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13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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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就正齋 |
이칭/별칭 | 김해 취정재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구지로 161[대성동 249]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안순형 |
건립 시기/일시 | 1927년 - 취정재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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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취정재 - 경상남도 김해시 구지로 161[대성동 249] |
원소재지 | 취정재 - 경상남도 김해시 구지로 161[대성동 249] |
성격 | 재실 |
양식 | 맞배지붕 목조 기와[영당] |
정면 칸수 | 3칸[영당]|3칸[장판각] |
측면 칸수 | 2칸[영당]|1칸[장판각] |
[정의]
경상남도 김해시 대성동에 있는 일제 강점기 재실.
[개설]
취정재(就正齋)는 김해도호부사를 지낸 조선 후기 문신 성재(性齋) 허전(許傳)[1797~1886]을 기리기 위해 지역 후학들이 건립한 재실이다. 허전은 1864년(고종 1)~1866년(고종 3) 김해도호부사를 지내며 지역민을 교화하고 선비들을 지도하였다. 1864년 문도들이 취정회를 결성하여 허전과 함께 학문을 연마하였다. 1866년(고종 3) 2월 허전은 신산서원(新山書院)의 학장이 되어 강우 지역에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학풍이 발전할 수 있게 하였으며, 1878년(고종 15)에는 수로왕(首露王)의 사당인 숭선전(崇善殿)이 사액을 받을 수 있도록 상소하였다. 허전이 사망한 후 문도들은 문집 간행과 추모 제향을 주도하였다.
[위치]
취정재는 김해시 대성동 249번지에 있다. 바로 뒤편에는 김해향교(金海鄕校)와 유림 회관이 있다.
[변천]
1926년 김해 취정계의 소눌 노상직(盧相稷)과 허택(許澤), 노상욱(盧相旭) 등이 김해향교 앞쪽 양사재의 건물을 보수하여 1927년 허전을 위한 영당과 취정재를 건립하였다. 노상직이 「영당상량문(影堂上樑文)」 등을, 안언호(安彦浩) 등이 「영정각기(影幀閣記)」를 지었다. 같은 해 9월 산청 이택당(麗澤堂)에 모셔져 있던 허전의 영정을 모사해 왔다. 1928년 2월 채례(采禮)를 봉행하였다.
[형태]
재실과 장판각, 관리동, 정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취정재 입구에 정면 3칸 규모의 맞배지붕 문이 있고, 내부의 좌우에는 정면 4칸 규모의 관리동이 있다. 2단 축대 위의 삼문에 들어서면 ‘금릉영각(金陵影閣)’ 현판을 단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영당이 있다. 영당은 맞배지붕의 목조 기와 건물이며, 영당 왼쪽에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장판각이 있다.
[현황]
취정재에서는 매년 허전 영정을 모시고 향사를 받들고 있다. 취정재에는 허전의 위패와 「허전 초상(許傳 肖像)」[보물]의 복사본[가로 140㎝, 세로 80㎝]이 봉안되어 있다. 또 장판각에는 허전의 문집 중 일부인 허전 철명편 목판(許傳 哲命篇 木板)[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이 보관되어 있다. 책판은 1890년(고종 27)경에 판각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총 57매이고, 크기는 가로가 30.3㎝, 세로가 19.2㎝이다.
[의의와 평가]
취정재는 김해 지역 지식인들이 소통하고 역량을 결집하는 장소였을 뿐만 아니라, 유학의 전통과 문화를 계승·발전시키는 공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