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1281
한자 首露王神話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시대 고대/삼국 시대/가야
집필자 한양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281년 - 「수로왕신화」 『삼국유사』에 수록
관련 지명 구지봉 - 경상남도 김해시 구산동 지도보기
성격 신화
주요 등장 인물 구간|백성|수로왕
모티프 유형 천신하강|난생 모티프

[정의]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서 수로왕의 탄생과 금관가야 건국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채록/수집 상황]

『삼국유사(三國遺事)』 권 제2 기이(紀異) 「가락국기(駕洛國記)」수로왕의 탄생과 육가야의 성립을 담은 「수로왕신화」가 실려 있다.

[내용]

개벽 이후로 이곳에는 아직 나라의 이름이 없었고 또한 군신(君臣)의 칭호도 없었다. 이때에 아도간(我刀干)·여도간(汝刀干)·피도간(彼刀干)·오도간(五刀干)·유수간(留水干)·유천간(留天干)·신천간(神天干)·오천간(五天干)·신귀간(神鬼干) 등 아홉 간(干)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이는 추장(酋長)으로 백성들을 통솔했으니 모두 100호, 7만 5000명이었다. 대부분은 산과 들에 스스로 모여서 우물을 파서 물을 마시고 밭을 갈아 곡식을 먹었다.

후한(後漢)의 세조(世祖) 광무제(光武帝) 건무(建武) 18년 임인 3월 계욕일(稧浴日)에 살고 있는 북쪽 구지(龜旨)에서 이상한 소리가 부르는 것이 있었다. 백성 2, 3백 명이 여기에 모였는데 사람의 소리 같기는 하지만 그 모습을 숨기고 소리만 내서 말하였다. “여기에 사람이 있느냐.” 아홉 간(干) 등이 말하였다. “우리들이 있습니다.” 또 말하였다.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구지입니다.” 또 말하였다. “황천(皇天)이 나에게 명하기를 이곳에 가서 나라를 새로 세우고 임금이 되라고 하여 이런 이유로 여기에 내려왔으니, 너희들은 모름지기 산봉우리 꼭대기의 흙을 파면서 노래를 부르기를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밀어라. 만일 내밀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라고 하고, 뛰면서 춤을 추어라. 그러면 곧 대왕을 맞이하여 기뻐 뛰게 될 것이다.”

구간들은 이 말을 따라 모두 기뻐하면서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러러 쳐다보니 다만 자줏빛 줄이 하늘에서 드리워져서 땅에 닿았다. 그 줄이 내려온 곳을 따라가 붉은 보자기에 싸인 금합(金合)을 발견하고 열어 보니 해처럼 둥근 황금알 여섯 개가 있었다. 여러 사람들은 모두 놀라고 기뻐하여 함께 백 번 절하고 얼마 있다가 다시 싸서 안고 아도간(我刀干)의 집으로 돌아와 책상 위에 놓아두고 그 무리들은 각기 흩어졌다.

12시간이 지나 그 이튿날 아침에 무리들이 다시 서로 모여서 그 상자를 열어 보니 여섯 알은 화해서 어린아이가 되어 있었는데 용모가 매우 훤칠하였다. 이에 이들을 평상 위에 앉히고 여러 사람들이 절하고 하례(賀禮)하면서 극진히 공경하였다. [이들은] 나날이 자라 10여 일이 지나자 신장(身長)은 아홉 자나 되었으니 은(殷)의 천을(天乙)과 같고, 얼굴은 용처럼 생겼으니 한(漢)의 고조(高祖)와 같고, 눈썹에는 팔채(八彩)가 있으니 당(唐)의 요(堯)와 같고, 눈동자가 겹으로 되어 있으니 우(虞)의 순(舜)과 같았다. 그달 보름에 왕위에 올랐다. 세상에 처음 나타났다고 해서 이름을 수로(首露)라고 하였다. 혹은 수릉(首陵)이라고도 한다.

