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1207 |
---|---|
한자 | 歲時 風俗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성진석 |
[정의]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서 연중 정해진 때에 따라 관습적이며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생활 풍습과 의례.
[개설]
김해 지역은 바다와 강이 접하고 있으며 비교적 넓은 평야가 있다. 한반도 남단에 위치하고 있는 김해 지역 사람들은 따뜻한 기온을 바탕으로 농업을 생업 기반으로 하였으며, 어업도 겸했다. 김해의 전통적인 세시 풍속의 생산적 근간은 바로 농업이었다. 따라서 김해 지역은 근대까지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세시 풍속의 큰 틀에서 벗어나지는 않았지만, 이 지역만의 고유한 풍속도 존재했다. 1990년대 이후부터 김해 지역에는 공장이 많이 들어서게 되었고 대규모의 신도시가 조성되는 등 도시의 환경 변화와 생업 변동의 폭이 커지게 되면서 일부 풍속은 사라지게 되었다.
[연원]
「가락국기(駕洛國記)」에 의하면 고대 김해 지역 사람들은 대개 3월 상사일(上巳日) 삼월 삼짇날에 액을 쫓기 위한 목적으로 물가에 모여 술을 마시는 행사를 즐겼는데 이 날을 계욕일(禊浴日)이라 한다. 이 시기에는 모든 만물의 기운이 움트는 봄철로 농사가 시작되는 파종기이므로 풍요와 풍작을 기원하는 의례가 있었을 것이다. 「가락국기」에는 세시일의 놀이도 기록되어 있다. 매년 7월 29일이 되면 김해 지역의 백성, 관리, 병사들은 승점(乘岾)에 올라가 장막을 치고 술과 음식을 먹으며 놀았다고 전한다. 또한 건장한 사람들을 좌우로 나누고 망산도(望山島)에서 말을 타고 출발하여 육지로 다투어 달리기도 했으며, 배를 띄워 북쪽의 고포(古浦)를 향해서 달렸다고 한다. 이러한 풍습은 가락국을 건국한 수로왕(首露王)을 존경하는 마음에서 비롯한 풍속으로 볼 수 있는데, 이는 수로왕이 허황옥(許黃玉)을 왕후로 맞이하는 장면을 재현한 놀이였다.
이학규(李學逵)의 「금관기속시(金官紀俗詩)」는 김해 지역의 풍속을 소재로 하여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총 77수로 된 연작시로서 김해 지역의 당시 모습과 풍속이 잘 나타나 있다. 「금관기속시」에서 묘사한 정월 초하룻날의 걸궁[乞供]은 현재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지신밟기를 말한다. 지신밟기는 걸립이나 걸궁이라고도 한다. 지신밟기는 풍물패가 집집마다 농악을 치면서 액을 쫓아내는 풍속이며, 김해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세시 풍속이다. 정월 보름에 김해 사람들이 모여 줄다리기를 했던 것도 기록되어 있다. 먼저 줄다리기의 때와 장소가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다. 김해 지역의 줄다리기는 보름달이 밝은 저녁 무렵에 고남성(古南城)[옛 남성 터]에서 행해졌는데 김해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편을 나눠 씩씩하게 줄을 당기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고 한다. 줄다리기는 벼농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짚을 꼬아서 큰 줄을 만드는 것을 시작으로 편을 나눠 줄을 당겨 대동이 되는 마지막까지 풍농을 기원하였던 것이다. 정월 보름에는 줄다리기뿐만 아니라 팽이치기와 나무공을 가지고 놀았던 사실도 시에 담겨져 있다.
