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봉마을 영양 천씨 장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1378
한자 下鳳- 潁陽 千氏 葬禮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의례/제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생림면 생림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연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의례 장소 천문묘원 - 경상남도 김해시 생림면 생림리 지도보기
성격 장례

[정의]

경상남도 김해시 생림면 생림리 하봉마을영양 천씨 집안에서 지내는 독특한 장례 문화.

[개설]

김해시 생림면 생림리하봉마을에는 영양 천씨(潁陽 千氏) 집성촌이 있으며 10가구가 모여 살고 있다. 영양 천씨는 중국 명나라의 무신이었다가 조선 선조 때 귀화한 충장공 천만리(千萬里)의 후손들이다. 하봉마을 뒤편에는 천씨 재실이 있고, 1957년 세운 영존당에는 한허당 천형을 모시고 있다. 하봉마을 영양 천씨는 다른 곳과 다른 독특한 장례 문화를 가지고 있다. 죽은 사람의 시신을 처리하는 과정인 장례 절차는 종교와 풍습, 시대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한다. 우리나라 전근대에는 대부분 땅에 묻는 매장을 하였다. 죽은 뒤 일정 시간이 지나고 뼈만 수습하여 마무리 짓는 세골장(洗骨葬)도 있었다. 불교가 전래된 이후에는 화장법이 유행하였으며 현대에 들어서는 묘지 증가와 관리의 어려움 등으로 화장하고 납골당에 유골을 안치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생전의 업적에 따라 묘역의 크기나 봉분과 비석의 크기 등을 달리하는데, 하봉마을 영양 천씨의 경우 생전 업적과 상관없이 같은 크기의 묘역과 비석을 세우는 것이 특징이다.

[절차]

하봉마을 영양 천씨 장례 절차는 다음과 같다. 먼저 화장을 한 뒤, 유골을 흰 종이에 싼다. 묘역에 묻기 전에 천문제단의 중앙 유골함에 넣어 예를 갖춘다. 청석자갈 아래 묻고, 그 위에 비석을 세운다. 13세대까지의 조상은 재실 뒤에 합장하여 모시고, 현재 묘역에는 14대부터 들어올 수 있다. 살아 생전에 미리 비석을 마련한 경우도 있으며, 부부 중 한쪽이 먼저 죽었을 때에는 비석에 글을 새겨 놓고 검은 테이프 등으로 가려 놓았다가 추후 매골장을 하고 나면 테이프를 제거한다.

[특징]

하봉마을 영양 천씨 장례 문화는 두 가지 특징을 지닌다.

첫째는 살아 생전의 지위와 명예에 상관없이 모두 동일한 크기와 비문을 새긴 비석을 세운다는 점이다. 무덤 양식은 동시대의 양식을 따르기 마련이다. 전근대일수록 무덤은 계급과 신분의 차이를 반영하고, 무덤을 조성하고 주변을 장식하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묘역은 조상으로부터 순서대로 자리를 잡아 내려오는 것이 보편적이며, 봉분 앞에 세우는 비석에는 살아 생전의 업적을 새겨 놓기도 한다. 그러나 하봉마을 영양 천씨는 사망한 순서대로 비석을 세운다. 비석 한 기는 2.64㎡[0.8평] 정도로 크기 역시 모두가 동일하다. 비문 역시 누구 하나 특별할 것 없이 동일한 내용을 새긴다. 살아 생전의 지위와 명예를 모두 내려놓고 차별 없이 모두 평등한 대접을 받는다는 점에서 다른 장례 문화와 차별성을 가진다.

둘째는 친환경적이다. 하봉마을 영양 천씨의 장례는 흰 종이에 유골을 싸서 자갈 아래 묻는다. 유골함이 따로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자연으로 돌아간다. 최근에는 봉안 시설에 안치하는 대신 수목장이나 유골을 가루로 만들어 산이나 강, 바다 등에 뿌리는 산골을 하기도 한다. 고인을 자연으로 되돌려 보내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하봉마을 영양 천씨의 장례는 일찍부터 친환경적인 장례 문화를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하봉마을 영양 천씨의 후손들은 죽음이 삶의 연장선상임을 알고, 저마다 삶의 모습은 다양하지만 죽은 뒤에는 모두 차별 없이 천문정토에서 만나리라 생각한다. 김해에 자리 잡은 이후 줄곧 행해 온 영양 천씨만의 독특한 장례 문화는 자연스럽게 자연으로 돌아가는 삶의 이치를 알려 주고 있다.

[현황]

하봉마을 영양 천씨는 마을 앞에 있는 선산인 천산에 조성된 천문묘원에 화장한 유골을 묻는다. 천문묘원 중앙에는 ‘천문제단’이라고 적힌 유골함이 있다. 보통의 묘역이 흙 위에 있는 것과 달리 영양 천씨 묘역은 자갈로 되어 있다. 천문묘원을 조성할 때 흙을 파내고 황토를 넣었다. 가장 바닥에 황토를 깐 후 청석자갈을 30㎝ 두께로 깔았다. 때문에 천문묘원에는 바닥에는 풀이 없고, 묘역을 빙 두른 울타리에 넝쿨식물을 심어 장식하였다. 유골이 묻힌 곳에는 모두 같은 크기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비석에는 〇세(대) 현고〇〇부군지묘(顯考〇〇府君之墓)라고 되어 있고, 그 아래에는 현비〇〇〇씨(顯妣〇〇〇氏)라고 새겨져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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