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허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599
한자 金海 許氏
영어공식명칭 Gimhae Heossi|Gimhae Heo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광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본관 김해 허씨 본관 - 경상남도 김해시
세거|집성지 김해 허씨 집성지 - 경상남도 김해시 안동 지도보기
세거|집성지 김해 허씨 집성지 - 경상남도 김해시 수가동 지도보기
세거|집성지 김해 허씨 집성지 - 경상남도 김해시 한림면 신천리 망천마을지도보기
성씨 시조 허염

[정의]

허염을 시조로 하는 경상남도 김해시의 세거 성씨.

[개설]

김해 허씨(金海 許氏)는 김해를 본관으로 하는 토성(土姓)이다. 가락국 수로왕(首露王)의 비인 허황옥(許黃玉)[허황후(許皇后)]의 35세손 허염(許琰)을 시조로 하여 가계를 이었는데, 허염의 5세손 허유전(許有全)이 정승을 역임하는 등 고려 후기에 가세가 번성하였다.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1425]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의 김해도호부(金海都護府) 성씨조에서 지역의 토성으로 김(金)·허(許)·배(裵)·손(孫)·송(宋)·유(庾) 등 6개의 성씨를 소개한 이래, 이들 성씨는 조선 후기에 이르기까지 김해 지역의 대표적인 성씨로 자리 잡았다. 토성층은 형성 시기부터 지속적으로 분화했는데, 이는 토성 내에서 사족(士族)과 이족(吏族)으로 나누어지거나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족이 되어 벼슬살이를 한 경우는 근기 지역을 새로운 세거지로 삼게 된다.

김해의 토성인 김해 허씨도 끊임없이 분화하면서 일부 가계는 김해를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고 있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단계에서는 인근의 창원, 울산, 기장 지역에 김해 허씨가 세거한 것으로 나타나고, 『여지도서(輿地圖書)』 단계에서는 경상도의 진주와 하동, 강원도 고성, 평안도 창성 지역에서 김해 허씨가 세거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후에도 이동은 계속되어 경상도 김천·고령·성주, 충청도 진천, 경기도 용인 지역 등에도 김해 허씨가 분포하였다. 김해 허씨의 분파로는 가락군파(駕洛君派) 등 7개의 지파가 있다.

[연원]

허염은 가락국 수로왕 비인 허황후의 35세손으로 전한다. 『김해허씨족보(金海許氏族譜)』의 세계도에 따르면, 허염 이후 가계는 허군언(許群彦)[이부시랑]-허자(許資)[병부상서]-허송죽(許松竹)[병부시랑]·허연(許延)[밀직사]·허징(許澄)으로 이어진다. 허자의 큰아들 허송죽의 가계는 허각보(許恪保)-허대현(許大賢)-허응린(許應麟)-허추충(許推忠)으로 계승되었다. 허자의 둘째 아들 허연은 허인전(許仁全)[가락군(駕洛君)]·허소구(許小丘)·허천기(許天器)·허유전(許有全)[정승] 네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허인전의 가계는 허의(許毅)-허옹(許邕)으로 이어지고, 허유전의 아들은 허영(許榮)·허화(許華)·허창(許敞) 등 셋이다. 허자의 제3남 허징의 아들은 허평(許枰)과 허상(許相)이고, 허평의 아들은 허증(許增), 손자는 허언룡(許彦龍)이다.

그런데 17세기 중반 조종운(趙從耘)이 편찬한 『씨족원류(氏族源流)』의 김해 허씨 세계도에서는 허유전의 아버지가 허창(許敞)[가락부원군], 할아버지가 허연(許延)[밀직사사]으로 되어 있어 『김해허씨족보』와 차이를 보이고 있다. 허유전의 자녀에 대해서도 아들은 허영과 허귀년(許龜年)[밀직부사] 둘이고 딸은 청주 곽씨 곽지태(郭之泰)와 혼인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후 김해 허씨는 지속적으로 분화하여 7개의 지파를 형성하였다. 가락군 인전파(駕洛君 仁全派), 호은공 기파(湖隱公 麒派), 중승공 린파(中承公 麟派), 전직공 인부파(典直公 仁副派), 증성군 귀년파(甑城君 龜年派), 판서공 언룡파(判書公 彦龍派), 상서공 상파(尙書公 相派) 등이 그것이다.

