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591
한자 崇善殿祭禮
이칭/별칭 숭선전춘추대제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의례/제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가락로93번길 26[서상동 312]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현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시작 시기/일시 199년연표보기 - 숭선전제례 시행
문화재 지정 일시 1990년 12월 20일연표보기 - 숭선전제례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11호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1년 11월 19일 - 숭선전제례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에 따라 문화재 지정 번호 삭제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4년 5월 17일 - 숭선전제례 경상남도 무형문화재에서 경상남도 무형유산으로 변경 지정
의례 장소 숭선전 - 경상남도 김해시 가락로93번길 26[서상동 312]지도보기
성격 제례
의례 시기/일시 3월 15일|9월 15일
신당/신체 숭선전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남도 무형유산

[정의]

경상남도 김해시 서상동 숭선전에서 봄가을 가락국의 시조인 수로왕과 왕후 허씨를 받드는 대제.

[연원 및 변천]

『삼국유사(三國遺事)』[1281년]에 실린 금관지주사(金官知州事)가 편수한 「가락국기(駕洛國記)」에 의하면 숭선전제례(崇善殿祭禮)는 음력 정월 3일과 7일, 5월 5일, 8월 5일과 15일 등 매년 5차례 시행되었다. 숭선전제례는 199년 도왕(道王)[거등왕] 때부터 시작되어 가락국이 패망하는 구형왕(仇衡王) 때까지 지속되었다. 이후 가끔 진행되다가, 661년 즉위한 신라 제30대 문무왕이 조서를 내려 계속 제사를 지내게 하고, 제전(祭田)을 하사하여 제사 비용을 충당하게 하였다. 통일신라 초기 김유신(金庾信) 등 후손들의 영달로 제례는 지속되었다. 그러나 통일신라 말기에 후손들의 세력이 쇠퇴하면서 약 150년 동안은 제례가 중단되었다.

고려 시대 1076년(문종 30)에 편찬되었다는 『가락국기』에 “199년에 처음 능에 사당을 세운 뒤부터 지금까지 무릇 878년 동안 봉분도 무너지지 않았고, 주변 나무도 무성하며, 사당을 장식한 옥 조각도 멀쩡하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능묘 일대가 잘 관리되고 있다는 점에서 제사도 지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에도 김해 지역의 후손과 양반들에 의해 향제(鄕祭)로 계속 거행되었다. 1792년(정조 16) 조선의 정조는 친히 제문을 짓고, 제관을 파견하여 제사를 올리면서 능감(陵監) 1인을 두도록 명하였다. 이후 제례 때마다 왕이 축문을 내려주었다. 그 뒤로 1878년(고종 15) 고종이 수로왕허씨 왕후의 위패를 모신 사당을 ‘숭선전(崇善殿)’이라 사액함으로써 국가적 제례가 되었다. 숭선전제례는 달리 ‘숭선전춘추대제(崇善殿春秋大祭)’라고도 한다.

숭선전 바로 우측에는 숭안전(崇安殿)이 있다. 여기에는 가락국 2대 도왕과 모정 부인, 3대 성왕과 호구 부인, 4대 덕왕과 아지 부인, 5대 명왕과 정신 부인, 6대 신왕과 복수 부인, 7대 혜왕과 인덕 부인, 8대 장왕과 방원 부인, 9대 숙왕과 숙부인 등 열여섯 분의 신위가 모셔져 있다. 숭선전제례 때 함께 숭안전제례가 거행되는데, 다만 숭선전제례와 시간 차이가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수로왕과 왕후 허씨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을 올리는 전각은 숭선전이다. 숭선전은 국가와 후손이 함께 주관하여 제례를 시행하는 우리나라 팔전(八殿) 중 하나이다. 숭선전가락국 제2대 도왕의 즉위 원년이자 수로왕이 승하한 199년 능 정면에 건립하였다. 이후 1698년(숙종 24) 김해부사 허재가 왕릉 앞에 정자각(丁字閣)을 새로 지었고, 1792년 4칸으로 중건되었다. 1878년 고종이 침묘(寢廟)를 3칸으로 중수하고 ‘숭선전’이라 사액하였다. 1926년과 1954년에 중수가 있었고, 1973년 보수하였으며, 1987년 능 정면에 있던 숭선전을 능 우측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절차]

