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13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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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涵虛亭講會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영숙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797년 - 허전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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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886년 - 허전 사망 |
성격 | 한시 |
작가 | 허전 |
[정의]
경상남도 김해의 함허정에서 조선 후기 학자 허전이 강회를 하며 읊은 한시.
[개설]
함허정(涵虛亭)은 연자루(鷰子樓)의 북쪽에 있으며 김해부사 최윤신(崔潤身)이 건축한 것이다. ‘호계(虎溪) 물을 끌어들여 연못을 만들고 그 복판에다 정자를 지었는데 매우 조촐하고 시원하다’라고 하였다. 최윤신이 좌의정 어세겸(魚世謙)[1430~1500]에게 이름을 청했더니, ‘함허’라고 지었다. 정자 이름인 ‘함(涵)’은 ‘잠긴다’는 뜻이고, ‘허(虛)’는 ‘비었다’는 뜻이니, ‘비어 있으므로 모든 것을 잠기게 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는 말이다. 조선조 초기의 김일손(金馹孫)[1464~1498]은 함허정을 처음 지었을 때의 기록인 「함허정기(涵虛亭記)」를 남겼다. 함허정은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무너졌던 것이 1801년 김해부사 심능필(沈能弼)에 의해 ‘하월헌’으로 거듭났으나, 다시 퇴락하는 등 여러 변화를 겪었다. 1800년대 『김해읍지』에 따르면, ‘하월헌’은 고을의 수령이 선비를 기르던 ‘양사재(養士齋)’로 소개되어 있는데, 1800년 초에 성내의 함허정 옛터에 세웠다고 되어 있다.
성재 허전(許傳)[1797~1886]은 성호(星湖) 이익(李瀷)[1681~1763]-순암(順菴) 안정복(安鼎福)[1712~1791]-하려(下廬) 황덕길(黃德吉)[1750~1827]로 이어지는 근기(近畿) 남인계(南人系)의 학맥을 이은 인물로 김해도호부사로 재임한 1864년 3월부터 1867년 7월까지 3년여 동안 지역 인재를 양성하여 강우(江右) 지역의 학풍을 크게 진작시켰다. 「함허정강회(涵虛亭講會)」는 허전이 지은 7언 절구로 그의 시문집인 『성재집(性齋集)』에 전한다.
[내용]
「함허정 강회에서(涵虛亭講會)」
허정부재소당심(虛亭浮在小塘心)[작은 연못 가운데 함허정 떠 있으니]
성리환여동리심(城裏還如洞裏深)[성안이 도리어 마을 안처럼 깊네]
차회일생난재득(此會一生難再得)[이 강회 일생에 다시 갖기 어려운데]
추양염염하서림(秋陽冉冉下西林)[가을빛 은은하게 서림에 내려 앉네]
기구와 승구를 통하여 지금은 전하지 않는 함허정의 모습이 어떠하였는지 유추할 수 있다. 시제(詩題)와 전구(轉句)의 묘사를 통하여 함허정이 당시 유림 강론의 장으로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 결구에서 가을빛에 젖어드는 함허정의 전경을 은은하게 묘사하여 공간의 의미와 정경(情景)을 함께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
[의의와 평가]
「함허정강회」는 김해도호부사로 부임하여 김해 지역뿐 아니라 경상우도 지역에 근기 남인계의 학문을 전승한 성재 허전이 지금은 현존하지 않는 함허정에서 강회를 하며 지은 시라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