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마현산성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1358
한자 金海 馬峴山城
영어공식명칭 Gimhae Mahyeonsanseong
이칭/별칭 과녀산성(寡女山城),마현산성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생림면 봉림리 산102
시대 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안성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96년 3월 21일연표보기 - 김해 마현산성 경상남도 기념물 150호 지정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8년 - 김해 마현산성 동아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 조사 실시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1년 11월 19일 - 김해 마현산성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에 따라 문화재 지정 번호 삭제
현 소재지 김해 마현산성 - 경상남도 김해시 생림면 봉림리 산102 지도보기
성격 산성
양식 퇴뫼식 석축 산성
크기(높이,길이,둘레) 약 600m[길이]
면적 약 36,600㎡[성내 면적]
소유자 김해시
관리자 김해시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남도 기념물

[정의]

경상남도 김해시 생림면 봉림리에 있는 삼국 시대 석축 산성.

[개설]

김해 마현산성(金海 馬峴山城)은 신라가 삼랑진에서 김해 시내와 연결되는 교통로를 통제하기 위해 마현마을 뒤편에 솟은 독뫼에 축조한 석축 산성이다. 조선 시대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김해도호부(金海都護府) 성지조(城地條)에 “마현산성(馬峴山城)김해부 읍치(邑治) 북쪽으로 30리[약 11.78㎞]에 있으며, 과녀산성(寡女山城)이라고도 한다. 둘레 1,300척[393.94 m] 우물의 하나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일설에는 가락국 수로왕(首露王) 때 축조된 것이라고 하나 신빙성이 없다.

1998년 동아대학교 박물관의 『문화유적분포지도』 제작을 위해 김해 마현산성에 대한 지표 조사를 실시하였는데, 정확한 시기와 축성의 주체 등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였다. 이에 김해시는 같은 해에 ‘가야 역사 문화 환경 정비 계획’을 수립하고, 성벽 일부 구간에 대한 복원·정비 사업을 위해 북문 터와 서문 터를 중심으로 발굴 조사를 진행하였다. 조사 결과 삼국 시대의 성벽과 여말 선초(麗末 鮮初)의 성문, 성벽이 확인되어, 삼국 시대에 신라가 축조한 후 조선 시대까지 활용되었음이 밝혀졌다.

[건립 경위]

김해 마현산성이 적극적으로 활용된 때는 삼국 시대와 여말 선초 등 두 시기로 나누어진다. 즉, 7세기 전반경에 신라가 처음으로 산성을 축조하였으며, 성벽은 바른 층 쌓기를 하였다. 이후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고려 시대에 일정 기간 폐기(廢棄)되었다가, 여말 선초에 대대적인 개축이 이루어졌다. 조사가 이루어진 북문과 서문은 평문식(平門式)으로 축조되었으며, 서문은 문루(門樓)를 갖춘 형태였다. 이 중 북문 터는 옹성(甕城)을 설치하여 방어력을 높였다. 서문의 북동쪽 비탈면에는 소규모의 집수지를 설치하였다.

[위치]

김해 마현산성김해시 생림면 봉림리 산102번지에 있다. 김해시 생림면의 면 소재지인 봉림리에서 밀양 및 삼량진으로 가는 지방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4㎞ 정도 가면 찾을 수 있으며, 마현마을 건너편에 솟은 독뫼[215m, 평지에 솟아 있는 독립된 구릉성 산지]를 두른다. 김해 마현산성 북서쪽으로 마사왜성(馬沙倭城)이, 낙동강(洛東江) 건너편에는 삼랑진 성지(三浪津 城址)가, 남서쪽에는 나전리 보루가 분포한다. 산성에서는 북쪽으로 낙동강을 포함한 밀양시 삼랑진 일부 지역이, 남쪽으로는 김해시 생림면 일대가 한눈에 조망된다. 따라서 성곽의 분포와 조망권을 고려할 때, 밀양-삼랑진-김해로 이어지는 교통로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형태]

퇴뫼식 석축 산성으로, 평면 형태는 부정형에 가깝다. 규모는 길이 약 600m, 성내 면적은 약 3만 6600㎡이다. 삼국 시대의 성벽은 후대에 성문이 설치되면서 대부분 유실되어 3단 90㎝ 정도가 남아 있다. 외벽은 장방형과 방형으로 다듬은 할석으로 바른 층 쌓기를 하였다. 여말 선초에 개축된 성문 중 북문 터는 산성의 북서쪽 성우(城隅)에 위치한다. 이곳은 성 밖으로 매우 가파른 비탈면이 형성되어 있을 뿐 아니라, 주변이 바위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어 외부에서 접근이 매우 어렵다. 문 터의 평면 형태는 ‘철(凸)’ 자형 구조이며, 외부에 옹성을 축조하였다. 통로부는 평평한 할석으로 깔았고 북문 터와 연접하는 성벽은 성문을 조성하기 위해 주변 성벽보다 두껍게 쌓았다. 이외에도 성문을 달았던 확석(確石) 2매와 성내에서 북문 터로 오르는 계단이 조사되었다. 서문 터는 삼국 시대 성벽의 붕괴부를 정리하고 설치한 평문식 구조이다. 성문은 초축 성벽을 비탈면을 따라 정지한 후 부정형 할석으로 허튼층쌓기를 하였다. 통로부에는 계단을 설치하였으며, 확석을 비롯한 문루 초석과 북서쪽 내벽에 연접한 추정 보도 시설, 통로부 남동 측벽에서 성내로 연결되는 석축이 확인되었다.

[현황]

김해 마현산성은 1996년 3월 21일 경상남도 기념물 150호로 지정되었다. 소유자 및 관리자는 김해시이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 「문화재 지정[등록]번호 삭제 및 문화재명 표기 방식 변경 고시」에 따라 문화재 지정 번호는 삭제되었다. 현재 서성벽[북문과 서문 사이]과 북성벽 및 남성벽은 일부 복원 정비되어 있으나, 나머지는 성벽이 붕괴된 상태로 관리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무너진 성석 사이로 외벽이 보인다. 성내에는 소나무와 잡목이 우거져 있다. 유물은 크게 삼국 시대와 고려 후기~조선 시대로 나누어진다. 6세기 중반~6세기 후반 통일 신라 시대의 토기 조각이 출토되었고, 고려 후기~조선 시대의 유물로는 14세기와 15세기~16세기에 제작된 청자 조각과 분청사기 및 백자 조각 등이 출토되었다.

[의의와 평가]

김해 마현산성삼랑진과 김해 지역을 잇는 길목의 군사적 요충지에 축조되었다. 이러한 지정학적 이유로 인해 삼국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활용된 김해 마현산성은 김해 지역의 외곽 관방 체계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다만, 성벽을 중심으로 발굴 조사가 이루어져 변천을 논의하기에는 부족하므로 종합 정비 계획에 따른 발굴 조사와 정비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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