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350
한자 金谷驛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양훈

[정의]

고려 전기부터 1896년까지 경상남도 김해시 한림면 금곡리에 있었던 역참.

[개설]

금곡역(金谷驛)은 고려 전기에 실시되었던 22역도제 중 금주도에 속한 31개 역 중 하나였다. 조선 시대에는 세조 연간에 41역도제로 개편하면서 자여도(自如道)에 소속되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금곡역이 언제 처음 설치되었는지는 기록으로 전하지 않는다. 다만, 고려 현종 연간[1010~1031년]에 정비된 전국 단위의 육상 교통망 22역도 중 하나인 금주도에 포함되었다. 금곡역은 김해와 밀양을 오가는 사람과 물자의 편의를 위하여 설치되었다.

[관련 기록]

금곡역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고려사(高麗史)』 권82, 「병지(兵志)」 참역(站驛) 조에 “금주도는 31역을 관장한다. 덕산, 성잉, 적항, 금곡, 대역[금주]…”라고 되어 있다. 또한 『조선왕조실록』, 『경국대전』,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등 다양한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그 중, 『여지도서』에는 “금곡역은 부의 북쪽 35리에 있으며 동쪽으로 남역이 40리, 남쪽으로 생법역이 40리, 서쪽으로 대산역이 50리, 북쪽으로 밀양 무흘역이 20리 떨어져 있다. 대마 1필, 중마 2필, 복마 7필이 있으며, 역리 39인, 노 12명이 있다.”라고 적혀 있다. 1804년에 작성된 「가경구년자여도갑자식형지안(嘉慶九年自如道甲子式形止案)」에 기록된 금곡역은 역리 143명, 보인 31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내용]

금곡역은 현재 김해시 한림면 금곡리 금곡마을과 생림면 봉림리 본봉림마을 일대로 비정되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여지도서』에는 김해부에서 북쪽으로 35리 떨어진 곳에 있다고 기록되었지만, 『해동지도』의 김해부지도와 『김해지도』[규12154]에는 김해부에서 25리에 위치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점은 1748~1750년의 상황이 반영된 『해동지도』의 편찬 이전, 즉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편찬 당시에는 금곡역이 금곡마을에 있었다가 그 이후 『해동지도』가 편찬되었을 때에는 본봉림마을로 이전하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시사한다. 『해동지도』보다 늦게 편찬된 것으로 알려진 『여지도서』는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과 유사한 점을 보이기 때문에 금곡역이 이전 설치되었던 당시 사정을 반영하지 않은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변천]

금곡역은 고려 전기 22역도 중 금주도에 속한 역 중 하나였으며, 1462년(세조 8) 8월 5일 각 도의 역로를 정비할 때 자여도 역승(自如道 驛丞)에 포함된 13역 중의 하나로 소속되었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수록된 전국 41개 역도 중 자여도에 속한 15역 중의 하나였으나, 1896년(고종 33) 1월에 대한제국 칙령 제9호 ‘각 역 찰방 및 역속 폐지에 관한 건’에 따라 폐지되었다.

[의의와 평가]

금곡역은 조선 시대 자여도와 김해에서 밀양을 잇는 옛 길 복원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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