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940
한자 書院
분야 종교/유교,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현진

[정의]

조선 후기 유학 진흥을 목적으로 사림에 의해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 설립된 사설 교육 기관.

[개설]

조선 후기 이후 번성한 서원은 지방의 유일한 공교육 기관인 향교를 쇠퇴시켰다. 한국 서원의 효시는 1543년 풍기군수 주세붕이 안향의 배향과 유생 교육을 위해 세운 백운동서원이다. 이후 서원은 퇴계 이황의 노력으로 체계를 갖추고 확산될 수 있었다. 이황은 백운동서원 사액과 재정 지원을 요청하고, 예안의 역동서원을 비롯한 10여 곳의 서원 건립에 참여하거나 서원기(書院記)를 지어주었다. 강당과 사우의 서원 체계를 정식화하였고, 원규(院規)를 제정하여 운영 방안을 규정하였다. 그러나 1592년 임진왜란과 1636년 병자호란 이후 서원은 당쟁의 근거지가 되었고, 군역을 회피하는 등의 많은 폐단을 낳았다. 결국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전국 670개 서원 중 사액서원 47개만 남게 되었다.

[김해 지역의 서원]

김해 지역의 서원으로는 신산서원(新山書院)[1609년], 송담서원(松潭書院)[1708년], 예암서원(禮巖書院)[1709년], 미양서원(微陽書院)[1803년], 구천서원(龜川書院)[1822년], 월봉서원(月峰書院)[1984년]이 있다. 신산서원은 조선 후기 유학자 남명 조식을 비롯해 송계(松溪) 신계성(申季誠)을 배향하고 있다. 송담서원임진왜란김해읍성에서 순절한 송빈(宋賓), 이대형(李大亨), 김득기(金得器), 류식(柳湜) 등 사충신(四忠臣)을 배향하고 있다. 예암서원은 조선 후기 유현 조이추(曺爾樞)를 배향하고 있으며, 미양서원은 단종 폐위 때 의리를 지킨 김계금(金係錦)을 배향하고 있다. 구천서원은 임진왜란수로왕릉이 도굴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김해로 달려와 왕릉을 복구한 허경윤(許景胤)을 배향하고 있다. 월봉서원은 영남 기호학파의 맥을 이은 월헌(月軒) 이보림(李普林)을 배향하고 있다.

김해 지역의 서원은 대개 17세기부터 창건되었고, 배향 인물은 대체로 학덕을 갖춘 유현이나 충신을 배향하고 있다.

김해 지역 서원 건축물은 대체로 선현을 제사하는 사당, 교육을 하는 강당, 원생의 숙식 공간인 동재(東齋)·서재(西齋)가 중심이고, 그 외 책을 보관하는 서고, 제사 물품을 보관하는 제기고(祭器庫), 서원 관리와 식사를 준비하는 고사(庫舍), 시문 창작이나 휴식을 위한 누정 등이 있는 경우도 있다. 제향 공간과 강학 공간을 구분하는 내삼문, 서원 입구의 외삼문도 있다.

김해 지역 서원의 교육 내용은 사서오경, 『소학』, 『가례』, 사서(史書), 제자서(諸子書) 등 성리학과 도학을 비롯해 문장을 위한 사장학(詞章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원의 자체 임원 조직으로는 원장(院長), 강장(講長), 훈장(訓長), 재장(齋長), 집강(執綱), 도유사(都有司), 부유사(副有司), 장의(掌議), 색장(色掌), 간사 역할의 직월(直月), 서기 역할의 직일(直日) 등이 있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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