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5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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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海 柳下里 傳 王陵 |
영어공식명칭 | Ancient Tomb in Yuha-ri, Gimhae |
이칭/별칭 | 유하리 전 왕릉,유하동 왕릉,김해 유하동 전 왕릉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고분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유하로59번길 48-17[유하동 654-1]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이동희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4년 - 김해 유하리 전 왕릉 동의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실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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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김해 유하리 전 왕릉 - 경상남도 김해시 유하로59번길 48-17[유하동 654-1] |
성격 | 고분|왕릉 |
양식 | 굴식 돌방무덤 |
크기(높이,지름) | 4.2m[봉토 높이]|11m[봉토 지름] |
[정의]
경상남도 김해시 유하동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
[개설]
김해 유하리 전 왕릉(金海 柳下里 傳 王陵)은 장군총(將軍塚) 혹은 가락의 제2대 거등왕(居登王)의 무덤으로 전해졌지만, 발굴 조사 결과 김해 지역이 신라에 영역화된 이후의 고분으로 확인되었다.
[위치]
김해 유하리 전 왕릉은 김해시 유하동 654-1번지 유하마을 뒤편 구릉의 경사면에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그동안 도굴된 채 방치되어 오던 것을 1994년 동의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하였다. 조사 결과 6세기 말~7세기 대의 굴식 돌방무덤[횡혈식 석실분(橫穴式 石室墳)]으로 밝혀졌다.
[형태]
봉토는 높이 4.2m, 지름 11m의 원형이며, 가장자리에 둘레돌[호석(護石)]을 돌렸다. 매장 주체부는 굴식 돌방무덤이다. 굴식 돌방무덤의 평면 형태는 정사각형이며, 좌편수식(左片袖式)[좌측에 치우친]의 널길[연도]과 ‘ㄱ’ 자형의 높은 시상대[시신을 놓는 대], 궁륭형 천장, 회바름 벽면 등의 특징을 보인다. 시상대 위에서 모두 9개체의 사람 뼈가 확인되었는데, 배치상 추가장에 의한 가족묘로 추정된다.
[출토 유물]
도굴된 상태라 널방[현실(玄室)] 내부에서는 철제 손칼[철도자(鐵刀子)] 1점만 확인되었다. 묘도[무덤으로 통하는 굴길]와 둘레돌 바깥에서는 다리가 있는 목 긴 항아리[대부 장경호(臺附 長頸壺)]와 굽다리 잔[고배(高杯)], 뚜껑[蓋] 등 토기 조각 몇 점이 출토되었다.
[현황]
김해 유하리 전 왕릉은 신라 지역에 유입된 고구려계의 굴식 돌방무덤이 신라의 확장과 더불어 금관가야권에 파급된 것으로 보인다. 돌방의 구조나 유물로 볼 때 6세기 말~7세기 대에 해당한다.
[의의와 평가]
김해 유하리 전 왕릉에 매장되어 있는 사람은 금관가야가 신라에 영역화된 이후, 신라에서 김해 지역을 통제하고자 임명한 현지 유력인의 가족묘였을 가능성이 있다.