조선 시대 김해 지역의 세시 풍속 중 특히 두드러진 것이 ‘석전(石戰)’으로서 이것은 상대편에게 돌을 던지면서 승부를 겨루는 싸움이며 놀이이다. 칠석희(七夕戲)는 7월 7일에 행하는 세시 풍속으로 김해시 진영읍 하계리 등에서는 6월 그믐에 시작하여 7월 10일까지 계속되었다. 칠석희는 집집마다 술과 안주를 차리고 풍악을 울리면서 태종신(太宗神)에게 제사를 지낸다. 칠석희와 8월 대보름에 김해 지역 사람들은 씨름을 하여 승부를 겨루기도 했다. 추석 다음 날에는 여성들만의 유희도 열렸다. 성 밖의 여성들은 깨끗한 옷을 차려입고 허왕후의 능이나 남산에 올라 놀았는데 남성들은 이 행사에 참여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 풍습을 ‘팔월산’이라고 하여 각 면마다 면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산 위에 올라 여성들만이 모여 그 동안의 안부를 묻기도 하고, 음식을 서로 나누어 먹으면서 하루를 보냈다고 한다. 동지는 음력 11월 중으로 한 해 중 가장 밤이 긴 날이다. 김해 지역 남성들은 수로왕과 허왕후의 능에서 제사를 지냈으며, 회로당(會老堂)에 모여 술을 마시면서 풍속을 논하는 모임도 있었다.
[정월(음력 1월) 세시 풍속]
설은 묵은해를 떠나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첫날이다. 설날에 행해지는 풍속은 차례와 세배 등이 있다. 설날에는 조상에게 차례를 올린다. 차례에는 떡국을 제수로 올리는데 차례를 지내기 전 조왕신에게 미리 떡국을 떠놓는 풍습도 있다. 차례를 지낸 후에는 떡국을 먹고 집안의 어른들에게 세배를 올린다. 집안에서 세배가 끝난 후에는 마을의 어른들을 찾아다니며 세배를 올린다. 차례를 마치면 간단한 음식을 챙겨 산소에 가서 성묘를 한다. 설날 새벽에는 청참(聽讖)을 한다. 청참은 날이 샐 무렵에 어떤 짐승이 가장 먼저 우는지를 두고 점을 치는 풍습으로 까치가 먼저 울면 한 해가 좋고, 까마귀가 먼저 울면 나쁘다고 하며, 소·닭·말·돼지·염소 등의 울음소리는 대체적으로 길한 것이라고 여겼다. 한편, 김해시 생림면에 위치한 마사마을에서는 소 울음소리가 들리게 되면 소가 잘 크고, 돼지 울음소리가 들리게 되면 돼지가 잘 큰다고 여겼다.
정월 대보름은 일 년 중 의례와 놀이, 점복 등 가장 많은 세시 풍속을 행하는 날이다. 이날에는 오곡밥 먹기, 복쌈 먹기, 귀밝이술 마시기, 부럼깨기 등을 한다. 오곡밥에는 찹쌀·수수·조·콩·팥 등의 여러가지 곡식을 넣고, 작년에 말려둔 나물을 요리해서 함께 먹는다. 복쌈은 주로 아주까리 잎을 이용했는데 아주까리 잎을 복쌈으로 먹게 되면 풍년이 들고, 나무를 구하러 갈 때 꿩의 알을 줍는다고 여겼다. 보름날 아침에는 부스럼이 안 나게 하고, 치아가 튼튼해지라는 의미에서 호두·밤·땅콩 등 단단한 견과류를 깨서 먹는다. 이러한 풍습을 ‘부럼깨기’라고 한다. 또한 귀를 밝아지게 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으라는 의미에서 아침밥을 먹기 전 귀밝이술을 마신다.
정월 대보름에는 마을 단위 행사가 많이 치러진다. 14일 저녁에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마을에 있는 당산나무에게 동제[당산제]를 올린다. 대보름 며칠 전부터 짚으로 새끼줄을 꼬아서 큰 줄을 만들어 보름에 큰줄땡기기를 한다. 저녁이 되면 마을 사람들 모두가 모여 달집을 태운는데 달집은 주로 솔가지, 짚 등을 엮어서 만든다. 달집을 태우면서 풍물을 치고 노래를 부르며 소원을 빈다. 한편, 결혼을 하지 못한 총각이 불을 지르면 장가를 가게 되고, 아들을 낳지 못한 사람은 아들을 낳는다고 여겼다. 그 해에 운이 좋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은 저고리 동정을 뜯어서 달집에 넣고 같이 태운다.
정초부터 정월 대보름까지 마을 청장년들은 집집마다 돌면서 풍물을 치는데 이렇게 마을 곳곳을 다니면서 집안의 액운을 쫓고 가내 태평을 기원하는 풍물놀이를 ‘지신밟기’ 또는 ‘매구친다’라고 부른다. 풍물패가 집 안에 들어오면 집주인은 술과 음식을 대접하고 돈을 주기도 한다.
