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회고」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1313
한자 金海懷古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영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478년 - 김안국 출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543년 - 김안국 사망
성격 한시
작가 김안국

[정의]

조선 전기의 문인 김안국이 경상도관찰사 재임 시 경상남도 김해 지역의 역사를 회고하며 읊은 한시.

[개설]

「김해회고(金海懷古)」는 『모재집(慕齋集)』 권1에 수록되어 있는 5언 율시이다. 『모재집』은 조선 전기의 문인 김안국(金安國)[1478~1543]의 시가와 산문을 엮은 시문집이다. 김안국의 본관은 의성(義城)이며 자는 국경(國卿)이고 호는 모재(慕齋)이다. 『모재집』의 시는 크게 사환 시(仕宦時)[권1~3], 은거 시(退居時)[권4~7], 복직 시(復職時)[권8] 등 세 시기로 구분되어 편년순(編年順)으로 권을 나누어 수록하고 있으며 시체(詩體)의 구분 없이 5언 절구, 7언 절구 및 율시가 섞여 있다. 그러므로 이 시는 사환 시에 지은 시이다.

김안국은 1517년[40세] 경상도관찰사 재임 중 권학시(勸學詩) 한 편씩을 지어 도내(道內)의 주현(州縣) 학교 강당에 걸어 놓게 하였는데, 「김해회고」도 이 시기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김안국이 살았던 15세기 말부터 16세기 초엽은 사림파(士林派)와 훈구파(勳舊派)의 정치적 대립과 갈등이 심화되어 무오사화(戊午士禍), 갑자사화(甲子士禍), 기묘사화(己卯士禍) 등이 발생한 시기로 김안국은 이 시기에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1482~1519]와 함께 김굉필(金宏弼)[1454~1504]의 수제자로서 중종 시대의 개혁적인 사림파의 중심적 인물로 활동하였다. 김안국은 훈구와 대결함에 우회적인 방법을 택하였는데, 그것은 바로 강학과 교화이다. 특히 경상도관찰사로 부임하여 실시한 권학시는 단순한 성리학의 이념을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소학(小學)』 또는 성리학의 태도와는 반대로 나가거나 정치 권력만을 추구하는 훈구에 대한 비판도 담겨 있다.

[내용]

「김해에서 고대를 그리며[金海懷古]」

천고가야국(千古伽倻國)[천 년 가야의 나라에서]

흥망사가빙(興亡事可憑)[흥망의 일을 짐작하게 되네]

운한파탑고(雲閑婆塔古)[구름은 파사의 고탑에 한가로이 떠 있고]

춘로수왕릉(春老首王陵)[봄은 수로왕릉에서 저물어 가네]

해연래하조(海燕來何早)[강남제비 어이 이리 일찍 찾아 왔나]

산화문불응(山花問不應)[산의 꽃에게 물어도 대답이 없네]

지금문구곡(秪今聞舊曲)[이곳에서 옛 노래가락 듣고 있노라니]

처절객수증(凄切客愁增)[처량하게 나그네 근심만 더해 가네]

김해는 고대 가야국으로 지금까지 그 유적이 현존한다. 김안국은 김해가 가야국의 고도라는 점에 흥기하여 그 흥망성쇠(興亡盛衰)의 처연한 감정을 읊었다. 파사의 고탑수로왕릉에서 옛 가야의 흥성(興盛)을 보고, 강남제비와 산유화에서 그 쇠락(衰落)을 보고 있다. 그럼에도 옛 가락은 여전히 남아 전하니 처연한 감정에 빠지게 된다.

[의의와 평가]

「김해회고」는 조선 전기 거유(巨儒)인 모재 김안국의 가야에 대한 인식을 유추할 수 있는 시로서 의의를 지닌다. 그리고 16세기 김해의 정경(情景)을 묘사한 점에 있어 역사적 사료로서의 의미도 지니는 시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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