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600
한자 盆城 裵氏
영어공식명칭 Bunseong Baessi|Bunseong Bae Clan
이칭/별칭 김해 배씨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광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본관 분성 배씨 본관 - 경상남도 김해시
성씨 시조 배원룡

[정의]

배원룡을 시조로 하는 경상남도 김해시의 세거 성씨.

[개설]

분성 배씨(盆城 裵氏)는 김해 지역의 토성(土姓)이다.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1425]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의 김해도호부(金海都護府) 성씨조에서 토성으로 김(金)·허(許)·배(裵)·손(孫)·송(宋)·유(庾) 등 6개의 성씨를 소개한 이래, 이들 성씨는 조선 후기에 이르기까지 김해 지역의 대표적인 성씨로 자리 잡았다. 토성층은 형성 시기부터 지속적으로 분화하였는데, 이는 토성 내에서 사족(士族)과 이족(吏族)으로 나누어지거나 자연재해, 전쟁, 혼인 등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족이 되어 벼슬을 한 경우는 근기 지역을 새로운 세거지로 삼게 된다. 고려 시대 토성층은 주로 치소(治所)를 중심으로 거주하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치소 바깥으로 이주하여 조선 시대에는 치소에서 멀리 떨어진 외곽 지대에도 거주지가 형성되었다. 분성 배씨도 끊임없이 분화하여 관료를 배출한 사족의 가계가 등장하고,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 가계도 많았을 것이다. 아울러 김해 지역 내에서 거주하는 곳들이 점차 확대되었다.

[연원]

배씨(裵氏)는 신라 6촌장 중 하나인 금산가리촌장(金山加利村長) 배지타(裵祗陀)를 원조로 하고, 고려의 개국 공신 배현경(裵玄慶)을 중시조, 고려 후기 인물인 배원룡(裵元龍)을 1세조로 삼아 세계를 이어 왔다. 『분성배씨무인대동보(盆城裵氏戊寅大同譜)』에 따르면 배현경 이후 세계가 배은우(裵殷祐)-배곡(裵轂)-배정상(裵呈祥)-배위(裵緯)-배유(裵裕)-배승고(裵承古)-배경의(裵景誼)·배경분(裵景分)·배경성(裵景誠)으로 이어지고, 배경의의 큰아들 배헌(裵軒)이 김해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분성 배씨가 시작되고 있다.

배헌의 아들 배사혁(裵斯革)은 배원룡(裵元龍)·배천룡(裵天龍)·배운룡(裵雲龍) 세 아들을 두어 가문을 번성시키는데, 이 중 배원룡이 출세하여 분성 배씨 1세조가 되었다. 『분성배씨무인대동보』에는 배원룡의 아들 배서(裵署)는 전객령(典客令), 손자 배단(裵端)은 평장사를 역임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고려사(高麗史)』 등 관련 자료에서는 확인되지 않는 내용이다. 배단은 3남 1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배정비(裵廷斐)·배정미(裵廷亹)·배정현(裵廷顯)이고 딸은 창녕 조씨 조명수(曺命壽)와 혼인하였다.

[입향 경위]

분성 배씨는 시조인 배원룡의 할아버지 배헌 때 김해 지역으로 이주하여 토성으로 자리 잡았다.

[현황]

1904년(고종 41)에 간행된 『경상남도 김해군 가호안(慶尙南道 金海郡 家戶案)』은 당시 김해 지역의 면리별 가구 수와 가구주의 성명을 기록하고 있어 귀중한 성씨 정보 자료이다. 이 가호안에 실린 13개 면 4,789호의 성씨 종류는 모두 83개인데, 이 가운데 배씨가 가구주인 가호는 모두 91호 정도이다. 이들 가호는 12개 면 48개 동리에 분포하며, 동리별 거주 가호는 대체로 1~2호가 대부분이다. 3호 이상 분포했던 동리는 하북면의 불산동[6]과 안하동[5], 하동면의 하사리[4]와 대감리[4], 명지면의 진목리[9]와 평성리[4], 신호리[3] 등 7곳으로 이들의 가호 수가 배씨 전체의 40%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다. 배씨가 많이 살던 곳들은 김해 치소 지역에서 많이 떨어진 곳이었다.

1929년에 간행된 『김해읍지(金海邑誌)』 성씨조에서는 당시 김해 지역에 거주하는 성씨를 면리별로 조사하여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서 분성 배씨는 대저면 평강리, 가락면 죽동리, 장유면의 율하리와 화촌리, 진영면 죽곡리, 명지면 진목리, 녹산면의 생곡리와 세산리, 산양리 등 9곳에 분포하고 있다.

1934년에 조선총독부가 간행한 『조선의 성[朝鮮の姓]』에는 전국의 지역별 성씨의 종류와 가구 수, 집성촌의 분포를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서 당시 김해군에는 2만 2983가구, 108개의 성씨가 분포한 것으로 집계되어 있다. 이 가운데 배씨는 716가구로 김[5,921], 이(李)[2,363], 박(朴)[2,132], 최(崔)[1,036], 정(鄭)[821]에 이어 여섯 번째로 가구 수가 많았다. 한편 이 통계에서는 김해의 집성촌도 조사되었는데, 분성 배씨는 명지면 진목리에 15호 규모의 집성촌을 형성하고 있었다.

2000년 통계청이 조사한 성씨 본관별 가구 및 인구 통계에 따르면, 당시 김해시 인구는 9만 8985가구에 33만 829명이었고, 여기에 225개의 성과 2,724개의 본관 성씨가 있었다. 이 가운데 100가구 이상 거주하는 성씨는 김해 김씨(金海 金氏) 등 128개 성씨가 있었다. 이 통계에서 분성 배씨는 1,031가구에 3,315명으로 집계되어 있으며, 이는 김해 전체 인구의 1% 정도로 성씨별 인구수로는 18위이다.

2015년 통계청의 ‘인구 주택 총조사’에서는 가구 수는 없고 본관 성씨별 인구수만 조사하여 기록하고 있는데, 당시 김해시 인구는 51만 2517명, 성씨는 143개, 본관은 820여 개로 집계되었다. 이 중 100가구로 추산되는 340명 이상의 인구를 가진 성씨는 김해 김씨를 비롯하여 169개 성씨 정도가 확인되었다. 이 가운데 분성 배씨는 4,608명으로, 김해 전체 인구의 0.9%이고, 순위는 25위이다. 2000년도에 비해 1,300명 가까이 증가하였지만 김해 김씨 등 타 성씨에 비해서는 저조한 편이다. 이는 기존에 분성 배씨가 집성촌을 형성하였던 곳들이 부산광역시로 편입된 영향이 큰데, 지금의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락동의 송산마을과 죽동마을, 죽림마을, 강서구 녹산동의 산양마을과 생곡마을, 지사마을, 탑동마을 등 7곳에 분성 배씨 집성촌이 있었다.

[관련 유적]

김해시 화목동에 문중 재실인 김해칠산재강당(金海七山齋講堂)[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배씨의 전체 시조인 배지타와 중시조 배현경, 분성 배씨 시조 배원룡을 봉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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