나라 이름을 대가락(大駕洛)이라 하고 또한 가야국(伽耶國)이라고도 하니 곧 여섯 가야(伽耶) 중의 하나이다. 나머지 다섯 사람도 각각 가서 다섯 가야의 임금이 되니 동쪽은 황산강(黃山江), 서남쪽은 창해(滄海), 서북쪽은 지리산(地理山), 동북쪽은 가야산(伽耶山)이며 남쪽은 나라의 끝이었다. 그는 임시로 대궐을 세우게 하고 거처하면서 다만 질박하고 검소하니 지붕에 이은 이엉을 자르지 않고, 흙으로 쌓은 계단은 3척이었다. 즉위 2년 계묘 정월(43년)에 왕이 말하기를, “내가 서울을 정하려 한다”라고 하고 이내 임시 궁궐의 남쪽 신답평(新畓坪)에 나가 사방의 산악을 바라보고 좌우 사람을 돌아보고 말하였다.

“이 땅은 협소하기가 여뀌 잎과 같지만 수려하고 기이하여 16나한이 살 만한 곳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1에서 3을 이루고 3에서 7을 이루니 7성(聖)이 살 곳은 여기가 가장 적합하다. 이곳에 의탁하여 강토(疆土)를 개척해서 마침내 좋은 곳을 만드는 것이 어떻겠느냐.” 이곳에 1,500보 둘레의 성과 궁궐과 전우(殿宇) 및 여러 관청의 청사(廳舍)와 무기고와 곡식 창고의 터를 만들어 두었다. 일을 마치고 궁으로 돌아와 두루 나라 안의 장정, 인부, 공장(工匠)들을 불러 모아서 그달 20일에 성 쌓는 일을 시작하여 3월 10일에 공사를 끝냈다. 그 궁궐과 옥사(屋舍)는 농사일에 바쁘지 않은 때를 기다려 이용하니 그해 10월에 비로소 시작해서 갑진 2월(44년)에 완성되었다. 좋은 날을 가려서 새 궁으로 거동하여 모든 정사를 다스리고 여러 일도 부지런히 보살폈다.

[모티프 분석]

수로왕의 탄생과 육가야의 성립에 대한 기록은 『가락국기』에 실려 있는데, 『가락국기』는 고려 문종조 태강 연간[1075~1084]에 금관지주사인 문인(文人)이 지은 가락국(駕洛國)의 사기이다. 간략하게 하자면 국가가 성립하기 전 아홉 구간이 촌장으로 있었을 때 수로왕은 황천의 명으로 왕이 되어 나라를 세우고자 하였고, 백성들이 「구지가(龜旨歌)」를 부르고 춤을 추니 하늘에서 금합이 내려와 열어 보니 황금알 여섯 개가 있어 6가야를 만들어졌다. 『삼국유사』 오가야조에서는 금관가야라고 하였으며, 『삼국사기』에서는 금관국이라고 하였다.

사료에서 구간을 추장이라고 표기한 것처럼 가락구촌에 지도자들이 존재하였으나 왕권 국가가 아니었다. 강력한 힘을 가진 왕권 국가의 출현은 구지봉에서 「구지가」를 부르는 구간과 백성들의 지지를 얻어 성립할 수 있었다. 왕권의 신성함은 하늘에서 내린 자줏빛 줄, 금합, 황금알 등으로 표상된다. 하늘에서 내린 상징물들은 천신의 권능이 땅으로 이어짐을 보여 준다. 알에서 깬 여섯 아이들의 신이한 자람과 출중한 외모에 묘사는 왕의 권능이 중국의 이름난 왕에 못지 않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구지가」는 신화 시대 김수로왕의 인식적 탄생을 담은 영웅 신화이며, 수로왕의 인식적 탄생 과정인 입사제의에서 불려진 축원을 담은 노래라고 볼 수 있다. 김해를 중심으로 한 금관가야의 신화는 수로왕의 출현으로 김해의 문화와 역사가 깊고 오래되었음을 알려 주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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