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1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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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安里 |
영어공식명칭 | Sinan-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진례면 신안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미영 |
[정의]
경상남도 김해시 진례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신안리에는 가야의 시조인 김수로왕(金首露王)과 관련한 이야기가 전하고, 조선 전기 편찬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도 “무송지[현 신안저수지]가 부의 서쪽 35리에 있다.”라고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일찍부터 사람들이 농사를 짓고 거주한 곳으로 보인다. 서쪽의 평지와 동쪽의 신안으로 이루어져 있다.
[명칭 유래]
신안리(新安里) 지명은 자연 마을인 신안에서 유래한 지명인데, 신(新) 자의 훈이 ‘새’로, 동쪽을 의미하는 우리말의 변형으로 볼 수 있다고 한다. 한편 낙남정맥(洛南正脈)인 비음산과 대암산의 동쪽 자락에 형성된 마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므로 마을의 위치와 관련하여 만들어진 지명으로도 추정할 수 있다.
[형성 및 변천]
신안리는 조선 후기 김해도호부(金海都護府)의 진례면에 속하였다. 진례면[청천면 또는 청내면] 지역이 1894년(고종 31) 진례면과 율리면으로 분리되었을 때 신안리는 송정리, 청천리, 시례리, 초전리와 함께 진례면에 속하였다. 진례면이 속한 김해 지역은 1895년(고종 32) 23부제가 시행되면서 진주부 김해군이 되었고, 1896년 13도제가 시행되면서 경상남도 김해군으로 개편되었다. 1914년 4월 1일 행정 구역 개편 때 진례면과 율리면에 중북면 일부를 병합하여 김해군의 14개 법정면 중 하나인 진례면으로 하고, 신안리에 평지, 무송, 석신을 합하여 진례면의 법정리인 신안리로 하였다. 1917년 편찬된 『신구대조 조선전도부군면리동명칭일람(新舊對照 朝鮮全道府郡面里洞名稱一覽)』에는 “신안리는 진례면 조전리[현 초전리]의 일부”라고 나온다. 진례면은 1981년 7월 1일 김해군과 김해시가 분리될 때 김해군의 관할로 남았다. 1995년 5월 10일 김해군과 김해시가 통합하여 김해시 진례면 신안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신안리의 서쪽은 높은 산지로 이루어져 있고 동쪽으로 가면서 화포천이 형성한 범람원이라 평지가 발달하였다. 비음산과 대암산 자락에서 흘러나오는 지류들이 평지 아래 진례저수지에서 합류한다. 평지는 비음산과 대암산에서 발원한 여러 지류들이 모여들며 형성한 침식 분지에 있는데, 규모는 작으나 산지 사이에 작은 평지가 발달하여 마을이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진례저수지에서 합류된 화포천의 지류는 동쪽으로 흘러 신안저수지에 이른다.
[현황]
2023년 12월 31일 기준 신안리의 면적은 7.91㎢이며, 125가구, 222명[남자 107명, 여자 115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신안리는 진례면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지만 가구 수와 인구수는 가장 적다. 자연 마을로 신안과 평지가 있다. 신안저수지 안쪽에 임진왜란 때 순국했던 송빈(安賓), 이대형(李大亨), 김득기(金得器)를 모시던 송담사(松潭祠)[삼충사]가 있었다. 송담사는 1833년(순조 33) 조정에서 ‘표충사(表忠詞)’라고 사액을 받았으나 1868년(고종 5) 전국적으로 서원이 철폐될 때 없어졌다. 진례저수지와 신안저수지 사이로 경전선과 이어지는 부전-마산 복선전철 선로 공사가 진행 중인데, 부전-마산 복선전철은 2024년 12월에 개통할 예정이라고 한다. 평지는 진례면에서 경상남도 창원시로 왕래하던 고갯길에 자리한 마을로, 예전부터 음식점이 많았던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