, 장미, 금어초 등을 재배하였다.

[사라져 가는 은빛 물결]

대한민국 어느 지역이나 마찬가지로 김해시의 농업도 2000년대 이후 점점 축소되고 있다. 논농사는 주로 대동면·장유면·주촌면·생림면 등지에서 집중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생림면상동면낙동강 배후지에서 활발하게 이뤄지던 딸기, 감자 농사 등은 4대 강 사업으로 대부분 소멸하기도 하였다.

시설 하우스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2011년 원예 시설 농업을 하는 농가는 1,650개 가구가 783㏊에 1만 6247동으로 영농을 하였다. 10년 후인 2021년 1,311개 농가가 539㏊에 1만 3387동을 경작하였다. 농가 수로는 21%, 경지 면적으로는 31%, 시설 하우스 동 수로는 18%가 감소한 것이다. 이 중 시설 채소 농가는 15%, 동수는 8%, 면적은 24%가 줄어들었다. 시설 화훼도 농가 33%, 동수 44%, 면적 48%가 줄어들었다.

김해시 농업 인구는 2021년 기준 전체 인구 50만 3348명 중 1만 8658명으로 3.5%에 불과하다. 농지 면적은 2021년 기준으로 8,980㏊였으며, 2010년에 대비해 1,824㏊[16.8%]가 감소하였다. 이는 농촌 인구의 고령화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가운데 최근 3년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외국인 노동자의 입국 제한 등이 잇따르면서 영농 인력난이 심화하였기 때문이다.

[새로운 활력을 찾아]

김해시는 ‘새로운 활력이 솟아나는 희망 농촌’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시책을 마련해 시행해 왔다. 우선 살기 좋은 농촌 생활권 구축, 농업 기반 조성 및 환경 개선, 농업 경쟁력 강화, 기금 지원, 농업인 육성, 농지 관리, 친환경 농업 육성, 식량 산업 육성 및 농업 소득 보전, 농기계 관리 산지 유통 활성화 및 농식품 산업 육성, 농산물 수출 활성화, 원예 산업 생산 기반 구축, 과수 특작 및 농촌 관광 활성화, 공급식 확대, 먹거리 정책 수립 등 15가지 세부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축산업 분야에서도 축산 경쟁력 강화, 가축 사육 기반 조성 강화, 동물 복지 문화 정착, 축산물 유통 관리, 청정 방역 체계 구축 등 5개 세부 정책이 있다. 지역 특화 농업 분야는 현장 밀착형 농업 신기술 보급, 지역 전략 작목 소득화, 미래를 선도하는 전문 농업인 육성, 과학 영농 시설 활용 첨단 농업 지원, 농촌 자원 소득화 및 농촌 활력 증진, 도시 농업 활성화 및 치유 농업 육성 등을 추진하고 있다.

국제 곡물 공급망 장애 발생, 이상 기후로 인한 생산 감소, 중국의 곡물 수요 증가 등으로 곡물 통상 여건의 불확실성 요인이 증대되는 등 식량 안보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또한 글로벌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세계 각국은 탄소 중립 경제 사회로의 전환을 추진 중이며, 농업 부문에도 저탄소 환경 친화적 농업·농촌으로 전환도 필요하다.

김해시의 농업 정책은 지속할 수 있는 농업 체계를 구축하고, 기후 변화 대응 및 농업 생산성 향상, 무엇보다 농촌 정주 환경을 개선함으로써 청년 농가 귀농·귀촌을 유도해 누구나 살고 싶은 농촌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한국 사회의 고령화·초고령화에 따른 인구 소멸 지역이 생겨나고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대한민국 최초로 비닐하우스 재배로 백색 혁명을 일으킨 김해시가 다시 농촌 활력을 되찾을 수 있을지 기대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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