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11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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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傳統 家屋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권순강 |
[정의]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 건립된 전통 양식의 주택.
[개설]
전통 가옥은 우리나라에 전해 내려오는 주택이다. 주택은 인간의 출현과 더불어 발생하였으며 구석기 시대부터 인공 주거가 시작되었는데 김해 지역에 유구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신석기 시대에는 움집과 고상식(高床式) 건물지, 환호(環濠)가 출현하였다. 김해 지역에서의 유구는 드물지만 구산동 유적과 율하리 유적에서 고상식 건물지가 확인된다.
청동기 시대에는 마을이 형성되고 움집의 깊이가 낮아져 반움집으로 변화되고 내부 공간이 분화되어 정착 생활이 가능하게 되었다. 김해의 청동기 전기 대표적인 유구는 어방동 유적인데 세장방형이며 건물지 내부에는 두 개 이상의 화덕자리가 설치되어 있다. 또한 규모가 대형인 특징도 있다. 청동기 후기의 대표적인 유적은 율하리 유적인데, 휴암리식 움집과 송국리식 움집이 출현하였다. 휴암리식 움집은 평면이 말각방형이고 내부에 화덕이 확인되지 않고 중앙에 작업공과 작업공 양 끝에 기둥구멍이 설치된 특징이 있다. 송국리식 움집은 평면이 원형이고 내부는 휴암리식 움직과 동일하다. 모두 전기보다 규모의 소형화 양상이 확인된다.
철기 시대 초기의 유적은 대청동 유적과 구산동 유적이 대표적인데, 움집의 특징은 방형, 말각장방형, 장방형, 부정형이며, 건물지 내부에는 아궁이가 설치되기도 하고 설치되지 않은 경우도 있다. 아궁이는 벽체에 붙어 있으며 구들도 조성되어 있다. 가야 시대에는 주거가 한층 발달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유적이 남아 있지 않아 알 수 없다. 가야 시대의 움집은 부원동 유적이 대표적인데, 평면은 원형이며 내부에는 4개의 기둥이 설치되었다. 내부에는 화덕 시설이 설치되었고, 저장구덩이가 설치되었다. 그리고 지상식 건물지는 더 발전하였는데, 김해 봉황동 유적과 관동리 유적이 대표적이다. 남북국 시대와 고려 시대에는 기단, 초석, 마루, 외줄고래, 기와 등이 확산 보급되고 건축술이 발달되어 지상식 건물로 전환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고고학적으로 확인된 유구는 많지 않다.
조선 시대에는 온돌이 보급되어 전면 구들이 나타나 마루와 결합하게 된다. 그리고 성리학 예제적 질서가 정착되어 남녀의 구분, 관혼상제(冠婚喪祭)의 공간이 주택에서 이루어지게 되었다.
[김해 지역에 현존하는 전통 가옥]
김해 지역에 잔존하는 대표적인 가옥으로 근대기에 재지 사족들이 건립한 김해 시례리 염수당[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과 김해 일신재[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 등이 있다. 김해 시례리 염수당은 1865년 내지는 1925년에 건축되었는데 남북축선상에 사랑채 영역, 안채 영역, 사당 영역이 직렬로 배치되어 있다. 당호에서부터 유교적 이념이 확인되고 안채와 사랑채가 분리되어 남녀의 구분이 명확하였다. 그리고 조상을 위한 사당을 조성하여 고려 시대와는 다른 구성 요소가 확인된다. 사당은 안채의 배면에 조성함으로써 공간의 가장 깊은 곳에 배치하여 위계를 강조한 것을 알 수 있다. 안채는 기둥은 사각형의 각주를 사용하였고 건축 형태는 장여만을 장식한 장여수장집이며 도리는 사각형의 납도리를 사용하였다. 하지만 사랑채는 기둥은 둥근 원주를 정면에서 사용하였고 장여수장집이지만 정면 기둥 상부에만 짧은 창방과 소로를 사용한 소로수장집이다. 이는 근대기적 특징을 보여 주는 것이다. 도리는 둥근 도리를 사용한 굴도리집으로 부재의 형태와 건축 형식 등을 통해 사랑채의 위계를 강조하였다. 사당은 더욱 위계가 강조되어 원주의 사용뿐만 아니라 간단한 붉은색 단청을 해서 위계를 나타내었다. 그래서 김해 시례리 염수당은 조선 시대의 성리학적·예제적 질서를 잘 반영한 건물이라 할 수 있다.
김해 일신재는 1917년 무렵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안채와 사랑채 공간의 분리 등 김해 지역의 유교적 질서가 잘 반영되어 있다. 김해 일신재에서 주목할 것은 평면에서 전후면에 툇간이 부가된 점, 가공한 석재의 사용, 건실한 부재의 사용, 마루의 축소 및 창호 설치, 유리창호의 사용, 안채의 머름 생략, 사랑채 정면 기둥 상부에만 소로수장을 한 점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사랑채의 유리창호 조성 방법이 주목된다. 이러한 특징들은 근대기 한옥의 변화 양상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한편, 김해 지역의 민가는 갈대집이 대표적 형태이다. 하지만 현재는 김해장방리갈대집을 제외하고는 유구가 많이 남아 있지 않다. 김해장방리갈대집은 1945년에 건립되었으며, 사랑채와 아래채는 1920년에 건립되었다. 배치가 지형에 맞게 유기적으로 되어 있고, 대문채와 사당 그리고 담장이 없어 생활에 필요한 집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부재가 약소하고 거칠고 건축 형식도 소략한 양식을 사용하고 있다. 또 예제적 성격이 강한 대청은 없고 툇마루가 사용된 점도 민가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 김해장방리갈대집은 과거에는 흔한 집이었지만 거의 멸실되어 현재는 매우 귀한 주택 양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