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6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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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許埰 |
영어공식명칭 | Heo Chae |
이칭/별칭 | 경무(景懋),금주(錦洲)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박상현 |
[정의]
개항기 경상남도 김해 출신의 학자.
[가계]
허채(許埰)[1859~1935]는 1859년 지금의 경상남도 김해시 회현동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김해이다. 자는 경무(景懋)이고, 호는 금주(錦洲)이다. 아버지는 허욱(許燠)이며, 아들로 허척(許鉐)과 허연(許鉛)을 두었다.
[활동 사항]
허채는 허전(許傳)[1797~1886]과 이종기(李種杞)[1837~1902] 문하에서 수학한 성리학자이다. 1890년(고종 27) 김해에서 밀양으로 이주하였다. 1891년(고종 28) 진사에 급제한 후 주산서당(珠山書堂)을 지어 후학 양성과 성리학 탐구에 힘썼다. 1903년(고종 40)에 허훈(許薰)[1836~1907] 등과 『성재선생속집』을 간행하였으며, 1916년에는 노상직(盧相稷)[1855~1931], 이병희(李炳熹)[1859~1938] 등과 『성호선생문집』을 간행하였다.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에 허채가 김해에서 이거하면서 지은 옛집이 남아 있다.
[학문과 저술]
허채의 저술로 『대산서절요(大山書節要)』, 『독례촬요(讀禮撮要)』, 『퇴계서절요요선(退溪書節要要選)』과 시문집인 『금주집』이 있다. 시문집에서 주목할 작품으로는 이(理)와 기(氣)를 줄 세우는 것은 잘못이라고 변론한 「이기선후유무변(理氣先後有無辨)」, 주자의 백록동학규(白鹿洞學規)를 본떠 성현의 말씀 가운데 학문과 행실을 닦는 데 도움 될 문장들을 엮어 학칙으로 정한 「주산서당학칙」 등이 있다.
[묘소]
허채의 무덤은 경상남도 밀양시 산내면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