정월 초순에는 복조리를 걸고, 토정비결을 보며, 안택고사, 용왕고사 등의 의례를 행하고 점복을 보는 풍속이 있다. 입춘에는 보리밭에 나가서 보리 뿌리점을 보는데, 보리 뿌리를 뽑아서 세 가닥이 올라오면 풍년, 두 가닥이 올라오면 평년, 한 가닥이 올라오면 흉년이 든다고 여겼다. 정월 대보름 아침에는 우물 또는 샘물을 남보다 먼저 길러 가는데 이를 용알뜨기라고 한다. 샘물 주변에서 기름 넣은 종지에 불을 켜 부정을 쫓고 용왕을 위로한다. 이러한 풍습은 샘물이 마르지 않고 늘 잘 나오게 하기 위함이다. 대보름 아침에는 깨끗한 물에 황토를 풀어 집 안의 사방에 뿌려서 액운을 쫓는 집도 있다. 저녁에 붉은 달이 뜨면 그해는 가물고, 흰 달이 뜨면 물이 흔하다고 본다.
[봄철(음력 2~4월) 세시 풍속]
이월 초하룻날을 머슴날이라고 부른다. 겨울이 되면 머슴들은 가마니를 짜거나 나무를 하는 등 소일거리로 여유롭게 지내다가 2월이 되면 본격적으로 농사를 시작한다. 한 해 농사를 시작하는 머슴을 위해 주인들은 음식과 술을 장만하여 즐겁게 놀게 한다.
삼짇날은 봄기운이 본격적으로 생동하기 시작하는 때이므로 이 시기에 사람들은 함께 가까운 산 또는 경치 좋은 곳에서 음식과 술을 먹고 논다. 이것을 ‘회치’라고 부른다. 부녀자들은 삼짇날은 양기가 좋은 날이기 때문에 집안에 우환이 없고 행운이 들어오게 해 달라는 목적으로 불공을 드리기도 한다. 그리고 이날 호랑나비, 노랑나비 등 색깔 있는 나비를 보게 되면 길조, 흰색 나비를 보게 되면 상주가 될 운명이라고 생각하였으며, 아이들은 이날 머리를 깎게 되면 머리에 부스럼이 안 생긴다고 여겼다.
청명(淸明)은 춘분과 곡우 사이의 24절기 중 하나이며, 한식(寒食)은 동지에서 105일째가 되는 날이다. 한식은 청명의 다음 날 또는 같은 날로 한식과 청명에는 귀신의 액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에 집수리를 하거나 무덤을 이장하며, 조상께 성묘를 하고, 무덤에 잔디를 입히는 등 보수 작업을 하기도 한다. 또한 한식날의 날씨를 통해 그 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기도 한다. 날씨가 쾌청하거나 바람이 약하게 불면 풍년이 들고, 바람이 심하거나 천둥이 치면 흉년이 든다고 여겼다.
사월 초파일은 부처님이 오신 날이기 때문에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린다. 초파일에는 가족의 이름을 쓴 연등을 달고 축원을 한다. 절에서도 사월 초파일이 가장 중요한 명절이기 때문에 밥과 떡 등 음식을 푸짐하게 준비하여 신도들에게 제공한다. 초파일에는 탑돌이 풍습도 있는데 스님들과 신자들은 불탑을 함께 돌면서 부처님의 공덕을 찬양하고 소원을 빌었다. 이날 방생(放生)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여름철(음력 5~7월) 세시 풍속]
단오는 음력 5월 5일로 양기가 가장 강한 날이기 때문에 제액의 예방과 풍년을 기원하는 다양한 행사를 한다. 단오 아침에 여성들은 창포를 삶은 물로 머리를 감는다. 창포물로 머리를 감게 되면 머릿결이 고와지고 흰 머리가 검어지며 숱도 많아진다고 믿었다. 창포 뿌리로는 비녀를 삼아 머리에 꽂았는데 이렇게 하면 두통이 없고 잡귀가 붙지 않는다고 여겼다. 여성들은 고운 옷을 차려입고 나들이를 하였으며, 큰 나무에 그네를 매고 그네뛰기를 한다. 남자들은 넓은 마당에서 씨름을 한다. 그리고 단오에는 수리취와 쌀가루를 섞어 떡을 만들어 먹는다. 단오에 비가 오게 되면 그해 곡식과 채소가 흉년이 든다고 여겼다.
