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9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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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海聖堂 |
영어공식명칭 | Gimhae Catholic church |
이칭/별칭 | 천주교 김해 교회,김해천주교회 |
분야 | 종교/기독교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호계로 482[동상동 727-5]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한건 |
설립 시기/일시 | 1957년 10월 29일 - 김해성당 설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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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0년 - 장유성당 분가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5년 - 활천성당 분가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01년 - 임호성당 분가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04년 - 삼계성당 분가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11년 - 연지성당 분가 |
최초 설립지 | 김해성당 - 경상남도 김해군 김해읍 동상구 2구 727 |
현 소재지 | 김해성당 - 경상남도 김해시 호계로 482[동상동 727-5] |
성격 | 성당 |
설립자 | 김태호[알로이시오] 신부 |
전화 | 055-334-3264 |
홈페이지 | gimhae.catb.kr |
[정의]
경상남도 김해시 동상동에 있는 부산교구 소속 천주교회.
[개설]
김해성당은 1957년 10월 29일 부산교구 소속으로 설립되었다.
[설립 목적]
6·25전쟁으로 부산 지역과 인접한 김해 지역에도 피난민이 유입되면서 신자가 급증하였다. 본당 설립이 요청되면서 기존의 삼방공소를 김해본당으로 승격하여 주변의 신자들을 통합시킬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변천]
김해성당의 초대 주임으로 김태호[알로이시오] 신부가 임명되었다. 1959년 9월 사라호 태풍으로 성당이 파괴되었지만 같은 해 12월 24일에 복구 공사를 완료하여 다시 성당의 터전이 갖추어졌다. 이로써 김해읍을 중심으로 낙동강 하구에 본격적인 복음화가 이루지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1962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열린 이후, 김해본당에서도 공의회 정신인 ‘적응과 쇄신’을 구현하고 노력하였다. 안으로는 신자들을 위한 한림공소의 증축과 신용조합을 설립하고, 밖으로는 지역민을 위한 청곡저수지 설립을 위한 근로 사업장을 마련하였다. 1960년 후반부터 10여 년간 잦은 주님 신부의 이동으로 인해 본당 사목은 불안하였다.
1980년 김윤근[베드로] 신부가 부임하여 신자들과 협력하며 새로운 성전·강당·수녀원을 건립하였다. 이와 더불어 신자 수의 증가로 본당 분할이 요구되어져 1990년 장유성당, 1995년 활천성당, 2001년 임호성당, 2004년 삼계성당, 2011년 연지성당을 각각 분가시켰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김해성당의 미사는 일요일에는 오전 6시 30분, 10시 30분, 그리고 오후 3시 영어미사가 있다. 평일에는 월요일 오전 6시 30분, 화요일 오후 7시 30분, 수요일 오전 10시, 목요일 오후 7시 30분, 금요일 오전 10시에 있다. 토요일은 미사가, 오후 6시 30분에 초·중·고등학생을 위한 미사가 있다.
연 2회 정도 세례식을 하고 있지만, 약 20명 정도의 새로운 신자가 세례를 받는다. 주변에 많은 성당을 분가시키면서 교세는 축소되었지만 김해 지역의 모 본당으로 자부심을 가지고 복음화에 노력하고 있다. 부산교구의 사목 지침을 잘 실천하며, 신심 단체를 통한 신자들의 신앙 증진에 힘쓰고 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김해 지역의 외국인 근로자와 가난한 이들을 위해 무료급식소를 운영했지만 폐쇄하였다. 2023년 현재는 외국인 근로자 중 천주교 신자들이 미사를 거행하고 모임을 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고 있다.
[현황]
2023년 현재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를 중심으로 안나회·성모회·연도회·성령기도회·청년회 등 많은 단체들이 있다. 교역자로는 주임 신부 1명, 수도자 2명, 사무장 등이 있다. 교우 수는 3,355명이며, 본당의 수호성인은 성모의 원죄 없으신 잉태이다. 성당의 대지 면적은 1,370㎡이며, 주요 건물은 성당·사제관·수녀원·사무실로 이루어져 있다.
[의의와 평가]
김해성당은 6·25전쟁 이후 김해읍에 설립된 최초의 성당으로 모 본당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다. 그러나 김해성당 관할 지역인 김해 구도심의 도시 개발사업 부진과 주택·도로 시설 노후화로 기존 인구가 유출되었고, 많은 본당이 분가되면서 신자 수가 급격하게 줄었다. 아직 예전의 모 본당만큼 교세를 회복하지는 못하지만 도시 정비 계획에 따라 주변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새롭게 도약할 준비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