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7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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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鍾大 |
영어공식명칭 | Kim Jongdae |
이칭/별칭 | 윤명(允鳴),강운(岡雲),아석(我石)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엄경흠 |
출생 시기/일시 | 1873년 9월 14일 - 김종대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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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4년 - 김종대 법무주사 임명 |
몰년 시기/일시 | 1949년 - 김종대 사망 |
출생지 | 경상남도 김해시 상동면 대감리 |
거주|이주지 | 거주지 - 경상남도 김해시 한림면 용덕리 수조마을 |
수학|강학지 | 거연정 - 경상남도 김해시 한림면 용덕로199번길 46[용덕리 644] |
외가|처가 | 외가 - 경상남도 김해시 상동면 대감리 |
묘소|단소 | 김종대 묘소 - 경상남도 김해시 한림면 용덕리 수조마을 |
사당|배향지 | 거연정 - 경상남도 김해시 한림면 용덕로199번길 46[용덕리 644] |
성격 | 서화가 |
성별 | 남 |
본관 | 김해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김해 출신의 서화가.
[가계]
김종대(金鍾大)[1873~1949]는 1873년 9월 14일 지금의 경상남도 김해시 상동면 대감리 외가에서 태어났다. 자는 윤명(允鳴)이고, 호는 강운(岡雲)·아석(我石)이다. 할아버지는 김규한이고, 아버지는 김창수이다. 어머니는 분성 배씨 배환의 딸이다.
[활동 사항]
김종대는 6세에 아버지와 외할아버지 배환에게 글을 배웠고, 외종조부인 배전(裵婰)[1843~1899]으로부터 경서(經書)와 시서화를 배웠다. 과거 공부에 매진하였으나 두 번 낙방하였다. 1894년에 갑오경장으로 과거제도가 폐지되어 더 이상의 과거 응시 기회가 사라졌다. 흥선대원군이 손자의 서예 공부에 대해 부탁하여 1893년 봄까지 운현궁에 머물며 대원군이 주도한 시회(詩會)에 참여하였다. 1904년에 법무주사로 등용되었으나, 1906년 일제의 삭발령에 항의하다 사직하고 낙향하였다. 낙향한 뒤에 영남의 많은 선비들과 시서화를 교유하며 지냈다. 이후 거연정(居然亭)을 짓고 후학을 양성하다가, 1949년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김종대의 문집으로 『아석유고』 8권 2책이 간행되었다. 그 외 다수의 서화가 남아 있다.
[묘소]
김종대의 무덤은 김해시 한림면 용덕리 수조마을에 있다.
[상훈과 추모]
김종대의 사후 지역 유림과 후손들이 매년 음력 3월 그믐에 거연정에서 석채례를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