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김해문화대전 > 김해향토문화백과 > 삶의 내력(역사) > 근현대 > 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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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해방 이후부터 현재까지 경상남도 김해 지역의 역사. 약 4만 5천 년 전 현생 인류가 지구상에 등장한 이래 장구한 발전을 거듭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생 인류의 유구한 발전 과정을 하나의 단위로 뭉뚱그려 파악하면 우리 인류의 변화 양상과 특징을 쉬이 규명해 낼 수 없기에 역사가들은 그 시기를 몇 단계로 나누어 파악하고자 한다. 이른바 원시, 고대, 중세, 근대로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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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부터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서 시행된 농지 분배 정책. 해방 직후 우리나라의 토지는 전체의 약 80%를 지주가 소유하고 있었다. 김해 지역의 경우 개항 이래 동양척식주식회사를 비롯하여 무라이 키치베[村井吉兵衛] 등 일본인들의 토지 침탈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소작농과 소작지의 비율이 상당히 높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에 따라 발생하는 여러 문제를 해결할 목적으로 194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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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 체결 때까지 경상남도 김해 지역을 비롯한 한반도 전역에서 벌어진 전쟁. 흔히 ‘한국전쟁’이라고도 일컬어지는 6·25전쟁은 내전과 국제전의 성격을 복합적으로 지닌 것으로 평가되는데, 이는 전쟁의 기원과 배경 그리고 전개 과정에서 자본주의 세력권과 공산주의 세력권이 직간접적으로 참여하였기 때문이다. 해방이 되었음에도 일제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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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1950년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서 좌익 인물들을 관리하기 위해 국민보도연맹을 조직하고 집단 학살한 사건. 1948년 10월 여순사건 발발을 계기로 이승만 정권은 38도선 이남의 좌익 세력을 근절하기 위해 국민보도연맹을 조직하였다. 1949년 4월경부터 조직 구성 착수에 들어간 국민보도연맹은 오제도 등 사상계 검사들의 기획과 내무부, 국방부, 법무부 등의 당국 동의를 얻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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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이승만 정권의 3·15부정선거에 저항하여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서 일어난 민주 항쟁. 1960년 3월 15일 실시된 정·부통령선거에서 이승만 정권은 부통령 이기붕의 당선을 위해 실로 유례를 찾기 힘든 부정 선거를 저질렀는데, 공무원 불법 선거 운동, 4할 사전 투표, 3인조 5인조 투표, 투표함 바꿔치기 등이었다. 3월 15일 곧바로 마산에서 부정 선거 규탄 시위가 벌어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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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 6월 민주항쟁은 1987년 6월 10일 박종철고문살인은폐조작규탄및민주헌법쟁취범국민대회로부터 6월 29일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통령 후보의 6·29 민주화 선언 발표에 이르기까지 전국 각지에서 총 인원 400~500만 명이 참여하여 4·13 호헌조치 철폐, 민주 헌법 쟁취 등을 요구한 반독재 민주화를 위한 운동으로, 6월 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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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시기 「국민방위군설치법」에 의해 경상남도 김해 지역 등에서 동원된 예비군. 1950년 11월 압록강 경계선까지 진격하여 북진 통일을 눈앞에 두고 있었던 국군과 유엔군은 중공군의 참전으로 말미암아 전세가 역전되고 후퇴를 거듭하였다. 다시 한번 남쪽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던 이승만 정권은 남쪽 청년들이 공산군의 의용군 및 전쟁 물자 수송 자원으로 동원되는 것을 막고자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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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해방과 더불어 조직된 조선건국준비위원회의 경상남도 김해 지역 지부. 김해 건국준비위원회는 최초의 신국가 건설 준비 기관인 조선건국준비위원회의 김해 지역 지부이다. 좌우익을 가리지 않고 김해 지역 애국지사들이 모여 치안대 구성, 식량 확보, 해외 동포 구제 사업 등의 당대 현안을 비롯하여, 통일 민족 국가 건설을 위한 사회적, 경제적 기초 토대 마련을 위해 적극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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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9월 조선인민공화국 수립과 발맞추어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 조직된 민간 자치 기구. 인천항을 통해 한반도에 미군이 진주하기 이틀 전인 1945년 9월 6일, 여운형을 밀어내고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장악한 좌익 세력은 재빨리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해소하고 정부 형태의 조선인민공화국 수립을 선언하였다. 이는 향후 미국과의 정치적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선제적 대응이었고 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