2023년 현재, 숭선전제례에는 초헌관·아헌관·종헌관·대축·집례·알자·찬자·찬인·사촉·봉향·봉로·사준·봉작·전작·장찬·장생·적기·진설·식객·전사관·학생 등이 참여한다. 제례의 제관(祭官)은 제사일 15일 전에 왕릉 내 숭모재에서 김해시 기관장 및 유림과 후손 100여 명이 모여 총회를 통해 선정한다. 제례 때 사용하는 제복(祭服)은 헌관복·대축복·집례복·전사관복·학생복·전악복 등으로 구분한다.

제례의 진행 순서는 ① 제물로 쓸 희생을 살피는 성생례(省牲禮), ② 제상 위에 제수를 차리는 진설(陳設)로 시작된다. 진설은 전날 오후 2시부터 10변(籩) 10두(豆)로 하는데, 고대 풍습을 이어 주로 생것을 올린다. ③ 축문을 써서 담아 두는 축문사축(祝文寫祝), ④ 집례·찬자 내외 집사의 사배(四拜)가 있고, ⑤ 진설을 점검하고, ⑥ 위패가 보이도록 함을 여는 개독(開櫝)을 한다. ⑦ 제례복을 입는 착복, ⑧ 제관들이 각자의 자리로 가서 서는 취위(就位), ⑨ 초헌관에게 예(禮)를 시행하기를 청하는 청행사(請行事), ⑩ 모든 참가자가 네 번 절을 하는 참신례(參神禮), ⑪ 초헌관이 신위전에 나아가 향을 세 번 집어 불에 사르며[삼상향(三上香)] 신을 맞이하는 강신례(降神禮), ⑫ 초헌관이 신위전에 나아가 폐백을 드리는 전폐례(奠幣禮), ⑬ 주로 경상도관찰사[경상남도지사]가 맡는 것으로 초헌관이 제례악에 맞추어 술을 올리고 제사의 연유를 고하는 축문을 읽는 초헌례(初獻禮), ⑭ 주로 종친이 맡는 아헌관이 술을 올리는 아헌례(亞獻禮), ⑮ 주로 유림 대표가 맡는 종헌관이 술을 올리는 종헌례(終獻禮) 순으로 진행된다. 마지막으로 ⑯ 초헌관이 제사에 쓰인 술과 음식을 먹는 음복례(飮福禮) 이후로도 대축이 변(籩)과 두(豆)를 각 하나씩 자리를 조금 옮겨 놓는 철변두(撤籩豆), 제사를 마치고 신을 전송한다는 의미로 네 번 절을 하는 사신례(辭神禮), 제례에 쓰인 축문과 폐백(幣帛)을 태우는 망료례(望燎禮), 알자(謁者)가 초헌관에게 예를 마친다고 고하는 예필(禮畢), 취위했던 제관들이 모두 나가는 이출(而出), 철향(撤香) 후 전각문을 닫는 봉문(封門), 제례가 끝난 뒤에 헌관 이하 모든 제관이 숭모재에 모여서 서로 읍을 행한 다음 함께 음복하고 해산하는 상읍례(相揖禮)함으로써 제례가 마무리된다.

[현황]

숭선전제례는 1990년 12월 20일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11호로 지정되었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 「문화재 지정[등록]번호 삭제 및 문화재명 표기 방식 변경 고시」에 따라 문화재 지정번호는 삭제되었다. 숭선전제례는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청의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경상남도 무형문화재에서 경상남도 무형유산으로 변경되었다. 2024년 현재도 매년 음력 3월 15일과 9월 15일에 춘추대제(春秋大祭)를 지내고, 정월 초하루와 추석과 동지에는 헌다례(獻茶禮)를 거행한다. 또한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는 분향을 받들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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