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426
한자 駕洛三王事蹟考
영어공식명칭 Garaksamwangsajeokgo
이칭/별칭 『가락삼왕사적』,『가락삼왕고』,『김해김씨사실』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영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편찬 시기/일시 1798년연표보기 - 『가락삼왕사적고』 편찬
간행 시기/일시 1800년 - 『가락삼왕사적고』 규장각 외각에서 초간본 간행
간행 시기/일시 1832~1834년 - 『가락삼왕사적고』 청도에서 중간본 간행
간행 시기/일시 1842년 - 『가락삼왕사적고』 나주에서 중간본 간행
간행 시기/일시 1851년 1월 - 『가락삼왕사적고』 김해에서 중간본 간행
간행 시기/일시 1851년 11월 - 『가락삼왕사적고』 충장사에서 중간본 간행
간행 시기/일시 1867년 - 『가락삼왕사적고』 산청에서 중간본 간행
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하오개로 323[운중동 490-8]
간행처 충장사 - 경상남도 산청군 금서면 구형왕릉로 92-12[화계리 57]
성격 역사서
권책 9권 3책
행자 10행 20자
규격 29.0×19.2㎝
어미 상흑어미(上黑魚尾)
권수제 가락삼왕사적고(駕洛三王事蹟考)
판심제 가락삼왕고(駕洛三王考)

[정의]

경상남도 김해 지역 가락국 3왕의 사적을 기록한 조선 후기 역사서.

[개설]

가락국(駕洛國)의 시조인 수로왕(首露王), 마지막 왕인 구형왕(仇衡王), 구형왕의 증손자인 흥무왕(興武王) 김유신까지 가락 3왕의 업적과 사적을 모아 편찬한 책이다.

[저자]

저자는 미상이나 김해 김씨 후손 삼현파(三賢派)에 의해 경상남도 산청에서 처음 저술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편찬/간행 경위]

1798년(정조 22) 산청 왕산의 왕릉으로 전해지는 무덤 옆 왕산사에서 가락국 마지막 왕인 구형왕의 신발과 의복, 칼과 활, 화상 등이 나와 구형왕릉으로 단장하였다. 이때 가락국 시조 수로왕흥무왕 김유신을 함께 ‘가락 삼왕’으로 설정하여, 삼왕의 공덕을 기리고 왕릉 일원에 대한 후손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김해 김씨가 편찬하였다고 한다. 1800년 규장각 외각[교서관]에서 5권 1책으로 초간된 이래, 1832~1834년 청도, 1842년 나주, 1851년 1월 김해, 1851년 11월 산청에서 각각 중간되었다. 1867년 산청에서 또다시 중간되었다. 『가락삼왕사적고(駕洛三王事蹟考)』는 『가락삼왕사적(駕洛三王事蹟)』, 『가락삼왕고(駕洛三王考)』, 『김해김씨사실(金海金氏事實)』이라고도 불린다.

[형태/서지]

9권 3책으로, 제1책 3~4장 및 발문 1장은 목판본이다. 1책의 권수에는 ‘왕릉도(王陵圖)’가 포함되어 있다. 발문은 1850년(철종 1)에 작성되었는데, 판형과 지질 등을 고려해 볼 때 1850년에 인출된 목활자본으로 보인다. 판식은 상흑어미(上黑魚尾)이다. 크기는 29.0×19.2㎝이며, 1면 10행에 1행의 자수는 20자이다. 표제는 ‘김해김씨사실(金海金氏事實)’이며, 권수제는 ‘가락삼왕사적고(駕洛三王事蹟考)’, 판심제는 ‘가락삼왕고(駕洛三王考)’로 되어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1책 첫머리에 수로왕흥무왕 산릉도, 권1에 수로왕 관련 금석문과 상량문 등, 권2에 수로왕의 업적과 왕을 기리는 제문과 시문 등, 권3에 수로왕 사적에 대한 관문서, 권4에 수로왕 사적에 관한 시문, 2책의 권5에 구형왕 관련 사적, 권6에 구형왕릉 관련 관부 문서, 권7에 흥무왕 관련 사적, 권8에 흥무왕 관련 관부 문서, 3책 첫머리에 「산청왕산릉소도형(山淸王山陵所圖形)」, 권9에 산청현의 왕릉과 사당에 관계된 관청의 문서들을 모아 수록하였다.

[의의와 평가]

19세기에 김해 김씨가 산청 왕산 전구형왕릉(傳仇衡王陵)의 연기를 작성하면서 시조 수로왕, 인덕의 양왕 구형왕, 흥무왕 김유신 3왕의 개념을 창출하여, 후손에게 교훈을 전하고 여러 관문을 추가해 지역 특권 주장의 근거로 삼고자 하였던 사실을 잘 보여 준다. 『가락국기(駕洛國記)』, 『삼국사기(三國史記)』, 『여지승람(輿地勝覽)』 같은 사서와 지리지 등이 인용 저술되었으나 새로운 가야사 구성의 자료적 가치는 크지 않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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