유두(流頭)는 음력 6월 15일로 이날에는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는 풍습이 있는데 이것은 부정한 것을 씻고 더위를 타지 않기 위한 목적이었다. 6월은 액달로 여겨 이사 또는 문병을 하지 않는다. 칠석에는 물이 약이 된다고 여겼기 때문에 물맞이를 하거나 목욕을 했다. 그리고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을 맞으면 허리의 통증이 없어진다고 여겼다.
백중(百中)은 음력 7월 15일로 농사일의 힘든 고비를 넘으면서 과일과 채소가 생산되는 시기이다. 불교의 풍속에 의해 조상을 위로하는 제를 지내기도 한다. 백중은 머슴의 날이라고 하는데, 이 날은 농사일로 고생한 머슴들을 모아서 큰 잔치를 베풀어 준다. 이밖에도 옷을 해 주고, 하루를 쉬게 해 주며, 머슴들은 함께 모여서 씨름, 소타기 등의 놀이를 하면서 즐겁게 논다.
[가을철(음력 8~10월) 세시 풍속]
추석은 봄, 여름 동안 경작했던 농작물을 수확하는 시기이므로 추수감사제로서의 성격을 지닌다. 추석 아침에는 햇곡식으로 지은 밥과 햇과일, 햇곡식으로 만든 송편 등으로 조상께 차례를 지낸다. 차례 음식은 성주신 등 가신(家神)들에게 올리기도 한다. 차례가 끝난 후에는 간단한 제수와 술을 가지고 성묘를 간다. 추석에는 씨름, 그네뛰기, 윷놀이 등을 즐기기도 한다. 추석에는 날씨가 맑아야 풍년이 든다고 여겼으며, 추석에 비가 오게 되면 이듬해 보리농사가 흉년이 든다고 여겼다.
중양절(重陽節)은 음력 9월 9일로 중구일(重九日)이라고 한다. 타지에서 객사 등의 이유로 제삿날을 알 수 없는 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내고, 가족의 평안과 건강 등을 위해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린다.
음력 10월은 기제사를 모시지 않는 5대조 이상의 조상에게 시제(時祭)를 올린다. 이것을 ‘시사(時祀)’라고도 하는데, 묘소를 직접 찾아가서 지내기도 하고 재실이 있는 집안에서는 재실에서 시제를 지낸다.
[겨울철(음력 11~12월) 세시 풍속]
동지는 일년 중에서 밤이 가장 긴 날로 예부터 중요한 세시일이었다. 이날은 대부분 집안에서 붉은 팥죽을 만들어 조왕신, 성주신 등 가신에게 올리고 액운이 없어지기를 기원했으며, 팥 국물을 집 안 곳곳에 뿌려 잡귀와 잡신이 집 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했다. 동지에는 자기 나이만큼 팥죽의 새알심을 먹어야 나이를 먹는다고 여겼다.
섣달그믐에는 집 안 곳곳에 불을 켜고 밤을 새는데, 이를 수세(守歲)라고 한다. 이날 잠을 자게 되면 눈썹이 하얗게 세게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며, 아이들이 잠이 들면 눈썹에 하얀 칠을 하거나 굼벵이가 된다고 놀린다. 부엌에서 솥뚜껑을 엎어 들기름 등으로 불을 붙여 밤새 올려두기도 하는데 이것을 조왕불이라고 한다. 섣달그믐에는 다음 해의 날씨를 점친다. 이날에 바람이 불면 새해에 바람이 많이 불게 되고, 날씨가 좋으면 풍년이 든다고 여겼다.
윤달은 4년마다 태음력과 태양력의 차이 보정을 위해 한 달을 더 두는 것을 말한다. 윤달은 덤으로 생긴 달로 생각해 부정한 일을 해도 탈이 안 난다고 여겼으며, 이 때에 조상의 묘소를 정비하고 이장을 하며, 장례 대비를 위해 수의를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집수리와 이사를 하기도 한다. 윤달에 여성들은 사찰 세 곳을 돌게 되면 집안에 행운이 찾아온다고 여겨 절을 찾아 불공을 드리는데 이를 ‘3사 순례‘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