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5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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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海 上東 粉靑沙器 - |
영어공식명칭 | Gimhae Sangdong Buncheong Kiln site |
이칭/별칭 | 김해 상동 분청사기 요지,상동 분청사기 가마터,상동 분청사기 요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상동면 대감리 502-1 |
시대 |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최영문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16년 6월 8일~2016년 7월 22일 - 김해 상동 분청사기 가마터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에서 정밀 발굴 조사 실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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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17년 7월 13일 - 김해 상동 분청사기 가마터 경상남도 기념물 제288호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김해 상동 분청사기 가마터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에 따라 문화재 지정 번호 삭제 |
소재지 | 김해 상동 분청사기 가마터 - 경상남도 김해시 상동면 대감리 502-1 |
성격 | 가마터|요지|생산 유적 |
지정 면적 | 5,866㎡ |
소유자 | 정인환 외 |
관리자 | 김해시청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남도 기념물 |
[정의]
경상남도 김해시 상동면 대감리에 있는 고려 후기~조선 전기 분청사기 가마터.
[위치]
김해 상동 분청사기 가마터는 김해시 상동면 대감리 502-1번지 대감마을에 있다. 장척산(長尺山)에서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북서쪽 구릉 비탈부에 해당한다. 북쪽으로는 대포천이 서에서 동으로 흘러 낙동강(洛東江)과 합류하고, 서쪽으로는 내동천이 북쪽으로 흘러 대포천에 합류한다. 대포천의 지류에 해당하는 내동천과 만나는 경사 변환점의 편평한 구릉 해발 39m~40m 지점에 가마터가 자리한다. 해당 면적은 5,866㎡이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김해시는 매년 김해분청도자기축제를 이어 오고 있으며, 김해분청도자박물관을 설립하여 분청사기의 고장임을 알리고 있지만 분청사기 가마터와 관련한 고고학적 증거는 부족한 상태였다. 이에 조선 시대 김해 지역의 도자기 생산 체제의 실체를 파악하고자 2007년 12월 한국문물연구원에 지표 조사를 의뢰하였다. 그 결과 총 12개소의 도자기 및 기와 가마가 확인되었고, 이후 2016년 6월 8일~동년 7월 22일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에서 정밀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분청사기 가마 1기와 폐기장 3기가 확인되었으며, 3기의 폐기장에서는 총 3,593점의 유물을 확인하였다. 조사단에서는 기종을 알 수 있는 2,145점을 재선별하고, 그중 기종·시문별 대표 유물 120점을 선별하는 작업을 거쳤다. 1호 가마는 초벌실과 소성실 일부만 조사되었으며, 바닥 토층 상태를 볼 때 최소 12회 이상 조업을 하였던 것으로 추정하였다. 가마 내부에서는 분청사기 초벌구이 저부 조각이 확인되었다.
폐기장에서는 ‘사선(司膳)’과 ‘장흥(長興)’, ‘김해(金海)’ 명문과 같은 다양한 관사명이 새겨진 분청사기가 출토되었을 뿐만 아니라 제기, 매병, 고족배, 병, 대접, 접시 등의 일상생활 용기와 특수한 목적으로 제작된 기종도 확인되었다. 시문된 문양도 국화문·선문·연판문 등으로 다양하며, 고려 말기의 상감 기법부터 상감+인화, 인화+귀얄, 귀얄 장식 기법에 이르기까지 분청사기와 관련한 거의 모든 시문 기법이 확인되고 있다. 이를 종합해 보면, 가마의 운영 시기는 14세기 말~15세기 중후반으로 판단된다.
이와 관련하여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의 “김해도호부(金海都護府)의 동쪽에 하품을 생산하던 감물야촌(甘勿也村)에 1개의 자기소가 있었다”라는 기록과,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誌)』의 “자기소는 부의 동쪽 감물야(甘勿也)에서 하품을 생산하였다”라는 두 기록이 주목된다. 현재 ‘대감야(大甘也)’라는 지명이 ‘대감물야리(大甘勿也里)’가 축약되어 생겼다는 점과, 이 지역이 『경상도속찬지리지』가 제작되었던 당시 1424년(세종 6)~1432년(세종 14)과 1469년(예종 1) 김해도호부 치소[현재 김해시 동상동]에서 북동쪽에 위치하였다는 점, 그리고 가마터의 고고학적 조사 성과 등으로 보아 조사 지역 일대는 조선 시대 ‘감물야촌(甘勿也村)’이라는 공납 자기소로 추정된다.
[현황]
김해 상동 분청사기 가마터는 2017년 7월 13일 경상남도 기념물 제288호로 지정되었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 「문화재 지정[등록]번호 삭제 및 문화재명 표기 방식 변경 고시」에 따라 문화재 지정 번호는 삭제되었다. 소유자는 정인환 등이며, 관리자는 김해시청이다.
[의의와 평가]
발굴 조사를 통해 김해 상동 분청사기 가마터 일대가 문헌에 기록된 김해도호부의 지방 공납 가마임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유물들은, 가마에서 공납용 자기와 민간 수요 자기를 함께 생산하였으며 그 시기를 1390년(공양왕 2)~1469년으로 특정 짓게 해 주는 아주 중요한 출토품이다. 이로써 김해 상동 분청사기 가마터가 김해 지역에서 분청사기를 생산 및 공급하였던 대규모 요업 단지의 일부였음이 확인되었다. 또한 분청사기의 태동과 변화 및 백자로의 전환 과정을 살펴볼 수 있고, 아울러 경상도 자기 공납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규명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유적임을 알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