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154
한자 大甘里[上東面]
영어공식명칭 Daegam-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상동면 대감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송경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4월 1일 - 경상남도 김해군 상동면 대감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95년 5월 10일 - 경상남도 김해군 상동면 대감리에서 경상남도 김해시 상동면 대감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면적 3.75㎢
가구수 434가구
인구[남/여] 846명[남 469명/여 377명]

[정의]

경상남도 김해시 상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대감리상동면의 중앙에 자리한 지역으로 면 소재지이다.

[명칭 유래]

대감리는 고려 시대에는 감물야향(甘勿也鄕)이었고 조선 전기까지도 감물야촌(甘勿也村)이라고 하였는데, ‘달무리마을’이란 뜻으로 추정된다. 1789년(정조 13) 편찬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나오는 대감물야리(大甘勿也里)를 줄인 이름이다.

[형성 및 변천]

대감리는 조선 후기 김해도호부(金海都護府)의 상동면 지역이었다. 1789년 『호구총수』에는 상동면의 관할 마을 중 하나인 대감물야리로 나온다. 상동면이 속한 김해 지역은 1895년(고종 32) 23부제가 시행되면서 진주부 김해군이 되었고, 1896년 13도제가 시행되면서 경상남도 김해군으로 개편되었다. ‘대감리’라는 이름은 1912년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舊韓國地方行政區域名稱一覽)』에 처음으로 보인다. 1914년 4월 1일 행정 구역 개편 때 상동면의 20개 리를 6개 리로 통폐합하여 김해군의 14개 법정면 중 하나인 상동면으로 하고, 대감리를 상동면의 법정리 중 하나로 하였다. 상동면은 1981년 7월 1일 김해군과 김해시가 분리될 때 김해군의 관할로 남았다. 1995년 5월 10일 김해군과 김해시가 통합하여 김해시 상동면 대감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대감리 북쪽에는 금동산, 남쪽에는 장척산과 도봉산을 잇는 산줄기가 있는데, 이를 경계로 북쪽은 상동면 감노리, 남쪽은 상동면 묵방리와 접한다. 대감리 중앙을 대포천이 동쪽으로 흐르며 지류인 내동천이 유입한다. 취락은 대포천 유역의 산록을 따라 형성되어 있다.

[현황]

2023년 12월 31일 기준 대감리의 면적은 3.75㎢이며, 434가구, 846명[남자 469명, 여자 377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자연 마을로 내동골마을, 대감마을, 봉암마을, 암경마을, 용전마을이 있다. 대감마을은 남쪽 산록의 장척계곡까지 이어져 있다. 용전마을은 대감마을 맞은편의 북쪽 금동산 산록에 자리하고, 봉암마을은 금동산 동남쪽 산록에 형성된 마을이다. 대감리에는 상동면 행정복지센터와 금동초등학교 등이 있어 상동면의 중심 기능을 한다.

대감리 근처 골짜기에서 조선 시대 자기 가마터인 상동 분청사기 가마터, 상동 백자 가마터가 발견되었다. 모두 용수와 땔감의 공급이 상시 가능하고 낙동강을 이용하여 소비지까지 운송이 수월했던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봉암마을에 김해 사충신(四忠臣) 중 한 명인 이대형(李大亨)의 묘가 있는데, 아내 고창 오씨(高敞 吳氏)와의 합장묘이다. 대감마을에는 조선의 여성 도예가 백파선(百波仙)과 분청사기, 철 제련 등 역사 속 대감마을을 콘셉트로 한 대감벽화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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