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1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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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成洞 |
영어공식명칭 | Daeseong-dong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대성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송경진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4월 1일 - 경상남도 김해군 우부면 답곡리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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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시기/일시 | 1918년 7월 1일 - 경상남도 김해군 우부면 답곡리에서 경상남도 김해군 김해면 답곡리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31년 11월 1일 - 경상남도 김해군 김해면 답곡리에서 경상남도 김해군 김해읍 대성리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41년 - 경상남도 김해군 김해읍 대성리에서 경상남도 김해군 김해읍 대성정으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47년 6월 - 경상남도 김해군 김해읍 대성정에서 경상남도 김해군 김해읍 대성리로 개편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79년 5월 1일 - 경상남도 김해군 김해읍 구산리, 대성리, 삼계리를 관할하는 김해읍 북부출장소 설치 |
변천 시기/일시 | 1981년 7월 1일 - 경상남도 김해군 김해읍 대성리에서 경상남도 김해시 대성동으로 개편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81년 7월 1일 - 경상남도 김해군 김해읍 북부출장소에서 경상남도 김해시 북부동[행정동]으로 승격 |
성격 | 법정동 |
면적 | 0.56㎢ |
가구수 | 2,343가구 |
인구[남/여] | 4,072명[남 2,148명/여 1,924명] |
[정의]
경상남도 김해시에 속하는 법정동.
[개설]
대성동은 김해시의 중앙 남쪽에 자리한 지역으로, 대성동 조개더미[삼한~삼국 시대 패총 유적] 등 많은 유적지가 있다. 행정동은 북부동이다.
[명칭 유래]
김해향교(金海鄕校)의 대성전이 있는 마을이라 대성동이라고 하였다.
[형성 및 변천]
대성동은 고려 시대 백운대(白雲臺) 옆에 금강사(金崗寺)라는 절이 있어 대사리(大寺里)라고 불렸던 곳이다. 1770년(영조 46) 김해향교(金海鄕校)가 옮겨 오면서 향교 인근은 교동(校洞)이라 하고, 해반천 동쪽 일대는 논이 많다 하여 답곡(畓谷)이라 하였다. 1906년 김해군의 23면 중 하나인 우부면에 속하였다. 1914년 4월 1일 행정 구역 개편 때 우부면에 칠산면을 병합하여 김해군의 14개 법정면 중 하나인 우부면으로 하고, 답곡리에 북외리(北外里)와 삼산리(三山里)의 일부를 합하여 우부면의 법정리인 답곡리로 하였다. 1918년 7월 1일 우부면과 좌부면을 합하여 김해면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931년 11월 1일 김해면이 김해읍으로 승격할 당시 답곡리에서 대성리로 이름을 바꾸었다. 1941년 대성리를 대성정으로 바꾸었다가 1947년 6월 다시 대성리로 고쳤다. 1979년 5월 1일 김해읍의 대성리와 삼계리, 구산리를 관할하기 위하여 김해읍 북부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81년 7월 1일 김해읍이 김해시로 승격하면서 김해군에서 분리되어 김해시 대성동이 되었다. 이때 김해시의 대성동과 삼계동, 구산동을 관할하기 위하여 김해읍 북부출장소를 북부동[행정동]으로 개편하였다. 1995년 5월 10일 김해군과 김해시가 통합하였다.
[자연환경]
대성동은 북서쪽으로 분성산 자락을 끼고 있으나 지역의 대부분이 평지를 이룬다. 대성동의 왼쪽으로 해반천이 남쪽으로 흐른다. 고대에는 인근까지 바닷물의 영향을 받았다.
[현황]
2023년 12월 31일 기준 대성동의 면적은 0.56㎢이며, 2,343가구, 4,072명[남자 2,148명, 여자 1,924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전기 가야의 대표적인 유적군인 김해 대성동 고분군[사적]과 대성동고분박물관, 김해 장군차 서식지[대성동 산2번지 일원], 김해향교, 취정재(就正齊) 등이 있다. 국어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이윤재(李允宰)가 대성동 출신이고, 김해 최초의 인문계 고등학교이자 여자 고등학교인 김해여자고등학교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