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해정」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1315
한자 山海亭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영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495년 - 주세붕 출생
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1530년연표보기 - 「산해정」 창작
저자 몰년 시기/일시 1554년 - 주세붕 사망
성격 한시
작가 주세붕

[정의]

1530년 주세붕이 김해 산해정에서 강학하던 조식을 방문하여 읊은 한시.

[개설]

주세붕(周世鵬)[1495~1554]의 본관은 상주(尙州)이며, 자는 경유(景游)이다. 호는 신재(愼齋)·남고(南皐)·무릉도인(武陵道人)·손옹(巽翁) 등을 사용했다. 주세붕은 풍기 지방의 교화를 위하여 향교(鄕校)를 이전하고, 사림 및 그들의 자제를 위한 교육 기관으로 1542년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소수서원]을 건립한 인물이다. 이 백운동서원은 중국의 서원과 같이 사묘(祀廟)적 기능과 교육적 기능을 지닌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다. 이후 백운동서원은 1550년에 풍기군수였던 이황(李滉)[1501~1570]의 청원으로 ‘소수(紹修)’라는 사액을 받아 조선 최초의 사액 서원이 되었다. 이에 따라 백운동서원은 풍기 지역 사림의 중심 기구로 자리하게 되었다. 「산해정(山海亭)」은 주세붕이 1530년 김해 산해정에서 강학하던 남명 조식(曺植)을 방문하여 지은 5언 절구의 한시이다.

[내용]

「산해정(山海亭)」

유옥청산하(幽屋靑山下)[푸른 산 아래 그윽한 집]

삼강입해문(三江入海門)[세 줄기 강이 바다로 들어가네]

무궁간동처(無窮看動處)[끝없이 움직이는 곳을 바라보니]

독식정위존(獨識靜爲尊)[홀로 고요가 존귀함을 알겠네]

「산해정」은 주세붕의 문집인 『무릉잡고(武陵雜稿)』 권2에 수록되어 있다. 주세붕이 1530년 사간원헌납으로 있다가 파직되고, 그 해 9월에 산해정으로 조식을 방문하여 지은 시이다. 이 「산해정」조식이 또 차운하였는데, 조식이 차운하여 지은 시는 다음과 같다.

「산해정에서 주경유의 시에 차운하다[在山海亭次周景游韻]」

가의풍기졸(可矣豊基倅)[좋구나 풍기군수여]

행비계아문(行騑繫我門)[말 타고 가다 내 집 문에 말을 매었지]

개개담왕구(箇箇談王口)[하나하나 왕도를 이야기하였으니]

어금위세존(於今爲世尊)[지금은 세상의 존중을 받는다네]

「재산해정차주경유운(在山海亭次周景游韻)」에서의 ‘경유(景游)’는 주세붕의 자(字)이다. 주세붕이 풍기군수로 부임한 때는 1541년 그의 나이 47세 때이다. 그러므로 「재산해정차주경유운」은 1541년 이후에 지어진 시라 하겠다. 신재 주세붕과 남명 조식은 6살 차이가 난다. 시간의 간극이 존재하지만 두 사람이 나이를 잊은 벗으로 교유하며, 학문에 대해 강론하였음을 고증할 수 있는 시이다. ‘문(門)’과 ‘존(尊)’을 운자로 하는 5언 절구로, 전구(轉句)와 결구(結句)에 두 인물의 학문적 경지가 응축되어 상징적으로 드러나 있다.

[의의와 평가]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을 창건한 신재 주세붕과 조선 유림의 정신을 대표하는 남명 조식산해정에서 조우하여 시로 창수한 것은 역사적 의미를 지닌 행적이다. 「산해정」은 그 행적의 현장을 증명하는 자료로서의 의미를 지니며, 김해 산해정에 역사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문학 작품이다. 문학과 현장이 공존하며, 시공간을 초월하여 현대까지 계승된 선비 정신과 그들의 교유 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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