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6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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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宋世卓 |
영어공식명칭 | Song Setak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인덕 |
출생 시기/일시 | 1884년 11월 30일 - 송세탁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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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2일 - 송세탁 김해장터 만세 시위 주도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5월 30일 - 송세탁 대구복심법원 징역 8개월 선고 |
몰년 시기/일시 | 1939년 12월 19일 - 송세탁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07년 - 송세탁 대통령표창 추서 |
출생지 | 경상남도 김해시 진례면 담안리 |
활동지 | 김해장터 - 경상남도 김해시 구지로180번길 31-4[동상동 910]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김해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송세탁(宋世卓)[1884~1939]은 1884년 11월 30일 지금의 경상남도 김해시 진례면 담안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2일에 있었던 김해장터 만세 시위의 주도자 중 한 사람이다. 3월 30일 밤의 김해 읍내 제1차 만세 시위를 계기로, 송세탁은 송상진, 최계우, 조병중, 김석암, 허병, 최덕관, 박덕수 등과 거사를 모의하였다. 거사일은 4월 2일로, 장소는 김해장터로 정하였다. 3월 31일 날이 밝자 허병은 가락면 대사리[현 부산광역시 강서구 강동동] 집에서 나무 판에 태극기를 새기고, 무명천과 물감을 이용하여 수십 장의 태극기를 만들었다. 주도자들은 의용대를 조직하고, 시위 전날 밤 읍내 곳곳에 격문을 붙였다.
4월 2일이 되자, 송세탁 등의 주도자들은 사람이 가장 많은 오후 4시경에 장터로 나갔다. 최계우가 허병이 만든 태극기를 군중에게 나누어주고, 송세탁·최계우·조병중·최덕관·김석암·박덕수·송상진 등은 군중 앞에서 크게 대한 독립 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주도하였다. 이에 장꾼들이 열렬하게 호응하여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 만세를 소리 높이 외쳤다. 일본 헌병이 출동하였고, 시위에 앞장섰던 송세탁은 헌병과 맞부딪혔다. 헌병과 몸싸움 끝에 송세탁은 머리에 총검 자상을 입고 체포되었다.
송세탁은 재판에 회부되어 1919년 5월 3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징역 5월에 집행 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검사가 공소를 제기하였고, 1919년 5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이 인정되어 징역 8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형 선고 이후 부산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으며, 1939년 12월 19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송세탁은 200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