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6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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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許黃玉 |
이칭/별칭 | 허황후,허왕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왕족·호족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
시대 | 고대/삼국 시대/가야 |
집필자 | 김양훈 |
출생 시기/일시 | 32년 - 허황옥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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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 시기/일시 | 48년 - 수로왕 허황옥 혼인 |
몰년 시기/일시 | 189년 - 허황옥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452년 - 왕후사 창건 |
묘소|단소 | 김해 수로왕비릉 - 경상남도 김해시 가락로190번길 1[구산동 120] |
성격 | 왕족 |
성별 | 여 |
본관 | 김해 |
[정의]
삼국 시대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 있었던 가락국의 제1대 왕 수로왕의 왕비.
[개설]
허황옥(許黃玉)[32~189]에 관한 기록은 『삼국유사』「가락국기」에서 최초로 확인된다. 인도 아유타국 출신 공주로 알려져 있으며, 허황후 또는 허왕후라고도 한다.
[가계]
허황옥은 『삼국유사』「가락국기」에 수로왕의 부인이자 거등왕의 어머니로 전한다. 이와 달리 1634년 간행된 송인(宋寅)의 『이암유고(頤菴遺稿)』에 수록된 「증이조참판허공신도비명(贈吏曹參判許公神道碑銘)」에는 수로왕과 허황옥 사이에 태어난 왕자가 10명이 있었다고 전한다. 이후 1647년에 허적(許積)이 쓴 「가락국수로왕릉(駕洛國首露王陵)」, 「가락국수로왕비보주태후허씨릉(駕洛國首露王妃普州太后許氏陵)」 등 김해 지역에 산재한 여러 금석문과 김해 김씨, 김해 허씨 족보에서도 『이암유고』의 내용을 따르고 있다. 이같이 다른 기록이 전하는 이유는 분명하지 않으나, 조선 중기에 허씨 가문의 위상 제고를 위해 해당 내용이 첨가되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활동 사항]
허황옥은 『삼국유사』「가락국기」에 의하면, 서기 48년 아유타국에서 부왕과 왕후의 명에 따라 신보(申輔), 조광(趙匡) 등의 잉신(媵臣)을 비롯한 20여 명을 거느리고 김해 지역에 도착하였다. 유천간(留天干)이 처음 허황옥을 맞이하였으나, 허황옥은 모르는 자를 경솔히 따라갈 수 없다고 질책하였다. 이후 수로왕이 직접 마중 나와 허황옥을 맞이하자, 허황옥은 자신의 신상을 수로왕에게 상세히 고하고 수로왕과 혼인하였다.
허황옥의 출자와 관련하여 해변의 공창 무녀설[미시나 쇼에이(三品彰英)], 일본에 있는 가락국의 분국설[김석형], 인도 아요오디아의 식민국인 태국 아유티야설[이종기], 인도 아요디아국에서 중국 쓰촨성[四川省] 안웨현[安岳縣]에 정착한 허씨 집단설[김병모], 낙랑군 출신의 유이민 혹은 상인 집단 일족설[김태식], 기원전 2세기 위만조선 멸망 후 서북한에서 김해에 도래한 집단설[이영식] 등 다양한 의견이 제기되었다. 「가락국기」의 ‘한사잡물(漢肆雜物)’이라는 표현, 변진의 철이 한군현에 수출된 사실, 1~3세기 김해 지역에서 중국 및 북방계 유물이 다수 출토된 점 등을 아울러 생각하면, 허황옥은 낙랑군 설치 이후 중국-낙랑-김해 지역을 오가던 중국 북방 혹은 한반도 서북부에서 도래한 이주민 집단으로 이해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묘소]
허황옥의 무덤이라 전하는 능이 경상남도 김해시 가락로190번길 1[구산동 120]에 있다. 봉토무덤이며, 무덤 앞에는 ‘가락국수로왕비 보주태후허씨릉(駕洛國首露王妃 普州太后許氏陵)’이라 새겨진 비석과 축대가 있다. 무덤 주변으로는 돌담이 둘려 있다. 능 아래 단에는 파사석탑의 석재가 세워져 있으며, 부속 건물로 숭보재, 외삼문, 내삼문, 홍살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