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12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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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曺次山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대동면 주동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한양하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8년 - 「조차산」 『김해의 설화』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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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지명 | 조차산 - 경상남도 김해시 대동면 주동리 |
성격 | 전설 |
주요 등장 인물 | 남명|차산 |
모티프 유형 | 지명 유래담 |
[정의]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서 남명 조식의 아들인 조차산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채록/수집 상황]
「조차산(曺次山)」은 1998년 김해문화원에서 발행한 『김해의 설화』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신어산(神魚山) 동쪽에 있는 원동마을에 조차산(曺次山)이 있는데, 옛날 조남명(曺南冥) 선생에게 차산(次山)이라는 도사 아들이 있었다. 이 차산의 도술은 서산대사(西山大師)를 능가할 정도로 신출귀몰(神出鬼沒)한 것이었다고 한다. 차산의 부친은 유학으로 명성이 전국적으로 높았으나 차산이 도술을 남용할까 두려워하여 뒷산에 굴을 파고 차산을 감금하였다. 차산은 이 굴 속에 감금된 뒤로 날마다 먹을 것을 주는 데도, 탈출하려고 갖은 꾀를 썼으므로 이 때문에 산이 부풀었다고 하며, 그 뒤로 차산의 이름을 따서 산을 차산등(次山嶝)이라고 하였다. 차산은 아홉 살에 요절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조차산」에 나오는 조차산은 돛대산을 말한다. 산 지형이 돛대처럼 생겼다는 데서 불린 이름이다. 남명 조식은 영남학에서 퇴계 이황(李滉)과 견줄 수 있는 학문의 계보를 형성했다. 김해는 조식의 처가가 있는 곳이며, 아들 차산을 낳았던 곳이다. 또한 산해정(山海亭)에서 후학을 양성하였다. 남명이 44세 되던 1544년 아들 차산을 잃었는데, 아들을 잃은 슬픔을 「상자(喪子)」라는 시로 남겼다. 「조차산」 이야기와 달리 늦게 얻은 아들을 무척 사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상자(喪子)」
미실미아승사아(靡室靡兒僧似我)[집도 없고 아들도 없는 게 중과 비슷하고]
무근무대아여운(無根無帶我如雲)[뿌리도 꼭지도 없는 이내 몸 구름 같도다]
송료일생무가내(送了一生無可奈)[한평생 보내면서 어쩔 수 없었는데]
여년회수설분분(餘年回首雪紛紛)[여생을 돌아보니 머리 흰눈처럼 어지럽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