한편 김해 향안(金海 鄕案)에는 1595년(선조 28) 11월에 입록(入錄)한 허경윤(許景胤)[1573~1646]을 비롯하여 김해 허씨 출신이 37명 정도 올라 있다. 허경윤김해 허씨 판서공파 중시조 허언룡의 증손자인데, 허경윤의 후손들 중에는 계속 김해에 남아 있는 가계가 있는가 하면, 선산·밀양 등 다른 지역에 삶의 터전을 마련한 가계도 있었다.

[현황]

1904년(고종 41)에 간행된 『경상남도 김해군 가호안(慶尙南道 金海郡 家戶案)』에는 김해군 13개 면에 4,789호의 가구가 있으며, 이들 성씨는 모두 83개이다. 이 중 허씨가 가구주인 가호는 모두 132호로 진례면 시례리 등 11개 면 43개 리에 분포하는데, 대체로 1개 리에 1~2호 정도 자리 잡고 있었다. 그중에 활천면의 어방리[6]와 마마리[6], 청석리[5], 생림면 신곡동[4], 하북면 소업동[3] 정도가 많이 분포한 곳이다.

1929년에 간행된 『김해읍지(金海邑誌)』 성씨조에서는 당시 김해 지역에 거주하는 성씨를 면리별로 조사하여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서 김해 허씨는 김해면 남역리(南驛里)와 장유면 덕정리(德亭里) 두 곳에 거주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 『경상남도 김해군 가호안』에서 여러 곳에 분포한 것과 비교하면 큰 차이를 보이는데, 『김해읍지』[1929]에 나온 두 곳은 집성촌일 가능성이 높다.

1934년 조선총독부가 간행한 『조선의 성[朝鮮の姓]』에는 전국의 지역별 성씨의 종류와 가구 수, 집성촌의 분포를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서 당시 김해군에는 2만 2983가구, 108개의 성씨가 분포한 것으로 집계되어 있다. 이 가운데 김해 김씨(金海 金氏)를 비롯하여 30개 성씨가 집성촌을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는데, 김해 허씨는 김해읍 남역리 한 곳에 19호 규모의 집성촌을 형성하고 있었다.

2000년 통계청의 성씨 본관별 가구 및 인구 통계에 따르면, 당시 김해시 인구는 9만 8985가구에 33만 829명이었고, 여기에 225개의 성과 2,724개의 본관 성씨가 있었다. 이 가운데 100가구 이상 거주하는 성씨의 종류는 김해 김씨 등 128개 성씨였다. 이 통계에서 김해 허씨는 966가구에 3,124명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분포 비율에서 19위를 차지하였다.

2015년 통계청의 ‘인구 주택 총조사’에서는 가구 수는 없고 본관 성씨별 인구수만 조사하여 기록하고 있는데, 당시 김해시 인구는 51만 2517명이며, 성씨는 143개, 본관은 820여 개로 집계되었다. 이 중 100가구로 추산되는 340명 이상의 인구를 가진 성씨는 김해 김씨를 비롯하여 169개의 성씨가 확인되었다. 이 통계에서 김해 허씨는 4,307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는데, 2000년 통계에 비해 1,000명 가까이 증가하였지만, 분포 비율에서는 29위로 내려갔다.

2023년 기준 김해 허씨는 김해시의 안동수가동, 한림면 신천리 망천마을 등 세 곳에 집성촌을 형성하고 있다.

[관련 유적]

가락국의 시조인 수로왕의 능[김해 수로왕릉(金海 首露王陵)]과 허황옥의 능인 김해 수로왕비릉(金海 首露王妃陵)이 있다. 숭선전(崇善殿)은 김해시 왕릉길 26[서상동 312]에 있는 전각으로 우리나라 팔전(八殿)의 하나로 꼽히며, 수로왕허황옥의 신위를 봉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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