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5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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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海 大淸 遺蹟 |
이칭/별칭 | 대청 유적,대청동 유적,김해 대청동 유적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대청동 |
시대 | 선사/청동기,선사/철기,고대/초기 국가 시대,고대/삼국 시대,고대/남북국 시대,고려/고려 전기,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소배경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6년 11월 20일~1997년 2월 5일 - 김해 대청 유적 부산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실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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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김해 대청 유적 - 경상남도 김해시 대청동 |
출토 유물 소장처 | 국립김해박물관 - 경상남도 김해시 가야의길 190[구산동 232] |
성격 | 복합 유적 |
[정의]
경상남도 김해시 대청동에 있는 청동기 시대~조선 시대 복합 유적.
[개설]
기원전 3세기~기원전 4세기가 되면 이전과는 다른 문화가 영남 지역에 확산되는데, 둥근 덧띠를 붙인 토기[원형 점토대 토기(圓形 粘土帶 土器)]가 등장하는 원형 점토대 문화이다. 김해 대청 유적(金海 大淸 遺蹟)은 청동기 시대~조선 시대의 주거 및 무덤 유적으로, 청동기 시대~삼국 시대의 집자리와 수혈 유구 39기, 삼국 시대~통일신라 시대의 돌방무덤 1기와 돌덧널무덤 1기, 화장묘 4기, 그리고 고려 시대~조선 시대의 무덤 12기 등 모두 57기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발굴 조사는 1996년 11월 20일~1997년 2월 5일 부산대학교 박물관에서 장유 신도시 개발과 관련하여 실시하였다. 출토 유물로는 토도류 166점과 석기류 23점, 철기 41점, 청동기 12점 등 총 242점을 확인하였다.
[위치]
김해 대청 유적은 김해시 대청동, 용지봉과 반룡산 사이에 형성된 낮은 독립 구릉의 북동쪽 평탄 대지와 동쪽 비탈면 자리한다. 주변에 큰 하천과 선상지가 형성되어 생업에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일찍이 청동기 시대부터 취락이 형성될 수 있었다.
[형태]
청동기 시대 집자리의 평면 형태는 타원형·[장]방형이다. 항아리 모양 토기가 출토되는 비교적 이른 단계와 둥근 덧띠 토기가 출토되는 늦은 단계의 주거지로 구분된다. 그중 3호 집자리는 앞선 시기인 송국리 문화의 항아리 모양 토기와 그 뒤를 잇는 둥근 덧띠 토기 문화의 토기가 함께 출토되어 양 문화 간의 계승 관계를 보여 준다. 청동기 시대 유물로는 돌도끼와 둥근 덧띠를 붙인 토기, 두형 토기가 출토되었다. 삼국 시대 집자리의 평면 형태는 [장]타원형 또는 [장]방형이며, 내부 시설로는 집자리의 벽을 따라 설치된 기둥 구멍[주혈]과 도랑[壁溝]이 있다. 벽 근처나 바닥에 불탄 흙이 남아 있는데 아궁이가 부서진 흔적이다. 주거지의 시기는 4세기~5세기로 추정된다.
삼국 시대~통일 신라 시대의 무덤은 앞트기식 돌방무덤[橫口式石室墓] 1기와 돌덧널무덤 1기, 그리고 화장 묘 4기이다. 앞트기식 돌방무덤은 비탈 위쪽에 주구(周溝)[무덤 주위에 둘러서 판 도랑]를 파고, 돌방을 만들었다. 주검받침[屍床]이 3개인 것으로 볼 때, 적어도 세 차례의 매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돌덧널무덤은 무덤구덩이[묘광]를 파고 남쪽 벽만 돌로 만들고, 나머지 세 벽은 그대로 사용하여 뚜껑을 덮었다. 바닥에는 납작한 깬돌[割石] 한 겹으로 주검받침을 만들었다. 석재는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깬돌을 사용하였다. 화장 묘는 4기를 조사하였는데, 비탈면에 무덤구덩이를 파고 뼈 단지를 넣은 구조이다. 화장 묘의 뼈 단지로 사용된 토기에 도장무늬가 새겨져 있다. 삼국 시대~통일 신라 시대의 유물로는 연질옹(軟質甕)과 목 짧은 항아리[短頸壺], 받침 달린 목 긴 항아리[臺附長頸壺], 짧은 굽다리 접시[臺附碗] 등이 있다. 출토 유물 등으로 보아 무덤은 6세기~7세기에 축조되었다. 고려 시대의 무덤은 널을 사용하지 않은 직장묘(直葬墓)인데, 시신의 발치 쪽에 유물을 부장하였다.
조선 시대의 무덤은 널무덤이며, 감실(龕室) 또는 목관의 위쪽에 유물을 두었다. 고려 시대~조선 시대의 대표 유물로는 청자 대접과 토기 병, 분청사기, 청동 발, 청동 숟가락 등이 있다.
[현황]
김해 대청 유적은 발굴 조사 이후 도시 개발로 인하여 대부분 남아 있지 않으며, 유적 자리에는 대청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대청공원은 현재 유적 공원에서 벗어나 시민들을 위한 체육 시설 중심의 공원으로 전환된 상태이다. 출토 유물은 국립김해박물관에서 소장하여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김해 대청 유적에서 발견된 둥근 덧띠 토기, 석기와 토기의 조합은 청동기 시대 늦은 시기에 살았던 김해 지역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살필 수 있는 자료가 된다. 또한 삼국 시대의 집자리와 부속 시설을 통해 금관가야 외곽의 취락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